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ASSA 아세안] ‘조세사면법’으로 재미 보는 인도네시아, 우리는 어떨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8.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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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내년 3월까지 해외 도피 자금 자진 신고하면 최소한의 세금만 부과하고 형사고발 등 법적 책임 면제

인도네시아에 대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평가가 우호적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인데다, 아세안의 대표 산유국이어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펀더멘털이 좋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동안 많은 외자(外資) 기업들이 ‘기회의 땅’으로 여기며 인도네시아로 속속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빈부 차가 큰데다, 사회 인프라 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에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사람이나 기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는 자원 외에는 별달리 내세울 수출 품목이 없어 유가와 경기가 연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최근 글로벌 IB들이 인도네시아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 화제입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조세 사면(Tax Amnesty)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내년 3월까지 해외로 빼돌렸거나 은폐한 자금을 신고하면 최소한의 세금만 부과하고 형사고발 등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 세계 주요 탐사 매체들이 해외 유명 조세피난처에 등록된 도피성 자금에 대해 보도했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 돈도 상당합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해외도피성 자금을 국내로 갖고 오면 2~5%, 단순히 신고만 하면 10%의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네요. 자발적인 신고를 유도하기 위한 것인데, 아직 초반이지만 반응은 꽤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7월17일부터 일주일간 실시했는데 82명이 자진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1주일 사이 정부에 신고 된 자산만 총 9890억 루피아에 이르렀다는 군요. 절반은 국내, 나머지 절반은 해외재산이라고 합니다.

 

당초 이 계획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는 ‘허무맹랑한 정책’이라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분위기를 보면 꽤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1주일간 신고된 재산에 대한 세금이 237억 루피아라고 하는군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세사면법으로 약 88조8천억원 돌아올 것으로 기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하나둘씩 자신이 정부에 신고하지 않은 세금포탈 목적의 돈을 신고하자 인도네시아 고위층은 조금씩 술렁이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 마련된 콜센터에 1주일 동안 3200건의 문의전화가 온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초반 흥행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상적으로 세금 신고를 하면 최대 자금의 25.0%를 세금으로 내야했으니 부자들로선 절세로 이만한 게 없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돈을 인프라 투자 자금으로 쓴다는군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입해야 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저금리를 틈타 달러가 대거 유입됐지만, 지난해 미국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다시 달러가 빠져나간 것만 봐도 인도네시아 경제는 아직 해외 의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달러 의존도가 높습니다. 

 

더군다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사상 최초로 뽑힌 민선대통령 아니겠습니까. 전임 군부 출신이 국정을 책임지던 시절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야겠지만, 세계 경제 불황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는 요원한 문제입니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로서는 조세피난처 등 해외에 불법적으로 은닉한 자금을 신고하고 적정 세금을 납부하면 용처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러한 자금이 채권·주식 등에 흘러가도록 하는데 관련법을 개정한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행보에 금융계는 일단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모습입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세사면 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해 인도네시아 국가신용등급에 긍정적 견해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증권사들도 조세사면법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활력소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조세사면법으로 1000조 루피아(약 88조8000억원)가 본국으로 돌아오는 등 총 4000조 루피아가 정부에 신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수 증가는 다른 세금을 줄이는 효과로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위기에 따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그렇다고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세사면법에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단체 등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행정소송을 벌이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선 상태입니다. 하지만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내각 내에 소송과 관련한 전담부서를 마련하는 등 정공법을 택한 모습입니다.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를 갉아먹으면서까지 그가 법 추진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도 ‘더 이상 경기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정부의 인기가 바닥을 기면 어김없이 군부가 들썩이는 등 지금까지 늘 정치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조세사면법과 같은 유도책이 도입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아마도 힘들 겁니다. 아직도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수 충족 차원에서 해외도피 자금에 대해 적정 세금만 내면 봐주겠다고 했을 경우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하지만 박근혜 정부 초기 지하경제 양성화가 중요한 화두였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뒤떨어지는 인도네시아의 실험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조세사면법을 통과시키자 이웃 경제부국 싱가포르가 발끈한다는 소리도 있군요. 물론 공식적으로 싱가포르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조세사면을 위해 싱가포르 은행에 예치한 자금이 대거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상황에 놓이자, 싱가포르 금융기관들이 조직적으로 방해를 한다는 게 인도네시아 쪽 주장입니다. 정확하게 입증할 자료는 없지만, 현재 싱가포르 금융기관 내 큰손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인인 것을 볼 때 싱가포르 은행들이 조세사면을 위해 자금이 인도네시아로 가는 것을 기분 좋게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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