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오승환, “진정한 승부는 내년부터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27 17:20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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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이어 美 평정 나선 ‘스톤붓다’ 오승환 미국 현지 인터뷰 “서로 알고 만났을 때 어떤 결과 나올지가 관건”

시작은 중간계투였다. ‘필승조’ ‘추격조’로 불리며 선발과 마무리를 잇는 중간에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다가 원래 마무리를 맡았던 선수가 흔들리며 팀은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마무리 후보군 중에 한 명을 낙점해야 했기 때문이다. 포수 출신인 팀의 감독은 서너 명의 마무리 후보군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했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한동안 뜸을 들였다. 모두가 마무리 후보이고, 그날 가장 좋은 컨디션을 나타내는 선수가 마지막에 올라갈 것이라면서. 그런데 7월이 넘어서면서부터 감독은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한 선수를 마무리로 올렸다. 그 팀에 입단한 최초의 동양인 선수, 최초의 한국인 선수 오·승·환(34)이었다.

 

 

34세의 루키 신고식

 

4연승을 내달리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 마지막 경기(9월22일)에서 1대11로 대패한 후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전날과 달리 잔뜩 가라앉았다. 선발투수로 나온 루크 위버는 2이닝 7피안타 1탈삼진 1볼넷 6실점으로 시즌 4패를 떠안은 상태에서 기자들과 힘든 인터뷰를 이어갔다. 곧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클럽하우스를 떠나야 하는 선수들. 하나둘씩 가방을 챙기는 가운데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일부 선수들 라커 앞에 유니폼이 아닌 색다른 의상들이 준비돼 있었고, 비닐 봉투에 담겨 있던 옷들을 꺼내 입는 선수들이 눈에 띈 것이다. 

 

그렇다. 이날은 카디널스의 ‘루키 헤이징(Rookie hazing)’ 데이. 오승환을 비롯해 마이크 마이어스, 알렉스 레이예스, 맷 보우만, 루크 위버, 알버트 로사리오 등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선수들이 원정 경기를 떠나며 저마다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이동하는 것이다. 루키 헤이징, 한마디로 루키 신고식 개념인 이 이벤트는 메이저리그의 전통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시즌을 마무리하는 9월 원정 때 메이저리그 30개 팀은 루키들에게 재미난 추억들을 선사한다. 오승환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 투수 ⓒ 이영미 제공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 투수 ⓒ 이영미 제공

 

오승환은 일본의 전자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동생인 ‘루이지’를, 그의 통역인 구기환씨는 형 ‘마리오’ 분장을 했다. 서른네 살(한국 나이로 서른다섯 살) 루키가 평생 해 본 적도, 앞으로 해 보지도 않을 게임 캐릭터 의상을 입고 콜로라도 덴버에서 시카고로, 또 시카고에서도 선수단 호텔 근처 거리를 활보하다니…. 분명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임은 분명하다. 

 

오승환은 “그래도 다른 선수가 입은 ‘쫄쫄이’ 의상이 아니라 다행이었다”면서 “게임 캐릭터가 일본 만화라고 지적하신 분들도 있지만 이건 내 선택 사항이 아닌 팀과 선수들이 정해 준 대로 입는 방식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임시’ 아닌 ‘전담’ 마무리 오승환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담 마무리 오승환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카디널스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목숨처럼 여기는 감독과 코치들한테 오승환의 존재는 분명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277세이브)과 일본(80세이브)에서 357세이브를 기록한 그이지만 메이저리그의 커리어가 없는 그가 데뷔 첫해부터 이토록 뛰어난 성적과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세인트루이스에는 기존의 트레버 로젠탈이란 뛰어난 마무리 투수가 존재했다. 아무리 한·일 양대 리그의 구원왕을 차지했던 오승환이라고 해도 로젠탈이 건재한 한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로젠탈은 올 시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2014년 45세이브(평균자책점 3.20), 2015년 48세이브(평균자책점 2.10)를 기록했던 올스타 선수가 올 시즌에는 42게임에 나서 14세이브(평균자책점 5.09)밖에 성적을 내지 못했고, 어깨 통증까지 더해지면서 마무리 자리를 오승환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오승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선 로젠탈이 마무리를 맡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로젠탈은 우리 팀에서 가장 밀고 있는 나이 어린 선수이다. 팀의 미래를 위해선 나보다 로젠탈이 마무리를 맡는 게 바람직하다. 로젠탈의 컨디션이 돌아오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게 된다면 우리 또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다. 팀의 결정에 따르긴 하지만, 이런 방법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7월 올스타 휴식기 이전부터 세인트루이스의 매서니 감독은 세이브 상황이 될 때마다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오승환은 중압감이 큰 위치임에도 꿋꿋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마무리 전업 후 20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18번을 성공(90%)시켰다. 9월23일 현재 72경기에서 5승3패18세이브14홀드 평균자책점 1.79를 기록 중이다. 1할8푼1리의 피안타율, 0.89의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11.71개의 9이닝당 탈삼진 개수 역시 눈에 띄는 숫자들이다. 만약 오승환이 시즌 초반부터 마무리로 시작했다면 30세이브 이상은 충분히 기대해 볼 만했다. 

 

오승환의 기록을 팀 내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로 확대해도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후반기 구원 부문 MLB 전체 6위(내셔널리그 3위)이고 후반기 1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마무리 중 30이닝 이상을 던진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오승환에게 중간계투로 마운드에 오를 때랑 마무리로 공을 던질 때의 차이점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간에 등판하나 마지막에 올라가나 공 던지는 건 똑같은데 더 긴장할 게 뭐가 있겠나. 단, 마지막 이닝이라 그런지 타자들이 더 집중해서 승부하는 것 같다. 나로선 오랫동안 마무리를 맡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이 부분 또한 주어진 환경에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아닌 팀이 우선시되는 게 맞다.”

ⓒ 이영미 제공


피 말리는 와일드카드 경쟁

 

현재 세인트루이스는 와일드카드 진출을 놓고 뉴욕 메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다. 1게임 또는 0.5게임 차이 등 매일매일 달라지는 숫자들에 피가 마를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승환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오히려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려 한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더 집중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서로 즐기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일 것이다. 

 

“성적 내기를 주저하거나 우승을 바라지 않는 선수는 없다. 모두 예민해지고 힘들어질 수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 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시즌 내내 고생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기회가 주어졌다면 잡아야 하지 않겠나. 와일드카드 진출은 물론 월드시리즈까지 갈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가을 좀비’로 불린다. 가을만 되면 좀처럼 지지 않는 강팀으로 변모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포스트시즌 잔치에 단골손님으로 초대되는 세인트루이스이기 때문에 오승환으로선 정규 시즌 이후 팀의 행보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 코리안시리즈를, 일본에서 재팬시리즈를 경험했던 선수다.

 

“월드시리즈는 모든 선수들의 꿈의 무대 아닌가. 더욱이 나로선 한국과 일본에서 세이브 기록을 세우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기 때문에 이 리그의 최고 무대에 서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도 월드시리즈 경험 없이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나로선 팀을 잘 만난 덕분에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몸담았던 팀은 모두 최고 무대에 올랐고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또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가 그렇다. 이젠 내 운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다.”

한국 선수가 월드시리즈를 경험한 건 김병현이 유일하다. 오승환은 “(김)병현 형이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것처럼 나도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야구선수로선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만난 한국 선수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에서 여러 명의 한국 선수들을 만났다. 내셔널리그에 속해 있는 피츠버그의 강정호랑 가장 자주 만났고 동갑내기 추신수·이대호하고도 경기장에서 해후했다. 

 

“일본에선 (이)대호를 상대했었는데 메이저리그에 오니까 한국 선수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더라. 아무래도 낯선 땅에서 만나는 한국 선수들은 더 애틋할 수밖에 없다. 때론 마운드와 타석에서, 때론 맞대결 없이 헤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달리 친구들을, 후배를 만나는 기분이 참 묘하다.”

오승환 선수(왼쪽)가 동갑내기 추신수 선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영미 제공


지난 6월18일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 홈구장인 부시스타디움에서 추신수와 오랜만에 만났다.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대회 이후 첫 만남이었다. 10년 만의 해후에 두 선수는 살짝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추신수는 “세인트루이스로 원정을 오면서 우리 팀 선수들에게 (오)승환이와 나하고의 인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면서 “고등학교 때 승환이는 타자로, 난 투수로 맞붙었던 얘기부터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내용도 말해 줬더니 굉장히 신기해하더라”고 말한 바 있다. 

 

“불과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나랑 (류)현진이, 그리고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있었는데 올 시즌에는 정말 많은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 선수들 중에서도 고등학교 때 서로 상반된 포지션으로 만났던 승환이와 승부를 벌인 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계약금 137만 달러를 받고 미국으로 진출, 13년 후 1억3000만 달러의 FA 대박을 터트린 추신수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 그들이 맞대결을 펼친 건 6월19일 경기였다. 3대0으로 앞선 8회초 선발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2사 후 추신수를 상대한다. 평소 표정의 변화가 없던 오승환이 추신수를 보곤 살짝 미소를 지었다. 초구는 빠른 볼이 아닌 커브(이후 이대호는 영상을 통해 이 장면을 확인하고선 “와, 승환이가 신수를 상대하면서 초구에 커브를 던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재미있어 했다). 2구는 빠른 볼이었고 추신수는 파울로 커트했다. 유리한 볼 카운트 상황에서 오승환은 94마일(151km)의 빠른 볼을 던졌고, 추신수는 이를 제대로 받아쳐 중전안타를 만들어냈다. 추신수는 경기 후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사람 인연은 참 묘한 것 같다. 고교 시절 상대팀으로 만난 선수가 돌고 돌아 메이저리그에,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을 맺었다. 승환이의 메이저리그 입성 소식을 듣고 막연히 이런 상상을 했다. 시즌 중 카디널스와 만난다면 이번에는 내가 타석에, 승환이가 마운드에 서겠다고. 그런데 진짜 그게 현실로 이뤄졌다.”

 

메이저리거들이 인정한 오승환

 

9월1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인 AT&T파크. 3연패에 빠져 있던 세인트루이스로선 연패 탈출이 절실했다. 더욱이 샌프란시스코는 와일드카드 진출을 다투는 경쟁팀이 아닌가. 8회까지 1대2로 뒤진 상태에서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매서니 감독은 허벅지 안쪽 부상으로 8경기를 쉬었던 오승환 카드를 끄집어냈다. 팀의 1승이 간절했던, 3연패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서니 감독의 승부수였다.

 

오승환이 8회 던진 투구수는 모두 9개. 샌프란시스코의 중심 타자인 조 패닉, 버스터 포지, 헌터 펜스를 각각 2루수 뜬공, 우익수 뜬공,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오승환의 호투에 분위기를 탄 세인트루이스 타선은 9회초 2점을 뽑아내며 급기야 경기를 3대2로 뒤집었다. 매서니 감독은 9회에 다시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감독의 선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오승환은 2사 1·2루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결국엔 승리를 챙겼고 팀도 3연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기 후 샌프란시스코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헌터 펜스(유격수 땅볼 아웃)는 기자에게 “오의 슬라이더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빠른 볼·커터도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포수인 버스터 포지도 오승환의 남다른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오승환은 상대팀 선수들의 반응에 자세를 낮췄다. 

 

“올 시즌은 메이저리그 첫해라 상대팀 선수들이 내 공을 치기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년에는 또 다를 것이다. 다양한 분석과 연구를 할 것이고, 이미 날 경험한 선수들마다의 데이터가 쌓일 것이다. 진정한 승부는 어쩌면 내년부터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알고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올 시즌 내 공에 대해, 투구 운용에 대해 칭찬하는 소리는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승환은 올 시즌 내내 메이저리그 넘버원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몰리나에게 오승환의 장점을 물었다. 오승환의 어떤 점이 지금의 ‘스톤붓다’ 오승환을 만들고 있는지를. 몰리나는 명쾌하게 답변한다.

 

“오승환은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경험이 메이저리그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는 야구뿐만 아니라 선수 생활 전체가 훌륭하다. 그런 배경이 공에 힘을 실어준다. 지금의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어느 구장에 서도 그만의 투구를 선보인다. 난 그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마운드에서 최고가 되는 것. 그게 그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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