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vs ‘세이브 일베’,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 구민주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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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 오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익명의 이용자가 글을 올렸다. 자신이 ‘딥웹(Deep Web)’, 즉 일반 검색 엔진으로 찾을 수 없는 숨은 웹페이지들을 둘러보던 중, ‘세이브 일베’의 운영자 신상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식은 순식간에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로 퍼졌고 온종일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세이브 일베’란 일베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모두 복제·저장해두는 ‘미러링’ 사이트다. 일베에서 해당 글을 삭제하더라도 이곳에서는 기록이 지워지지 않고 유지된다. 일베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인을 향한 무분별한 게시물들이 자주 올라오는 곳. 그러다보니 글을 올린 뒤 논란이 일어 삭제하는 일도 빈번하다. 

 

반면 세이브 일베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게시자도, 게시물로 생긴 피해자도 게시물을 건드릴 수 없다. 오직 운영자의 이메일을 통해 정식으로 글 삭제를 요청해야 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삭제에 따른 비용이 최소 250달러다. 사진이나 캐시(데이터 임시 저장)까지 모두 지우는 비용은 350달러다. 1시간 내 빠른 삭제를 원한다면 50달러를 또다시 얹어야 한다. 거래는 계좌 추적이 어려운 비트코인으로만 이루어진다. 물론 세이브 일베의 서버는 해외에 있다. 그 때문에 그간 일베 게시판에는 신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글이 여러 차례 올라왔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가해지지 못했다.

 

글 삭제를 요청한 일베 이용자들이 가장 분노한 부분은 바로 세이브 일베 측의 보복성 정보 공개였다. 글을 지워달라는 요청 이메일을 보낸 후 바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세이브 일베 운영자는 요청 당사자의 글과 이메일 주소를 사이트 대문에 걸어 공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예를 들어 사례를 보자. 피해자 A씨의 경우, 자신의 얼굴이 누군가에 의해 무단으로 일베 게시판에 올라와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세이브 일베에 즉각 삭제를 요청했지만 이들은 빠른 삭제를 위한 추가 지불을 요구했고, A씨는 결국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자신의 얼굴을 내릴 수 있다.

 

B씨도 자신이 분실한 신분증 사진이 누군가에 의해 게시되는 일을 겪었다. 신상 공개가 두려웠던 B씨는 즉시 세이브 일베에 삭제를 요청했지만 바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사이트 대문에 자신의 신분증 사진이 게재되기도 했다.  

 

이 같은 불만과 피해 사례들이 하나둘 쌓이던 가운데 운영자 신상이 공개된 것이다. 일베 이용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거센 반응을 보였다. 운영자의 얼굴과 연락처는 물론, 아내의 실명과 사진까지 퍼뜨리며 신상털기를 했다. 결국 모든 신상이 공개된 세이브 일베의 운영자는 처음 신상과 관련한 글이 올라온 지 하루도 안 돼 사이트를 폐쇄했고, 자신을 공격한 일베 이용자들을 신상 유포와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고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베 내부에서는 ‘잊힐 권리’를 이용해 돈벌이를 해온 운영자에 대한 마땅한 보복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일베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비단 일베만의 일은 아니다. 오늘날 온라인 커뮤니티 등 표현 공간이 많아지면서 과거의 기록을 말끔히 지우길 원하는 이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영구적인 디지털 기록들이 주홍글씨가 되는 것을 막고자 ‘잊힐 권리’를 보장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이다. 정보마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진 디지털 시대의 대한 반작용이다.

 

정경석 변호사는 “내가 올리거나 내 정보가 담긴 글에 대해 타인이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게시글을 관리하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라면 당사자가 원할 경우 삭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옳다는 뜻이다. 여기에 금전을 요구하는 행위는 위법의 소지가 있다. 정 변호사는 “돈을 지불해야만 정보를 삭제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정보를 더욱 공개해버리는 세이브 일베의 행위는 협박에 가깝기 때문에 공갈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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