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프의 축출로 종결된 남미 좌파 블록의 붕괴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9.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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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결국 상원 전체회의 최종 표결로 탄핵을 당했다. 그는 두 가지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브라질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었고, 브라질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그의 탄핵사유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하다. 공식적인 탄핵 사유는 분식 회계와 의회 승인 없이 회계를 조작한 부정사건 개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개인적인 부정 축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재정 상황을 좋게 보이기 위한,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분식회계이므로 탄핵까지는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문에 탄핵 이야기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 가결될 거라고 점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타임지는 8월1일, 브라질 리우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호세프 대통령과 인터뷰를 가졌다. 타임지는 그를 두고 ‘생존자’라는 말로 한줄 평가를 내렸다. “1970년대 브라질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무장 게릴라 활동을 펼치며 구금과 고문을 견뎌낸 생존자”.

 

다음은 타임지와 호세프의 인터뷰 일부다. 당시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 중이었다.

 


당신에 대한 탄핵은 어찌되고 있나.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탄핵이 됐다. 브라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군사 쿠데타가 아니다. 의회 쿠데타다. 의회 내부를 갉아먹어가며 끝내 오염시키고 마는 내부 쿠데타다. 나는 이것이 전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존중한다. 이 전쟁에서 무기는 토론이며 설득이고 대화다.

 

탄핵이 부결되면 어쩔 계획이냐.

 

우리는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 동시에 주요한 도전과제가 있다. 바로 브라질의 경제성장이다. 다만 중산층과 빈곤층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그런 성장이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그의 이런 바람은 탄핵안 가결로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당신에 대한 탄핵의 근간에 성차별적인 시각이 있다고 보는가.

 

실상 그것은 여성혐오증(Misogynistic)이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여성에 대한 매우 일반적이고 정형화된 평가가 이뤄진다. 여성들은 히스테리컬하게 그려지거나 냉담하고 차가우며 비정하게 그려진다. 나는 차갑고 단단하고 비정한 사람으로 묘사됐다. 한편으로는 매우 히스테리컬한 사람처럼 알려지기도 했다.

 

계속해서 싸워갈 것인가.

 

나는 일찍부터 싸우는 법을 배웠다. 나는 고문의 고통을 견뎠으며 잘 싸워왔고 잘 살아남아왔다. 나는 암과도 싸웠다. 탄핵 역시 마찬가지다.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싸울 것이다.

 

브라질의 경제 위기에 책임감을 느끼는가.

 

우리는 브라질에 닥칠 최악의 위기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경기 순환 경향과 반대되는 정책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2015년 브라질의 위기를 가속화한 것은 정치적 위기였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위기가 브라질을 불황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브라질 정부의 ‘좌파 실험의 실패’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나아가 한때 남미 대륙을 물들였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운동)’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2010년 이후 남미 각국에서 불거진 경제위기와 좌파정권의 장기 집권에 따른 부패 스캔들로 각국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호세프 대통령은 ‘남미 좌파의 아이콘’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정치적 적자였다. 남미 좌파 블록의 맏형 역할을 해온 브라질 좌파 정권을 붕괴 시킨 우파의 바람은 브라질을 넘어 남미 대륙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왜냐면 브라질에서는 호세프를 대신해 보수우파 성향의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기 때문이다. 

 

남미 국가들 사이에 좌파가 퇴진하고 우파가 약진하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친 기업 성향의 우파 정치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12년간 지속된 좌파 아르헨티나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곧이어 12월에 치러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도 중도 보수주의를 표방한 야권 연대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17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의회 과반수를 내줬다.

 

페루도 우파 정권으로 교체됐다.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출신인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후보가 올해 6월 결선투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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