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시즌2]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고 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8.19 21:03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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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센터로 외상 환자 3명 중 1명 살릴 수 있어…의사·병원·정부의 공감대 필요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흔히 큰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백 명이 몰리는 통에 진료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 대기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외상이 심각해도 전문의가 자리에 없으면 그 의사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당상 생명이 위급해도 수술실이 부족해 사망하는 환자도 있다. 이쯤 되면 병원 응급실은 응급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추락·교통사고·자살 등으로 크게 다쳐 응급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더라도 야간이나 주말을 피해야 한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응급실이라도 야간과 주말에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원은 응급실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응급실 운영은 돈을 벌기는커녕 환자를 받을수록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암 환자를 로봇으로 수술하면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이 잡히지만 생명이 위급한 외상 환자를 수술로 살려내도 수익은 100만원 미만이다. 의사나 간호사도 힘든 응급실 근무를 피한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병원 응급실이 반기지 않는 배경이다. 위급한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환자는 길거리에서 생명줄을 놓는다. 이런 환자가 적게 잡아도 한 해 1만 명이 넘는다. 만일 2011년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6발의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국내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석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외국에서 죽지 않을 외상 환자가 한국에서는 죽고 있다”고 말했다. ‘돈이 되는’ 암 환자나 ‘돈이 안 되는’ 외상 환자나 생명은 소중하다. 누군가가 암 환자를 진료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외상 환자를 살려야 한다. ‘돈도 안 되는’ 외상 환자의 목숨을 살리려는 의사가 이 센터장이다.

어떻게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게 됐나.

본래 간·담도·췌장외과에서 이식 수술을 해 왔다. 2002년 연구강사 시절 병원 응급실에서 외상 환자를 전담으로 치료할 의사가 필요했다. 의사들이 꺼리는 병원 응급실에 떠밀리다시피 갔다. 힘들고, 잘해도 티도 안 나는 일을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같은 큰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듬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거쳤다. 그곳에서 미국 예비역 해군 대령 출신의 외과 의사를 만나 외상 환자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훈련 과정에서 외상을 당한 주한미군 환자를 주로 치료했다. 2011년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 사례가 계기가 돼서 외국처럼 외상센터의 필요성이 대두했고 정부가 권역별로 외상센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석해균 선장을 살린 배경에도 외상센터가 있는가.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의 총격을 받은 석해균 선장은 미군 헬기로 2~3시간 걸려 오만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외상센터와 전문 의료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그 병원을 방문해 보니 의사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수련 과정을 거쳐서 의료기술이 뛰어났고 병원 내 의료장비도 우수했다. 다만 아랍 국가여서 그런지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약이 다양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석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병원에 응급실이 있는데 별도로 외상센터가 필요한가.

매일 100~200명의 환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이 가운데 생명이 위급한 사람은 5%도 안 된다. 숨 쉬는 데 문제가 있거나 심장·뇌혈관이 막힌 사람 등이다. 이들은 사고 시점부터 1시간(골든아워) 이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이런 사람이 비교적 가벼운 환자들과 응급실에 섞여 있다. 물론 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위급한 환자를 우선 치료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환자들을 내버려둘 수도 없다. 대부분 가벼운 환자를 치료하느라 정작 위급한 환자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현실에서 심한 외상 환자에 대한 조치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학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구급차는 환자를 태우고 이 병원 저 병원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일이 생긴다. 3차 병원 응급실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는 결국 작은 병원에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다. 그래서 그 작은 병원을 시쳇말로 사(死)차 병원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외국과 같은 외상센터를 잘 갖춰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골든아워’를 지키는 게 중요할 텐데, 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미국 어디에서든 중증 외상 환자가 발생하면 1시간 이내에 병원 외상센터에 도착해 수술받을 확률이 82%다. 18%는 사막이나 얼음땅 등 오지에서 사고가 난 경우일 뿐이다. 웬만한 곳에서는 100% 골든아워가 지켜진다는 의미다. 우리는 사고 나서 이 병원 저 병원 들렀다가 적절한 병원에서 치료받기까지 245분(약 4시간)이나 걸린다. 실제로 119구급차는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 응급실을 찾기 위해 병원마다 연락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 전체 외상 환자의 50%가 골든아워를 지키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을 맞는다. 또 병원에 도착해도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지던트가 환자를 살펴보고 안 되겠다 싶어 전문의를 찾고, 검사하고, 수술을 진행하기까지 또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게 국내 병원 응급실의 현실이다.

응급실과 외상센터를 따로 둬야 할 정도로 응급한 외상 환자가 많은가.

한국의 3대 사망원인은 암(28%), 심장·뇌혈관 질환(19.5%) 그리고 외상(10.1%)이다. 연간 사망자 30만 명 가운데 3만 명이 외상 환자인 셈이다. 암과 심장·뇌혈관 질환은 주로 고령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한창 생산현장에서 일할 나이인 40대까지만 따지면 국내 사망원인 1위는 외상이다. 교통사고로만 연간 4500명이 사망하고 다친 사람까지 포함하면 20배수를 잡아야 한다. 병원에 실려오는 외상 환자의 원인은 자살이 가장 많다. 그 외에 타살, 산재, 추락사고 등이 외상의 원인이다. 이런 중증 외상 환자를 외상센터가 전담하고 일반 응급 환자는 응급실에서 처리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외상센터가 있다면 사망하는 외상 환자 중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외상센터를 갖추기 전과 후의 미국 외상 환자 사망률이 34%에서 15%로 줄었다. 독일은 40%에서 20%로 줄었다. 한국은 2010년 기준 35%인 외상 환자 사망률을 2020년 20% 미만으로 낮추는 목표를 잡았다. 2000년대 초반 낮게 잡아도 외상 환자 사망률은 50%였다. 그즈음,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이 나서서 권역 응급의료센터를 지었다. 그래서 조금씩 좋아져서 10년 만에 35%까지 낮춘 것이다. 외국은 병원 전 단계, 즉 사고 현장에 응급 구조대가 신속히 도착해서 적절한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까지 가는 시간도 포함한다. 우리는 병원에서 조치하는 시간만 따진다. 만일 우리가 병원 전 단계까지 포함하면 외상 환자 사망률은 80~90%에 이른다. 한 해 외상으로 사망하는 사람 3만 명 가운데 적어도 1만 명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즉 예방 가능 사망률(사망자 중 적정 진료를 받았을 경우 생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망자 비율)은 33%다. 일본이 10%, 캐나다 18%, 미국은 15%다. 외국에서는 죽지 않을 사람이 한국에서는 죽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의 계획대로 2017년까지 17개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하면 외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까.

하드웨어는 한국이 잘 갖춘다. 돈만 있으면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각 병원에 외상 외과 전문가가 없다.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의사가 자신의 분야만 담당할 뿐이다. 환자를 전반적으로 살피고 적절한 치료 방향을 잡을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권역외상센터 한두 곳에서 2년 정도 인력을 키워서 다른 권역외상센터로 배출하려고 했는데 하드웨어(권역외상센터)가 먼저 설립되고 있다. 그래서 각 병원은 일부 의사들을 권역외상센터로 보직 변경해 배치하고 있다.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려는 태도 등 의사들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9개 권역외상센터가 가동 중인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119구급대원 등은 외상 환자가 생기면 기존에 가던 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런 환자의 일부는 또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맨다. 이젠 권역외상센터가 생겼으니 바로 가까운 권역외상센터로 환자를 후송하면 좋겠다. 이런 일에 관련 의료진이 나서서 홍보하고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 정부나 국민의 협조도 필요하다. 예컨대 석해균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할 때 스위스에서 비행기를 빌렸다. 같은 기종이 우리 해양경찰에도 있고 공군에도 많은 비행기가 있는데 외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환자를 살리는 일에 득실을 따질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전문 의료진이 갖춰지고 사회적 협조가 보태져야 정부가 추진하는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는다.


70대 추락 환자,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12시간 방치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에 있는 70대 여성 환자는 얼마 전 발을 헛디뎌 추락 사고를 당했다. 즉시 119구조대에 의해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각종 검사를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12시간 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결국 다음 날에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국종 센터장은 “두개골이 깨졌고, 갈비뼈가 부러졌고, 폐와 내장이 찢어져 출혈이 계속됐다”며 “그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조치한 후 다른 환자에 신경 쓰느라고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 상태가 심해진 후에나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8월1일 오후 이 센터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환자가 실려 들어왔다. 40대 남성 환자는 고통을 참지 못해 울부짖었다. 센터 내 침상에 환자를 옮기자 대기하고 있던 의사들과 간호사 등 10여 명이 동시에 여러 가지 검사를 시작했다. 이국종 교수는 환자의 눈에 불빛을 비춰 동공을 확인했다. 이어 뼈 골절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천장에 달린 엑스선 기기가 이동하더니 골절이 의심되는 부위를 촬영했다. 기존 병원 응급실이었다면 환자를 엑스선 촬영실로 이동하고 다른 환자의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등 대기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이 환자의 장기 손상을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도 현장에서 이뤄졌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환자는 옆에 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적절한 치료 절차에 들어갔다. 그동안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국종 센터장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대장이 찢어졌고 머리를 다쳐 두개골에도 이상이 발견됐다”며 “이런 모든 검사를 20분 이내에 처리하는 게 국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누구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과 전문의는 2010년부터 외상외과장이자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있다. 1995년 아주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2년 동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에서 연수했다. 2004년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됐다. 2007년 영국 로열런던병원에서 외상 수술에 대해 연수했다. 현재 대한외상학회 홍보이사, 대한외상중환자 외과학회 국제협력이사, 해군 홍보대사, 소방방재청 홍보대사 활동도 한다. 2010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 2011년 국민포장, 2013년 안전행정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2011년 석해균 주얼리호 선장을 치료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3차례(2009, 2010, 2012년) 감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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