테러로 얼어붙은 독일의 여름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9 10:21
  • 호수 13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난민 정책 고수하다 궁지로 몰린 메르켈 총리

일요일이던 지난 7월31일, 독일 바이에른주 의회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7월22일 뮌헨 올림피아 쇼핑몰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자리였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연방 대통령은 검은색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중앙 연단에 올랐다. 침통한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한 그는 독일 시민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던졌다. 

 

“테러범들은 우리가 그들과 같이 증오하도록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끝없는 공포 속에 붙들어둘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모습 그대로, 인간적이며 연대하는 사회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우크의 주문은 해내기 어려운 담력 시험처럼 여겨진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동시 다발적 테러가 파리 시민들의 삶을 바꿔 놓았듯이, 독일에서도 평온한 일상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독일 국민 사이에서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31일 독일 뮌헨 성모교회에서 열린 ‘뮌헨 쇼핑몰 총기난사’ 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한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오른쪽 첫 번째)


연이은 테러·총격사건, 깨진 일상의 평화

 

독일 사회가 겪은 충격과 불안감은 불과 3일 간격으로 공공장소에서 무차별 테러와 상해사건이 잇따르며 생겨났다. 뮌헨 테러가 일어나기 사흘 전인 7월19일에는 뷔르츠부르크에서 17세 소년이 운행 중이던 열차 안에서 네 명의 승객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 중에 마주친 시민 한 명을 공격했다. 범인은 지난해 6월 아프가니스탄 난민으로 위장해 독일에 들어온 파키스탄계 이슬람국가(IS) 지지자였다. 7월25일에는 안스바흐 음악축제에서 시리아 출신인 모함마드 달릴이 자살 폭탄테러를 저질러 15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달릴 역시 IS의 사주를 받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테러로 독일의 정치권은 양분되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이 있다. 메르켈은 지난해 8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지중해의 난민 비극을 끝내자는 취지로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유럽 내륙 국가들이 “난민은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망명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더블린 II 조약을 핑계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집중된 난민 문제를 외면하던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였다. 메르켈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난민들은 테러와 내전의 피해자이니만큼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르켈의 발언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독일에서는 누구나 망명자 지위를 인정받고 정착할 수 있다는 왜곡된 소문이 퍼지면서 전 유럽의 난민들이 독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의 난민 수용시설은 전국적으로 초만원을 이뤘다. 각 지방정부는 아무런 협의 없이 빗장을 푼 중앙정부와 마찰을 일으켰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바이에른주에는 메르켈의 발언 이후 불과 보름 만에 6만3000여 명의 난민이 들어왔고, 결국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을 잇는 구간에서는 다시 국경 검사가 시작됐다. 이어서 올해 4월 유럽연합(EU)과 터키가 불법으로 EU 영토로 넘어온 난민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을 골자로 한 난민 조약을 체결하면서 유럽의 장벽은 오히려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그러나 메르켈의 난민 정책은 전국 정당인 기독민주연맹(CDU)과 바이에른 지역 자매당인 기독사회연맹(CSU) 간에 계속해서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이러한 와중에 공교롭게도 바이에른주에서 잇따라 총기난사와 테러가 발생하면서 반감은 더욱 거세졌다. 메르켈이 난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결과 테러가 발생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에 대해 뉴스 사이트 ‘슈피겔’ 온라인은 ‘엄밀히 말하면 7월에 발생한 테러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들은 메르켈의 정책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논평을 실었다. 두 테러범은 이미 그 전에 독일로 들어왔으며 총기난사를 벌인 다비드 존볼리는 뮌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메르켈은 7월28일 연례 기자회견을 열고 난민 정책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망명을 제공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는 독일의 기본법 1조에 부합하는 일”이며 “피난민에게 조력을 제공하는 것은 제네바 난민협약이 정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메르켈은 “우리는 테러와 싸우고 있지만 이슬람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음으로써 이슬람 혐오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독일 시민도 메르켈의 난민 정책에 회의적

 

메르켈이 기존의 난민 정책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CSU 정치인들은 즉각 대립각을 세웠다.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재무부 장관은 “국경을 검문 없이 여는 것은 역사적인 실수”이며 “이 문제에 순진함으로 대처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평했다. 호어스트 제호퍼 CSU 총재 역시 “안보를 위해선 난민들의 이주를 막아야 한다”며 메르켈의 포용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독일 시민들 역시 메르켈의 난민 정책에 회의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유가브(YouGov)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만이 메르켈의 난민 포용 정책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우리는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8%로 나타났다. 사상 최고치다.

 

 이 같은 불안을 반영하듯 바이에른주 정부는 7월28일 보안 강화책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경찰인력을 2000명 늘리고, 경찰 보호 장구와 총기, 차량을 개선하며 감시 카메라를 늘리고, 모든 전화,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용 기록을 장기간 보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독일철도(DB) 역시 7월27일 안전 대책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안전요원을 최대 500명까지 추가로 배치하고 감시 카메라도 늘린다는 내용이다. 안전요원이 바디캠을 장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보안 대책이 과연 실제로 테러나 무차별 폭력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DB가 운영하는 열차에만 2만7000대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뤼디거 그루베 DB 사장 역시 “아무리 철저하게 고안한 보안 시스템도 테러를 완전히 막을 순 없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강화된 안전 대책이 이용객에게 다소간의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테러에 대한 불안을 이기고 일상을 이어가는 ‘담력 시험’은 올해 여름을 넘기고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