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 속에 잠든 역대급 재능, 호세 페르난데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9.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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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나 자란 한 소년은 끊임없이 쿠바를 벗어나려고 했다. 2005년부터 3번이나 미국으로 가려고 망명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실패했다. 그 덕에 교도소에서 복역한 적도 있다. 그의 탈(脫)쿠바 노력이 성공을 거둔 때는 2008년이다.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보트에 올라 카리브해를 건너기 위해 4번째 도전을 했다. 도중에 거센 파도가 보트를 덮쳐 어머니가 휩쓸리면서 바다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당시 15살의 호세 페르난데스는 바다에 뛰어들어 기진맥진한 어머니를 겨우 보트 위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그들의 탈출은 성공했고 쿠바를 벗어나 미국 땅에 당도할 수 있었다.

 

호세 페르난데스의 아버지인 라몬 히메네스는 2005년 이미 쿠바를 벗어나 미국 플로리다 템파에 정착했다. 그리고 미국에 도달한 그의 아들을 탬파에 있는 알론소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쿠바 소년인 그는 모국에서 야구 선수를 했다. 그가 미국에 온 이유도 야구로 성공하기 위해서였다. 15살의 페르난데스는 당시 82마일 정도를 던지는 투수였다. 그는 여기에서 그의 성장에 중요한 멘토를 만났다. 올랜도 치네아였다. 

 

페르난데스는 네 번의 쿠바 탈출을 시도하는 동안 인간관계와 교육, 야구 등을 모두 강탈당했다. 탈출이 실패하고 쿠바 정부가 어린 소년을 감시하면서 모든 게 멀어졌다. 반대로 그가 얻은 건 강한 정신력이었다. 어떤 종류의 공포나 압박감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소년의 멘탈은 마운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 그를 야구와 가깝게 만드는 게 치네아가 공들인 작업이었다. 일주일 내내 훈련하기도 했다. 알론소 고등학교의 일정이 끝난 뒤 6~9시까지는 개인 훈련을 도왔다. 그렇게 페르난데스는 점점 무지막지한 투수로 변신했고 전국구 유망주로 떠올랐다. 고교리그에서만 무려 3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

 

201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마이애미 말린스는 드래프트 1순위로 페르난데스를 선택했다. 전체 14위였다. 페르난데스는 순조롭게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올스타 퓨처스게임에 출전했고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2013년 유망주 랭킹에서 그는 전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 4월7일 ,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그는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5이닝 1실점. 삼진도 8개를 잡았다. 5월4일 필라델피아 필리스 전에서는 7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프로 첫 승리를 기록했다. 같은 해 7월16일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뽑혀 내셔널리그 투수들 중 5번째로 등판했고 더스틴 페드로이아를 삼진으로,미겔 카브레라를 내야 플라이로, 크리스 데이비스를 헛 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았다. 2013년 내셔널리그 올해의 신인은 단연 호세 페르난데스의 차지였다. 우리가 이때 페르난데스의 이름을 많이 접한 이유가 바로 류현진 때문이었다. 14승의 류현진을 제치고 신인상을 수상한 게 페르난데스였기 때문.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클레이튼 커쇼와 애덤 웨인라이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14년 5월16일 , 토미존 수술을 받고 2014년 시즌 아웃 됐다. 당시 8경기만 선발 등판했지만 등판한 경기에서 페르난데스는 대부분 마운드를 지배하며 에이스급의 투구를 선보였다. 4승2패, 방어율 2.44,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0.95, K/9(9이닝당 탈삼진) 12.2라는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불과 데뷔 2년차 선수의 성적이었다.

 

2015년, 페르난데스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에서 부활한 뒤 시즌 중반에 복귀한 뒤 11경기에 선발 등판해 메이저 데뷔 3시즌 연속 방어율 3.00 미만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6승1패, 방어율 2.92,  WHIP 1.16(1.16이 가장 나쁜 기록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64.2이닝을 던지며 뺏은 삼진은 79개로 K/9 역시 3년 연속 9.0 이상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능력을 과시했다. 

 

부상을 완전히 떨친 2016년은 호세 페르난데스가 풀타임을 뛸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짐작하게 해 준 해였다. 16승을 거두고 있었고 방어율도 2.86을 기록하고 있었다. 쓰리쿼터로 던지는 페르난데스의 패스트볼은 평균 95마일(약 153km/h)에 달했다. 최고 구속 100마일의 포심과 82.5마일의 슬라이더가 주 무기였다. 체인지업과 투심도 즐겨 던지면서 통산 K/9이 11.3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투수였다. 통산 볼넷 비율은 9이닝당 2.6개로 준수한 편이었는데  2015년에는 1.9개를 기록하는 등 갈수록 제구력도 향상돼 갔다. 그의 통산 피홈런율은 경기당 0.6개에 불과하다. 

 

한때는 류현진과 신인왕을 경쟁했고,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할 에이스로 탈바꿈하고 있던 호세 페르난데스는 9월25일 새벽(미국 현지시간) 마이애미 해변 부근에서 발생한 보트 사고로 사망했다. 불과 24세의 에이스가 사라졌다. 보트에는 페르난데스 외에 2명의 남성이 타고 있었는데, 3명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애미 말린스는 사고 당일 경기 중지를 발표했다.

 

국내 야구팬에게 '호페'로 불리던 호세 페르난데스는 열악한 쿠바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보트를 타고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미국 땅에 당도해 압도적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15살 때 건넜던 그 바닷 속에 허망하게 잠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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