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중국으로 가고, 제주엔 한숨만 쌓여
  • 제주=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07 09:33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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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현지 르포] 유커 300만 시대 ‘제주 관광’의 불편한 진실 중국계 여행사, 제주 관광 인프라 싹쓸이

8월29일 제주공항 1층. 막 비행기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1층 대합실에서 공항 주차장까지 가는 도로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한눈에 봐도 중국인들로 보이는 단체관광객이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국어 푯말이 달린 관광버스. 일행이 차에 오르자 관광버스들은 일제히 차량으로 북적거리는 주차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는 제주에는 경기불황 속 ‘단비’ 같은 소식이다. 실제로 올 초부터 7월말까지 204만 명의 외국인이 제주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같은 기간(144만 명)보다 41.1%나 늘어난 것이다. 이 중 중국인은 176만 명으로,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8명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인 셈이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는 무려 43.8%나 늘어난 수준이다. 지금 추세라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2014년(285만 명)을 뛰어넘어 300만 명을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몰려오는 유커를 감안할 때, 현재 제주도는 관광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통상 유커는 씀씀이가 크기로 유명하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쇼핑을 ‘쉐핀(血屛)’이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피 터질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진열대 위에 있는 상품을 빗자루로 쓸 듯이 싹쓸이한다는 뜻의 ‘싸오훠(掃貨)’도 유커들에게는 쇼핑을 대신해 쓰는 신조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유커 유치에 혈안인 마당에 제주도 입장에서는 매년 20~30%씩 수요가 늘어나니 복덩이가 제 발로 굴러들어오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대표적 관광지인 성산일출봉 일대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몰려드는 유커를 바라보는 제주 관광업계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제주도에서 렌터카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홍아무개 대표는 “외형적으로 규모야 커지고 있지만 이익의 상당부분을 몇몇 회사들이 나눠먹는 과점 구조”라면서 “특히 중국계 자본의 파상공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 같은 불균형 성장이 나타난 배경은 중국계 자본이 제주도 내 여행사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중국 현지 여행사로부터 대규모 여행객을 받는 조건으로 관광객 한 명당 얼마씩 인두세(人頭稅)를 중국으로 보낸다. 현재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상품 중 상당수가 우리 돈 30만원 미만의 저가형이다. 제주도 내 사무실을 두고 있는 중국계 여행사 입장에서 중국 현지 여행사에 인두세를 주고 난 후 항공료 등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별로 없다. 때문에 이들은 제주도 내 특정 기념품점과 면세점·식당 등에 관광객을 몰아주는 대신, 리베이트 명목으로 업체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고 있다. 

 

결국 이들 중국계 여행사에 리베이트를 줘야 하는 식당·기념품점에서는 방문 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워 수입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먹이사슬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최근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현재 제주도 내 중국인 단체관광은 뉴화청여행사·중한국제상무·양명여행사·국일여행사 등 중국계 4~5곳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제주도 관광업계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우리 호텔은 중국인 소유가 아니다’ 현수막

 

최근 이들 중국계 여행사는 숙박시설·식당·기념품점 등 유관 업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추세다. 한라수목원 인근에 위치한 P화장품매장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은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국내 대기업 제품이 아닌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중견기업 제품들이다. 매장에 들어가 보니 안내점원이 모두 중국인이다. 서툰 한국말로 이들은 “우리 매장을 찾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방문객이 중국 단체관광객”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시내와 연계된 버스노선이 많지 않아 개별적으로 매장을 찾는 유커 역시 거의 없다.

 

신(新)제주로 불리는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한 화장품매장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으로 여행 간다고 하니 주위 친구들이 한국산 유명 화장품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여행사가 데리고 온 매장에서 파는 것은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짝퉁’(假的) 화장품이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입구에서 만난 중국인 판빙은 “2000위안(약 33만5000원)만 내면 비행기 타고 3박4일간 한국을 다녀온다고 해 좋아했는데, 막상 와보니 맛없는 음식에 형편없는 숙소에서만 지내, 다시는 (제주에) 오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헛개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어 간에 좋다고 알려진 호간보(護肝寶)와 인삼 역시 상당수 대형 매장의 실소유주는 현재 중국 자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 매장은 법인 등기부등본에는 한국인을 대표로 내세워 “우리는 중국인 매장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이면에는 중국인이 사실상 전주(錢主) 역할을 하고 있다.

 

숙박시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관련업계는 K리조트·S호텔·A호텔·P호텔 등을 중국계 여행사가 소유하고 있는 숙박시설로 꼽는다. 제주공항 근처에 위치한 A호텔 앞에는 ‘우리 호텔은 중국인 소유가 아니다’라고 쓰인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단체손님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이 같은 소문이 난 것 같다”면서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현수막이 걸린 호텔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음식점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 제주도 내에는 “대형 흑돼지구이 전문점 N점이 최근 중국 자본에 팔렸다더라” “중국인이 대형 S횟집을 샀다더라” 하는 식의 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용두암은 입장료를 받지 않아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반드시 들르는 명소다(왼쪽 사진). 용두암 주차장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송창섭

 

 

 

주요 매장에 식당까지, 사실상 중국인 소유

 

이와 관련해 관계 당국에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2013년 제주참여환경연대가 가이드 면접조사 등을 토대로 발표한 것이 최근 자료다. 당시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제주시내 6개의 인삼판매점과 기념품점 모두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6개의 화장품점 역시 중국인 소유라고 발표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주요 매장들이 법인 대표를 한국 사람으로 바꾸는 등 더욱 음성화되고 있다”면서 “해마다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는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2013년보다 숫자가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계 자본이 교통편까지 확보하면서 중국인들이 제주도에서 쓰는 돈을 사실상 모두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국내 저가항공사와 협약을 맺어 제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으며, 성수기에는 중국 현지에서 전세기까지 띄우고 있다. 

 

중국에서 전세기를 타고 제주로 와 중국 여행사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중국인 소유의 상점과 중국인 소유의 식당, 중국인 소유의 숙박시설에서 전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저가형 제주 관광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유커 300만 명 시대에도 돈은 중국인들이 다 벌어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좌공일 제주경실련 사무처장은 “중국계 자본들은 이미 독점적 지위를 형성하는 등 제주의 관광시장에서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며 “중국 자본이 소유한 점포와 일부 면세점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는 사이 도내 영세업체는 영업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들르는 제주도 내 관광지 역시 하나같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으로 구성돼 있다. 용두암·한라수목원·도깨비도로 등이 대표적이다. 8월29일 용두암 주차장에 들어선 관광버스 5대에서 200여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용을 신성시하는 중국인들에게 용두암은 공짜로 제주의 비경을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주변 지형에 의해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도립미술관-축산마을 사이에 위치한 도깨비도로 역시 저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꼭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다. 당일 현장을 방문해 보니 비상등을 켠 차들이 줄지어 천천히 도로를 달리고 있다.  

 

 

제주가 버는 돈, 전체 관광비용의 5% 미만

 

제주를 찾은 중국인들이 쓰고 간 돈은 얼마나 될까. 제주관광공사가 펴낸 ‘2014 제주특별자치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를 보면, 2014년 제주를 찾은 중국 관광객의 1인당 평균 지출비용은 2015달러(약 224만원)였으며, 이 중 항공요금 등이 포함된 여행사 경비와 면세점 쇼핑비용을 빼고 나면, 실제론 378달러(약 42만원)밖에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중국계 상점·식당에서 수입을 가져간다고 할 경우, 토종 자본이 벌어들이는 돈은 100달러 미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위챗 등 SNS를 활용해 가이드마저 중국인들을 이용하는 사례까지 생기면서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제주시 이화동에 사는 김지훈씨는 “제주대·한라대·제주관광대 등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 중국 학생들이 위챗을 통해 소개받아 단체관광객 가이드를 하고 있다”면서 “제주도가 무자격 가이드에 대한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워낙 음성적으로 활동해 단속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가 지나친 중국 자본들의 제주도 내 활동에 대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제주특별자치도는 싸구려 덤핑 관광을 집중단속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못하다. 여행업계에서는 저가형 관광에 대한 규제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제주만의 독특한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지난 8월 ‘유커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쓴 션지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싼커(散客)’라고 불리는 중국인 개별여행객의 지출이 단체여행객보다 많았다”면서 “시간과 쇼핑 선택의 자유가 있는 개별여행객들을 적극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가림 호서대 교수 역시 8월19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경제와 관광 포럼’에서 “제주가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저가형 상품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고도의 규범’을 갖춘 안전하고 깨끗한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즈 허브 제주항, 주변 관광 인프라는 ‘빵점’

 

세계 크루즈업계에서 한·중·일 노선은 ‘알짜배기 노선’으로 불린다. 경제력 증가로 크루즈를 통해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중국인 수요가 늘면서 세계 모든 크루즈 선사(船社)들이 앞다퉈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국 크루즈 상품은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통상 크루즈는 3박4일, 또는 4박5일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기간 중 배를 타고 먼 곳을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상하이(上海)항과 톈진(天津)항에서 출발하는 배가 3박4일, 4박5일 만에 해외를 다녀오려면 갈 수 있는 곳은 한국·대만·일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제주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빼놓지 않고 거치는 기항지(寄港地)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역시 마찬가지다. 크루즈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일본은 주요 항구도시마다 대형 크루즈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항구가 정비돼 있지만, 지리적인 여건상 외국을 쉽게 다녀올 수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가 제주외항을 정비해 크루즈 전용부두를 마련하자 일본에서 제주, 제주에서 중국을 오가는 정기 크루즈 노선이 ‘황금라인’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8월말 현재 323척의 크루즈선을 타고 100만 명의 외국인이 제주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기항이 예정된 크루즈만 540척이다. 지난해 크루즈 관광객은 240만 명이었으며 이 중 200만 명이 중국인이었다. 제주도는 지난해 크루즈선이 제주를 찾아오면서 이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 효과를 3149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배에서 내려 제주도에서 쓴 지출은 100억원이 채 못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중국에서 들어오는 크루즈는 저가형 상품 위주다. 한 크루즈업계 관계자는 “상하이나 톈진에서 출발하는 배는 중국 여행사가 손님을 모집하고 크루즈선은 선사(船社)에서 빌리는 방식이며, 대부분이 제주에 있는 중국 여행사와 전 일정을 조율해 상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루즈선 한 척당 평균 2500명씩의 관광객이 제주항으로 오고 있지만, 내리자마자 준비된 관광버스를 타고 면세점과 공짜 관광지, 기념품점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코스가 짜여 있다.  

 

항구 주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크루즈 문화가 발달한 유럽은 주요 기항지마다 크루즈 관광객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갖춘 반면, 현재 제주외항 주변에는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다. 김연경 카니발코퍼레이션코리아 실장은 “도착 시간에 맞춰 제주외항과 시내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해 개별 관광객들을 최대한 도심권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펴야 하며, 일본처럼 제주 문화를 콘텐츠로 만들어 소개하는 것도 재방문율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인근 전통시장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제주도와 한국관광공사는 제주외항에서 가장 가까운 동문시장을 재정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제주항에서 동문시장까지 도보로 갈 경우 20~25분이 소요된다. 크루즈 관광객 입장에서는 다소 먼 거리다. 

 

또 인근 제주시 탑동 칠성통과 연계된 교통노선 확충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크루즈업체 관계자는 “현재 제주시가 3대의 버스노선을 운영하고 있지만, 외국어로 표기된 버스노선표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제주에 처음 온 외국인이 대중교통으로 시내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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