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부검 주장은 책임을 저버리는 역겨운 행동이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0.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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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유엔특별보고관 마이나 키아이가 말하는 백남기 사망 사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둘러싼 정치권과 사회의 진실 공방은 여전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공권력이 행사한 무력에 의해 죽음에 이른 그의 죽음. 국제 사회 역시 우려스런 눈길로 바라봤다. 한국 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해 꾸준한 모니터링 해온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9월28일(현지시각) 유엔 공식 홈페이지에 발표한 성명에서 “유족의 뜻에 반해 백씨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키아이 보고관은 한국과 백남기 농민과 인연이 깊다. 올해 1월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해 정부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만나고 집회 현장을 둘러본 키아이 보고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에서 최근 수년간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계속 후퇴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정부의 집회 관리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올해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이사회에서 이런 우려를 발표했다. 키아이 보고관은 이날 백씨의 사례를 거론했다. 그는 “한국 경찰이 집회를 관리하기 위해 동원하는 ‘물대포’와 ‘차벽’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언급했다. 유엔은 키아이 보고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한국의 법률이 국제인권기준과 부합하지 않으며 사법당국의 자의적 재량권이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했다.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 내용과 키아이 보고관의 보고서는 유엔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게재됐다.

 

유엔특별보고관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전문성이 인정되는 개인 혹은 단체를 임명해 인권 문제가 심각한 국가의 상황에 대응하도록 하는 특별직이다. 키아이 보고관은 케냐 출신의 인권변호사로 2011년부터 유엔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별보고관 ⓒ 연합뉴스

귀하는 유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다. 유엔은 이번 백씨의 물대포 사건 이전부터 한국의 집회의 자유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다.

 

한국 정부는 그들이 일궈낸 빠른 민주화의 역사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집회의 자유가 이런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가져왔고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지켜오고 있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한 직후 나는 이런 말을 언론에 한 적이 있다. “한국이 이토록 위대한 국가가 된 것은 시위의 역할이 컸다”고.

 

그렇다. 집회와 시위는 때론 지저분하고 불편한 방법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권리가 없는 사회에서 질서 정연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낫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농민 백남기씨의 죽음 이후, 유엔 홈페이지와 개인 트위터에 백씨를 부검해서는 안 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인이 된 백씨에 대한 부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은 뒤 의식을 잃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혼수상태에서 벗어날 가망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망을 하지 않았다면 백씨는 아마 평생을 그 상태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검을 실시하겠다는 경찰의 주장은 어떻게든 피해나갈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느낌이랄까. 백씨 죽음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물대포 충격 이외의 다른 원인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경찰로서 책임을 저버리는 역겨운 행동이라고 본다.

 

 

경찰과 유가족의 대립이 매우 심각하다.

 

경찰은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유가족들에게 보상을 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는 이렇게 진보하고 개선돼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번 사건의 초반부부터 ‘책임 전가’만을 봐왔다.

 

부검을 실시해서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유가족들이 부검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매우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들의 바람은 존중돼야 한다. 지금까지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을 겪어왔을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백남기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이 사건은 이 땅에 민주주의를 짓고 인권을 쌓아가는 인류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란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나라가 의식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이 발전했든 계몽됐든 말이다.

 

내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언급했다시피 최근 몇 년 새 한국에서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인권이 차츰 후퇴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천천히 갉아 들어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인권 후퇴의 상황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가시적인 성과였으며 사람들은 이미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그들의 권리를 위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꽤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손을 놓고 앉아서 ‘우리의 권리가 당연한 것이다’ ‘당연히 계속 유지될 것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권리의 후퇴는 보통 이런 순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유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경계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백남기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들이 일상과 정치 속에서 이런 교훈을 얻고 경각심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모든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고 백남기씨에게 바치는 진정한 헌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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