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도 안 먹히는 대륙의 사드 ‘뒤끝’
  •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6 15:10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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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다 제작해 놓고 내년으로 방영 연기…사드 정국의 ‘한류 위기’ 현실화돼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 확정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사드 정국으로 인해 중국 내 한류(韓流)가 위기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항간에는 추측일 뿐 실질적인 피해 사례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심증의 불편함들은 점점 피부로 느껴져 온다. 사드 정국으로 인한 한류의 위기는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이영애가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로 안방극장에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은 우리는 물론이고 중국까지도 들썩이게 만들었다. 다름 아닌 ‘대장금’의 귀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초 10월에 방영 예정이던 《사임당》은 현재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이미 100% 사전 제작이 이뤄진 드라마가 이렇게 방영 시간을 늦추게 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사임당》을 방영할 SBS 입장으로 보면 이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임당》의 빈자리를 채울 드라마를 부랴부랴 세워야 하지만, 이렇듯 급하게 기획해서 만들어진 드라마가 어떤 완성도를 갖기란 애초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이미 《사임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던 시청자들도 이렇게 지연되는 방영이 결코 탐탁지 않을 것이다. 그건 마치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줄 테니 말이다.

 

애초에 한·중 합작으로 만들어져 중국 ‘후난(湖南)위성TV’와 동시방영을 위해 사전 제작된 《사임당》이 방영시기를 늦추게 된 건 중국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사드 정국의 후폭풍이라고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없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도 그토록 바라고 기대했던 작품이 이렇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드 정국 이후 달라진 중국의 상황들을 말해 준다.

 

사실 우리네 드라마가 중국의 온라인을 통해 동시방영된 적은 있어도 이처럼 위성채널과 동시방영을 준비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만큼 중국 측의 이영애 복귀작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한류드라마의 한·중 합작에다 이제는 위성채널 같은 방송사들이 직접 뛰어들게 됐을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돌연 이런 상황의 급반전이 초래되자, 갑자기 터져 나온 사드 정국의 후폭풍을 드라마 업계가 더더욱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사드 정국 속에서도 《달의 연인, 보보경심려》(《달의 연인》·SBS)는 어떻게 중국 광전총국(廣電總局)의 심의를 통과했을까. 그것은 작품 자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은 후난위성TV에서 방영됐던 《보보경심려》의 리메이크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의도 통과됐고, 동시방송도 예정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임당》은 물론이고, 중국과 사전 제작돼 향후 방영 준비를 하고 있는 작품들, 이를 테면 KBS가 12월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화랑: 더 비기닝》 같은 작품은 과연 중국과의 동시방영이 가능할 것인지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달의 연인》이 최후의 한·중 동시방영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일러스트 정찬동


‘한국 연예인 중국 방송 금지’ 리스트 괴담도

 

사실 그 어느 중국의 위성방송사보다 한류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여기에 투자해 온 방송사가 바로 후난위성TV이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이어 《아빠 어디가》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한류와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가져오던 채널이다. 최근 황치열이 중국 내 열풍을 일으킨 것 역시 후난위성TV가 방영했던 《나는 가수다》에 나오면서부터였고, 김영희 PD가 중국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채널과의 우호적 관계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드 정국으로 인해 이 채널은 거꾸로 가장 큰 후폭풍을 맞고 있다.

 

사드 정국이 만든 한류의 대표적 위기 사례로 지목됐던 건 유인나였다. 그녀가 중국에서 촬영했던 작품 역시 이 후난위성TV의 28부작 《상애천사천년2: 달빛 아래의 교환》이었다. 이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유인나는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찍었지만 사드 배치가 결정된 후 대만 배우 곽부설로 교체되었다.

 

‘한국 연예인 중국 방송 금지’ 리스트가 있다는 식의 사드 괴담이 흘러나오게 된 건 그래서다. 괴담에는 빅뱅이나 엑소 같은, 중국 내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 가수들의 콘서트를 금지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물론 이건 말 그대로 괴담이었다. 대형 기획사들은 지금껏 사드 정국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예정된 콘서트가 취소된 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것은 대형 기획사들의 이야기일 뿐, 중소 기획사들은 사정이 달랐다. 실제로 ‘스누퍼’나 ‘와썹’ 같은 중소 기획사들의 신인 아티스트들은 예정된 스케줄이 취소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이것은 중국 내에서도 정해진 룰이 있다기보다는 방송사나 관계자들이 광전총국의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즉 이미 확고한 팬층을 갖고 있는 대형 기획사의 가수들 같은 경우에는 아직까지 수요층이 견고하기 때문에 콘서트를 예정대로 치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 기획사 신인들의 경우엔 이처럼 위쪽의 눈치를 스스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로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았던 황치열(위 사진)과 SBS 드라마 《달의 연인》 © 후난위성TV·SBS

중국 콘텐츠 업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

 

이런 상황은 방송도 마찬가지다. 방송에서의 통편집은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방송사들이 알아서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방송사들은 중국판 《나는 가수다》로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았던 황치열은 물론이고, 몬스타엑스·빅스·싸이까지 통편집을 했다. 이는 중국의 방송사들과 이를 관장하는 광전총국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광전총국이 구체적인 지침을 직접 하달하기도 하지만, 어떤 정국이 만들어질 때는 그 분위기에 맞춰 방송사들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도 중국의 방송사들은 상업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규제를 받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인 문제들이 들어갔을 때는 하루아침에 흐름을 바꿔버릴 정도로 단호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 정국 같은 사안에 대해 중국 방송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눈치 보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드 정국으로 인한 한류 기업들의 후폭풍은 사실 괴담만으로도 주가가 뚝 떨어질 만큼 크다. 그만큼 한류의 중국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형 기획사들의 해외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곳은 아직도 일본이긴 하다. 하지만 그 갭은 현저히 좁혀졌고, 언젠가는 역전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정작 진짜 피해는 우리 측보다 중국이 더 크다는 것이 실상이다. 결국 중국 측은 돈을 대고 우리는 인력과 노하우를 대는 것이 한·중 합작 한류의 흐름이다. 때문에 이미 투자한 작품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방영하지 못하거나, 이미 캐스팅해 출연시킨 배우나 가수들의 콘텐츠에서 그들을 교체하거나 편집해 버리는 건 고스란히 중국 측의 손실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다소 낙관적인 전망도 흘러나온다. 결국 중국이 가진 이런 부담을 버티지 못해 사드 정국의 제재가 계속 이어지기 어려울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낙관으로 보인다. 그동안 광전총국은 중국 내에서 한류의 위상이나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상황 자체를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중 합작의 흐름이 이미 대세가 되어 자국 내에도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해 어떤 구체적인 규제를 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드 정국은 이런 광전총국의 규제에 명분을 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내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중국인 80% 가까이가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 금지를 찬성했다고 한다. 또한 제조업 등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와 얽혀 있어 규제가 어렵기 때문에, 이번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 측이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분야가 한류 같은 문화콘텐츠라는 점도 사드 정국의 후폭풍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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