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케 신화’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6 14:45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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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피로도 증가와 화제성 감소… 실력 있는 ‘흙수저’ 발굴 필요하단 지적도

《슈퍼스타K 2016》(Mnet)이 시작됐다. 그동안은 《슈퍼스타K 시즌1》 《슈퍼스타K 시즌2》, 이런 식으로 제목에 시즌을 명기했던 것이 이번엔 시즌이 아닌 ‘2016’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는 제작진의 각오가 읽히는 대목이다. 일단 심사위원단이 7명 체제로 변했다. 보컬 부문의 거미·김범수·김연우, 트렌드 부문의 길·에일리, 제작 부문의 용감한 형제와 한성호 FNC엔터테인먼트 대표, 이런 식으로 전문영역별 심사위원들을 배치했다. 1라운드 시기에 10초 단위로 끊어서 심사위원들이 각각 선택할 때마다 10초씩 노래 부를 시간이 연장되는 방식으로 구성의 변화를 주기도 했다.

 

이렇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슈퍼스타K》가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때 순간 최고 20%까지 돌파했던 프로그램 시청률이 지난 시즌엔 4%선을 겨우 넘었을 뿐이다. 시청률 수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침몰한 화제성이다. 지난 시즌 우승자가 누군지 아는 국민이 극히 드문 형편이다.

 

© m·net


오디션 출신자들, 데뷔 이후 크게 두각 못 내

 

《슈퍼스타K》뿐만이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 부문이 전체적으로 퇴조기다. 한때 오디션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생겼었지만 모두 정리되고 《케이팝스타》(SBS)와 《슈퍼스타K》만 남았는데, 《케이팝스타》마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종영이 예고된 상태다. 이런 분위기에서 《슈퍼스타K》를 굳이 이어갈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악마의 편집’ 등으로 악명을 떨쳤고, 화제성마저 사라졌기 때문에 《슈퍼스타K》가 이젠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측면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제작진의 응전이 앞에서 설명한 진행 방식의 변화인 셈이다.

 

제작진의 노력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아직 크게 긍정적이진 않다. 첫 회 시청률이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 2.9%로 유명세에 비해 관심도가 적게 나타났다. 10초씩 노래 부를 시간을 연장하는 자극적인 극약처방까지 했는데도 부정적인 여론이 완전히 반전되지 않은 분위기다. 네티즌 사이에선 여전히 ‘《슈퍼스타K》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슈퍼스타K》가 한때 사회적 신드롬까지 일으킨 것은 ‘흙수저’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구현됐기 때문이었다. 시즌2 당시 환풍기 수리공 허각이 엘리트 유학파 캐릭터인 존박을 제치고 우승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요즘 존박은 엘리트 캐릭터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상류층 이미지였다. 그런데 허각이 그 존박을 밟고 올라서자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정규 뉴스 시간에 이 사안을 다룰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흙수저 허각을 꼭대기로 올려준 사다리, 《슈퍼스타K》. 이때부터 《슈퍼스타K》는 사다리가 부러진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과거엔 연예인 되는 것이 그렇게 화려한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류 시대에 접어든 이후엔 스타급 연예인도 사회 상층부의 일원으로 여겨지게 됐다. 그래서 이젠 연예인 되겠다는 자녀를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주저앉히겠다는 부모보다, 오히려 자녀 손을 붙잡고 기획사를 찾아다니는 부모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기획사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했는데, 《슈퍼스타K》가 기획사 고시를 통과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스타의 꿈을 실현시켜줄 기회의 땅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은 돈 없고, ‘빽’ 없고, 외모도 달리는 젊은이들이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인생역전 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됐다. 그런 기회가 나타난 것에 우리 사회는 뜨겁게 반응했고, 오디션 열풍으로 이어졌다.

 

《슈퍼스타K》가 《슈퍼스타K 2016》으로 ‘시즌8’을 선보였으나, 첫 회 반응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 m·net​ 방송캡쳐


개성 있는 뮤지션들 배출구 사라질까 우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인생역전의 꿈은 역시 꿈일 뿐이었다. 오디션으로 엄청난 스타가 되는 줄 알았지만, 오디션 출신자들이 막상 데뷔한 이후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밤하늘의 별이 되는 사다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러진 사다리였던 것이다. 그러자 오디션에 대한 열광이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또 오디션 도전자들의 실력에 대한 믿음도 깨졌다. 처음엔 대형 기획사를 ‘빽’으로 둔 외모·스펙 좋은 립싱크 아이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실력자들이 오디션에 나온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중에 《불후의 명곡》(KBS)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니 아이돌들의 실력이 오디션 도전자보다 못하지 않았다. 어느덧 오디션은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 그중에서 우승해 봐야 그저 평범한 연예인이 되는 데 그치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됐고, 일종의 동네 재롱 잔치처럼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스타K》의 열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건 어려워 보인다.

 

《슈퍼스타K》는 현재 심사위원의 선택에 따라 기회가 10초씩 연장되는 1라운드 절체절명의 상황에 자기 자신이 빠진 형국이다. 시청자들이 이번 시즌을 선택해 줘야만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위기 국면인 것이다. 이미 《케이팝스타》의 폐지가 예고된 상황에서 《슈퍼스타K》까지 사라지면 종합 오디션 프로그램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그동안 평자(評者)들이 《슈퍼스타K》와 오디션의 문제점을 많이 비판해 왔지만, 종합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예 사라진다면 그것도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뮤지션으로 만들어줄 관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디션이 사라지면 대형 기획사의 자체 오디션이 가수를 배출하는 거의 유일한 출구가 된다. 기획사 오디션은 아이돌 성향의 연습생들에게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재능을 뽑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애초에 《슈퍼스타K》에 사람들이 열광한 데는 기존 기획사 오디션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목 받는 것에 대한 통쾌감도 컸다. 《프로듀스101》(Mnet)이나 《쇼 미 더 머니》(Mnet)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아이돌과 힙합이라는 제한된 영역을 다룰 뿐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에선 제2의 허각, 제2의 버스커버스커가 발굴되기 어렵다. 《슈퍼스타K》에선 그동안 허각과 버스커버스커 말고도 울랄라세션·김예림·딕펑스·유승우·박재정·김필 등 기획사 오디션과는 거리가 먼 뮤지션들이 배출됐다. 처음 국민적 신드롬이 터졌을 때 기대됐던 것처럼 엄청난 스타를 키운 건 아니지만 나름 다양한 재능의 등용문 역할을 하긴 한 것이다. 만약 《슈퍼스타K》를 끝으로 종합 오디션의 맥이 끊기면 개성 있는 뮤지션들의 배출구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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