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당선돼도 문제다!”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5 11:25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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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 결과 불복’ 폭탄선언…“대선 후 미국 분열 우려된다”

“당선이 돼도 더 큰 문제다.”

10월19일(현지 시각) 미국 대선후보 간의 마지막 TV토론회를 지켜본 전직 민주당 소속 한 선거 전략가가 내뱉은 말이다. 그의 평가는 이날 TV토론회에서 공화당의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로 이번 대선이 끝날 경우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나온 우려다. 트럼프는 이날 열린 제3차 TV토론회에서 대선 결과 승복 여부를 묻는 말에 “그때 가서 말하겠다”면서 불복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미국 언론들의 표현대로 240년에 걸친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종의 폭탄선언을 한 셈이다.

 

트럼프는 파문이 일자 다음 날 “선거 결과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내가 이길 경우나 깨끗한 선거 결과일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달아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힐러리로선 토론회에서 그의 첫 반응처럼 실로 “끔찍한 일”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트럼프의 협박에 가까운 말은 단순하게 그냥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선후보를 가능케 했던 이른바 ‘트럼프 돌풍’을 잘 살펴본다면 트럼프의 이 같은 반란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 AP연합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불복 발언

 

대선 초기 지지율이 1~2%에 불과했던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후보로까지 선출될 수 있었던 힘은 한마디로 기존 정치권 세력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결과였다. 주로 백인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이러한 열기는 기존 언론 매체가 아니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졌고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을 두고 “기득권 세력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주류 미디어가 결탁해 조작된(rigged) 선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돌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다수 주류 언론이 트럼프 비판에 나서면서 트럼프는 거의 외톨이 신세가 된 형국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이번 선거는 주류 미디어와의 싸움”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러 주류 매체들은 트럼프의 과거 성추문 사례 등 폭로를 이어갔고 현실적으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위기에 놓인 트럼프가 이제는 ‘대선 불복종’이라는 최후의 압박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힐러리 진영에는 트럼프의 이러한 압박 전략이 단순한 카드 이상의 위협이 되고 있다. 상호 극단적인 정책으로 대립하더라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상대방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미국의 전통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공화당 지도부마저 제어하지 못하는 ‘트럼프 돌풍’의 지지자들도 대선 결과를 부정할 수 있다. 결국 힐러리가 당선돼도 거의 ‘반쪽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고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즉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이 끝난 후에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 조작’을 주장하면서 각종 시위 사태가 불거질 경우 이는 미국 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잘못하다가는 힐러리가 당선되더라도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의 분열’이라는 최악의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고 만다.

 

 

민주당 내 분열도 잠재돼 있어

 

하지만 힐러리가 넘어야 할 산은 ‘트럼프 돌풍’만이 아니다. 힐러리는 이미 민주당의 내부 경선을 펼치면서 ‘샌더스 돌풍’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싸인 경험을 했다. ‘트럼프 돌풍’이 공화당 계열의 보수 우파의 극단적 돌풍이라면, ‘샌더스 돌풍’은 민주당 계열의 진보 좌파를 대변하는 돌풍이다.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주로 젊은 층 유권자들의 심중을 파고들며 거대한 돌풍을 일으켰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승리한 힐러리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복지 개선 등 샌더스의 공약을 자신의 공약에 반영하며 이들의 지지를 유도했다. 샌더스 상원의원도 힐러리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힐러리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지만, 문제는 샌더스를 지지했던 표의 일부만 힐러리에게 오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못지않게 힐러리도 유권자들로부터 역대 대선후보 중 가장 큰 비호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힐러리가 당선되더라도 일정 부분 샌더스의 공약을 실현하지 않을 경우 이들도 즉각 반(反)힐러리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이러한 양극단 돌풍 지지자들의 반항에 직면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더구나 이들 양극단의 지지자들은 다 같이 각종 시위를 펼치면서 ‘적극적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힐러리에게는 심각한 부담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힐러리를 압박하는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란 가능성이다. 트럼프의 잇따른 과거 성추문과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숨겨진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나와 ‘트럼프 승리’라는 선거 결과의 대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패배 가능성이 더욱 짙어지면서 극단적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집단적인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혁명(revolution)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트럼프도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다.

 

현재는 트럼프의 이러한 행동이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 카드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샌더스 돌풍’의 후유증에서 보이듯이 트럼프가 이번 대선 결과를 깨끗이 인정한다고 해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달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샌더스와 트럼프의 ‘돌풍’으로 시작된 이번 대선은 클린턴과 트럼프가 막장 드라마 수준의 진흙탕 싸움을 펼치면서 이제는 ‘선거 불복종’이라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형국이다. 단순히 선거 결과만이 아니라 이제는 트럼프가 이를 승복할지 안 할지 볼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이것이 과연 단순한 볼거리가 될지 아니면 미국 사회를 뒤흔들 새로운 분열의 불씨가 될지도 눈여겨볼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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