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ASSA 아세안] 세계 양강 G2는 우리가 주무른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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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 벌이는 아세안 국가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지역 패권을 놓고 미·중 간 줄다리기가 볼만 합니다. 아세안은 1970년대 미·소 냉전이 최고조였던 때에도 어느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지역 맹주인 인도네시아가 주축이 돼 비동맹회의를 구성한 게 단적인 예입니다.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었지만 최근 중국이 부상하면서 무게 추는 다시 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유야 돈 때문이지요. 그동안 아세안 내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을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특별히 해준 것도 없으면서 아쉬울 때만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반대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앞세워 팍팍 밀어주고 있으니, 돈에 죽고 돈에 사는 글로벌 ‘쩐생쩐사’ 시대에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 단적인 예가 지난 7월에 있었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입니다. 당시 회의에서 아세안 회원국 중 캄보디아는 대놓고 “남중국해 영토분쟁의 당사자는 중국이 아니다”라고 대변했으니 말 다했죠. 캄보디아만큼은 아니지만, 개최국인 라오스도 중국 쪽 입장을 많이 대변했다는 후문입니다. 지역 내 전통적 우방이었던 미국·일본으로서는 난감했을 겁니다. 

 

두테르테 필리핀대통령 ⓒEPA연합


튀는 두테르테의 언행에 속 끓이는 미국 

 

그런 가운에 최근 튀는 행동으로 주목받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마저 중국과 미국 사이를 계속 줄타기 해 미국 속을 끓이고 있습니다. 필리핀이 어떤 나라입니까? 전통적으로 아세안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입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이 취임 후 아시아 순방을 나설 경우,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아마 필리핀일 겁니다. 군사적·경제적으로 필리핀은 미국의 최고 파트너죠. 그런 필리핀이 중국으로 돌아선다? 미국으로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시나리오일 겁니다. 베트남을 친미로 돌려놔 한숨을 돌린 마당에 반대로 필리핀을 중국 쪽에 뺐긴 다면 아세안 내 힘의 무게는 다시 확 달라집니다. 

 

두테르테는 이미 독자외교 노선을 선언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더 나아가 러시아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가 필리핀의 경제 펀더멘털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두테르테의 철권통치가 해외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보고서를 내자 그는 이렇게 반발했습니다. “저는 그냥 제 식대로 할 겁니다. (투자자들이) 그게 맘에 안 들면 우리나라를 떠나세요. 우리 스스로 잘 알아서 시작할 테니…. 저는 중국에도 갈 수 있고, 러시아에도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아마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이 같은 결론에 대해 두테르테는 미국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두테르테 정부의 대미 외교정책은 간단합니다. 동맹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마약과의 유혈전쟁’ 등 내정 관련 간섭은 거부한다는 겁니다. 지난 9월15일 페르펙토 야사이 필리핀 외무장관은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연설에서 “우리는 영원히 미국의 ‘갈색 동생’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죠.

 

국제연합(UN)과 유럽연합(EU)의 거센 비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입니다. 우리나라 차기 유력 대선주자 중 한명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유럽연합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네요. “조만간 유엔사무총장, 그 반기(Ban ki)… 그 웃긴 이름 뭐 있잖아요? 반기문(Ban Ki-moon)인가 반기선(Ban Ki-sun)인가, 하여간 그 사람도 초청할 겁니다. 유럽연합도 부를 거예요. 그쪽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말이죠.” (9월22일 민다나오 화력발전소 완공식에서 두테르테) 

 

두테르테는 그러면서 슬그머니 자신의 해외 첫 순방지로 중국을 선택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현재 중국 정부와 방문 일정을 협의 중인데 대략 10월 중순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는 곧장 일본으로 날아갈 계획이라는군요. 일본도 미국 못지않게 아세안에 공을 들여온 곳이기에 필리핀의 괴짜 대통령 두테르테를 초청하기 위해 여러 루트를 통해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아마 두테르테는 두 나라에 가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겁니다. 물론 그의 선택은 누가 필리핀에 경제적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갈릴 것 같습니다. 이미 그는 지난 9월22일 민다나오 화력발전소 준공식에서 “중국에 가게 되면 우리의 조업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국방력 지원과 함께 경제 개발을 위한 투자 확대를 끌어낼 거고요. 

 

 

中 입장 대변하는 캄보디아도 눈에 가시

 

미국으로선 31년째 철권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도 눈에 가시입니다. 주요 국제회의마다 중국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는 캄보디아가 미워 보일 법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치러질 지방선거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캄보디아의 정국이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야당인사 등 반(反) 훈센 세력에 대한 인권 탄압을 시비 걸고 나선데 대해 훈센 총리가 반정부 활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군까지 동원해 경고했기 때문이죠.  

 

훈센 총리는 지난주 군에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 안보 파괴 세력을 제거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맞서 미국·유럽연합·일본 등 유엔 인권이사회 소속 36개국은 성명을 통해 캄보디아 정국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야당과 인권단체의 합법적 활동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미얀마를 통해 반정부 세력에 대한 측면지원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아웅산 수치가 사실상 국가원수로 활동하는 걸 보십시오. 공교롭게도 지난 9월15일 아웅산 수치는 미국을 국빈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미국 조야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는 군요. 두테르테‧훈센과 미국,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아세안에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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