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두테르테’ 유럽에도…
  • 박혁진 기자·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9.06 10:33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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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포비아’로 민심 자극하는 유럽 정치인들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이 어느 정도 ‘포퓰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필리핀 국민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부패에 찌들어 있던 필리핀의 민심을 정확히 알고, 그 부분을 적절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처럼 ‘포퓰리즘’을 무기로 대중의 인기를 구가하는 정치인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 세계 정치의 트렌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올라선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사정은 어떨까.

 

프랑스 역시 두테르테나 트럼프처럼 포퓰리즘과 극우 선동을 무기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정치인이 이미 존재한다. 바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창립자인 장 마리 르펜이다. 막말로 전 세계를 경악시켰고, 2002년 대선 결선 진출이라는 대이변을 낳으며 프랑스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인물이다. 어쩌면 프랑스는 미국이 겪고 있는 극우정치인의 대선후보 지명과 같은 사건을 이미 10년 전에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이 제1정당의 자리를 위협하는 거대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장 마리 르펜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됐던 홀로코스트를 부정했으며, 유럽연합 탈퇴와 프랑 화폐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모든 이민자들에 대해 ‘차별’이 아닌 ‘철저한 배척’을 주장하는 등 모든 정책에 있어 너무나도 단순한 해법들을 제시해 왔다. 르펜의 이런 정책은 한편에서는 반발을 불러왔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열광적 지지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장 마리 르펜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직 대통령이자 우파 공화당의 대선 경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다. 8월22일 부르키니 논란이 한창일 당시 대권 도전을 선언한 사르코지는 “프랑스 전역에서 부르키니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공공장소에서만 금지됐던 부르카를 회사와 대학에서까지 금지해야 한다고 나섰다. 잇따른 테러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 커져가는 반이슬람주의에 기대는 전형적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산층의 세금 감면 10%를 천명하는 듯 전형적인 선심성 정책으로 표심을 자극했다. 사르코지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프랑스 좌파 사회당의 마뉘엘 발스 총리는 “사르코지와 그의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프랑스 시사주간 ‘챌린지’의 브뤼노 로저 프티 기자는 사르코지의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낙인찍기’ 전략에 대해 “당내 경쟁자인 알랭 쥐페를 물리치기 위한 사악한 전략”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르코지의 이러한 포퓰리즘 정책은 현재 그의 당내 지지도가 4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지명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인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 AP 연합


이탈리아의 트럼프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역시 이런 포퓰리즘 열풍이 정치지형을 흔들고 있다. 지난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 첫 여성 로마 시장, 비르지니아 라비를 당선시키며 돌풍을 일으켰던 ‘오성운동’이 대표적이다. ‘오성운동’은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인 베페 그릴로가 2009년 10월4일 만든 정당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인터넷 무료화를 주장하는 등 포퓰리즘 성격이 있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오성운동은 창당 4년 만에 치러진 2013년 총선에서 단숨에 원내 3당이 됐다. 2013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이탈리아 하원에서 25.55%의 지지율을 얻어 630석 중 109석을 차지했고, 상원에서 23.79%의 지지율을 얻어 315석 중 54석을 획득해 원내 제3당이 됐다. 같은 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하원 345석, 상원 123석을 얻었으며, 자유의 인민은 하원 125석, 상원 117석을 얻었다. 

 

북부 이탈리아 지역 정당이자 극우 정당 당수인 마테오 살비니도 비슷하게 대중의 마음을 얻고 있다. 그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북부 이탈리아의 지역 정당이자, 이탈리아 정치지형에서 대표적 극우 정당인 ‘북부동맹’의 당수가 됐다. 살비니는 이탈리아의 각종 토크쇼에 출연하고 상반신 누드로 잡지 표지모델에 등장하는 등 이탈리아 언론과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도발적 표현들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언론에서 사용하는 ‘이민자’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무조건 ‘불법체류자’라는 표현만을 고집하며 대중을 자극한다. 불도저 이미지에 “불법체류자는 집으로 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그는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바티칸을 향해 “그들을 교황청이 다 맡아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고 응수한다. 기존 정치권은 물론 바티칸까지 들이받는 그의 모습이 영웅시되고 있는 셈이다.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당수 © AP 연합


포퓰리스트 가장 큰 무기는 ‘말’

 

이러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정은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봐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비해 더욱 경제사정이 좋지 않고, 난민도 더 많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포퓰리즘이나 극우 정치인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스페인의 경우 같은 언어권인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되는 이민자들까지 덤으로 있기 때문에 난민 문제에 있어 한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난민 문제를 무기로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과거 경험 때문이다. 극우 정당 전문가인 장 이브 카뮈에 따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 프랑코주의와 살라자리즘 때문이다”고 말한다. 프랑코와 살라자르라는 두 독재자의 체제가 종식된 것이 1970년대, 즉 최근의 일이어서 아직 독재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역사적 사실로 인해 현재까지도 극우 파쇼적인 정치 형태에 대한 경계심이 두 국가 국민에게 남아 있는 셈이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가장 큰 무기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장 마리 르펜이 사회당을 꺾었던 2002년 대선 당시 이민자 문제와 치안 불안으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사회당의 결선 진출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회당 후보였던 리오넬 조스팽 총리였다. 우파의 시라크 대통령 집권기였고, 동거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그는 내각의 수장이었다. 경제 실적은 나쁘지 않았으며, 그는 탁월한 행정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펜보다 더 적은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그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1차 투표 직전까지 그의 참모들은 끊임없이 조스팽 후보에게 “말이 너무 어렵다. 때로는 우리도 이해가 안 된다”고 직언했다. 그러나 조스팽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동거인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연인이었던 철학자다. 너무 똑똑했던 그는 대중이 그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줄 것이라고 끝까지 믿었던 것이다. 그는 나쁘지 않았던 국정운영 성적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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