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6주년, 한일합병이 있었던 오늘을 아시나요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8.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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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조약 이루어진 ‘경술국치일’…국가기념일 지정 추진 움직임도

1910년 8월29일.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상실한 날로부터 106년이 지났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지 13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1905년 조선과 을사늑약을 맺은 일본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영구히 가진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한일병합 조약을 1910년 발표했다.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는 권리를 넘겨받은 이완용이 당시 조선통감이었던 테라우치 마사타케와 통감관저에서 맺은 조약이었다. 8월22일 맺어진 이 조약은 8월29일 발표됐다. ‘경술국치일’, 경술년에 국가가 치욕적인 일을 당했다는 뜻에서 붙은 명칭이다.

 

한일병합조약은 형식적으론 한국의 황제가 일본과 합의하에 정권을 이양한 것으로 돼있지만 사실은 조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맺어진 ‘강제조약’이었다. 순종이 이완용에게 준 위임장에 사인이 없고, 그 대신 행정적인 결재에만 사용되던 옥새가 사용됐다는 점 등이 드러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한일합병조약 협정에 총리대신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하는 칙유


순종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선포한 것”

 

강제로 맺은 조약에 대한 불법성은 1926년 4월 순종이 숨지기 직전 궁내부대신 조정구에게 내린 유조(임금의 유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유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교민들이 발행하는 신한민보 7월8일자에 실렸다. 

 

“한 목숨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 인준의 사건을 파기하기 위해 조칙하노니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선포한 것이요, 다 내가 한 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제(위협하고 견제함)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요.”

 

강제로 맺어진 조약으로 우리 조상들은 35년 동안 식민지 역사를 겪어야 했다. 이 같은 비극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지정한 ‘국기게양일’에 그치지 않고 ‘국가기념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4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 정부 때 폐지된 경술국치일을 국가기념일로 재지정할 것을 요청한 이후 법안 발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백재현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은 지난 7월 제헌절을 앞두고 “경술국치일은 광복 이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으나, 박정희 정부가 한일협정을 준비하던 1960년대 특별한 이유 없이 폐지됐다”며 경술국치일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주장했다. 백 위원장은 지난 2011년에도 ‘8.29경술국치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제정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경술국치일을 다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그날만큼은 곱씹어 반성하여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을 ‘국가가 기념하는 날’로 삼는 것이 부당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경술국치일의 국가기념일을 주장하는 측은 “국가기념일은 국경일과 다르다”고 말한다.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법률로 지정한 날로, 3∙1절(3월1일), 제헌절(7월17일), 광복절(8월15일), 개천절(10월3일), 한글날(10월9일)이 있다. 이와 달리 국가기념일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부가 제정하고 주관하는 기념일로 ‘좋은 날’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충일(6월6일)과 식목일(4월5일)뿐 아니라 6∙25사변일(6월25일)과 4∙19혁명 기념일(4월19일)도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있다. 

 

2015년 8월28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경술국치를 추념하기 위해 열린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 기획전에서 한 시민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찬 음식 먹으며 가슴 깊이 치욕 새겨

 

8월29일 전국 곳곳에서 ‘뼈아픈 교훈을 새기고 역사의식을 굳건히 하자’는 취지로 행사를 열며 경술국치일을 기억했다. ‘치욕의 장소’인 서울 남산의 통감관저 터에서는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억의 터’ 제막식이 열렸고, 광복회는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추념식을 열고 식은 죽을 먹으면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되새겼다. 충북 청주에서는 태극기 나눠주기와 찬 음식 먹기 등의 행사가 실시됐다. 참석자 모두 맨바닥 에 앉아 찬 음식을 먹으며 그 날의 치욕을 가슴깊이 새기자는 의미다. 경북 안동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정신을 새기는 행사가 열렸다.  

 

이 가운데 일부 지자체에선 국기 게양을 두고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경술국치일의 의미에 대해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지자체 조례상 ‘국기게양일’이 아닌 지역도 있어 일부 공공기관과 일선 학교만 조기를 게양하거나, 일반적인 게양 방법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일도 생기기도 했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국회의 입법절차에 따른 (경술국치일) 국가기념일 지정이 아직 되지는 않았지만 2013년 8월 경기도의회 조례가, 올해 7월에는 서울시의회에서 경술국치일 당일 조기게양 조례가 제정되어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며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건국절 제정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행정기관과 일선학교에서 국치일 조기게양을 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모우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의미 있는 일”이라 강조했다. 

 

나라의 치욕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도 일어났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은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국사 지식 캠페인-경술국치’에 관한 카드 뉴스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전파했다. 이번 캠페인에 대해 서경덕 교수는 "삼일절 및 광복절 등 큰 기념일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경술국치일 같은 역사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날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한국사 지식 캠페인'을 통해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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