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항균 비누에 항균 효과 없습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11.17 10:29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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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2년 전 항균 효과 없는 사실 알고도 ‘항균 물질’ 사용 묵인… 미국은 항균 제품 판매 금지
신종플루 유행 이후부터 항균 비누 등 항균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졌다. 사진은 신종플루 유행 당시 소비자들이 항균 제품을 찾는 모습 © 뉴시스

항균 비누(항균 보디 세정제 포함)에 항균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해성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미국 정부는 최근 항균 비누를 퇴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2년 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항균 비누에 효과가 없음을 알고도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매일 얼굴과 손을 씻을 때 대부분은 비누를 사용한다. 특히 신종플루나 사스 등과 같은 감염 질환이 유행할 때 감염 위험을 낮추는 첫 번째 노력도 손 씻기다.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항균 비누가 인기를 끌었다. 항균 비누는 말 그대로 손이나 얼굴에 있는 세균을 더 많이 없애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9월 시장에서 항균 비누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제조사들은 1년 이내에 해당 제품을 수거해야 한다. 다만 병원이나 건강관리 시설에서 쓰는 손 세정제는 예외다. 재닛 우드콕 FDA 의약품평가연구센터장은 “소비자는 항균 비누가 세균 확산을 막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물과 일반 비누로 씻을 때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일부 데이터를 보면 항균 성분을 장기간 사용하면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FDA “항균 효과 없고 유해성 논란”

 

FDA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두 가지다. 항균 비누의 효과가 일반 비누와 다르지 않고 유해성에 대한 논란도 있기 때문이다. 항균 효과라도 있으면 유해성 여부를 깊이 따져볼 일이지만, 효과 자체가 없으므로 ‘항균’이라는 표시를 단 제품의 판매를 허용할 이유가 없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항균 비누의 효과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었고, FDA는 2013년 항균 비누 제조사들에게 항균 효과를 입증할 자료를 추가로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질병을 예방하거나 감염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일반 비누보다 탁월하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체들은 항균 효과는 물론 안전성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항균 비누의 무효성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이어졌다. 엘레인 라슨 미국 컬럼비아대학 간호학과 교수는 항균 제품에서 유의미한 항균 효과를 찾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취학 전 아이가 있는 224개 가정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항균 세제와 항균 손 세정제를, 다른 그룹에는 일반 제품을 사용하도록 했다. 48주 후 감기·독감·식중독 등 감염질환에 대해 조사한 결과, 두 그룹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 고려대 생명공학부 연구팀도 항균 비누가 (일반 비누보다) 세균을 더 많이 없애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학계에 보고했다.

 

항균 성분으로 비누에 사용하는 물질은 22가지다. 이번에 FDA는 19가지 성분을 비누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3개 성분에 대해서는 실험 중이므로 추후 그 결과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항균 비누에 사용이 금지된 19개 성분 중 트리클로산(TCS)과 트리클로카반(TCC)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질이다. 치약 등이 썩지 않도록 하는 보존제로도 사용한다. 트리클로산은 액체 항균 비누에, 트리클로카반은 고체 항균 비누에 주로 사용한다.

 


“항균 성분, 질병 유발 가능성”

 

이들 물질에 대한 유해성 논란은 1970년대부터 제기됐다. 환경단체와 미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까지 트리클로산의 사용에 대한 제한을 요구했고, 비영리 환경단체인 자연자원보호위원회는 소송까지 진행했다. 지금까지도 이들 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러시-프레스비티어리언 성누가 메디컬센터의 피부과 전문의 매리앤 오도노그 박사는 미국피부학회 학술회의에서 항균 비누를 자주 사용하면 피부에 균열을 일으켜 손 습진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도노그 박사는 또 항균 비누를 과용하면 항균물질에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할 위험도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보포트 해군병원의 피부과 과장 윌리엄 보우 박사는 피부에 있는 자연적인 지질(脂質)인 지방과 기름이 피부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데 항균 세제는 이러한 지질을 없애버린다고 설명했다.

 

체내 호르몬 교란, 세균 내성, 특정 질환 유발과 같은 유행성에 대해 FDA는 “항균 성분이 몸에 흡수되면 생리교란 작용 가능성이 있고, 미생물의 내성을 키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암 유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유해성 의심은 있지만 확신할 수 없으므로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트리클로산과 트리클로카반은 과거 식중독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 등에 대한 살균제로 사용해 왔는데 이후 이 물질이 사람 몸에 잔류하면 간암, 갑상선 기능 저하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최근 사용에 제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FDA가 2013년 항균 비누의 효과에 대해 재확인 작업에 들어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고려대에 항균 비누 효과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이민석 고려대 대학원 생명공학과 교수팀은 20종의 세균에 트리클로산을 넣고 22도와 40도에서 각각 20초간 관찰했다. 또 16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항균 비누와 일반 비누로 손을 씻게 한 후 효과를 비교했다. 여기서 ‘항균 비누에 항균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40도의 물에서 20초간 손 씻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이 방법에 따라 항균 비누를 이용해 손을 씻어도 일반 비누와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 교수는 “일반인이 손을 씻는 시간은 15~20초밖에 되지 않으므로 사실상 항균 비누에서 항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옥시는 홈페이지에 항균 비누에 있는 트리클로카반 성분을 게재했고 애경은 성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식약처 “항균 성분 0.3% 이하 사용 가능”

 

이 결과를 받아든 식약처는 2015년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과 ‘화장품 표시·광고 관리 가이드라인’ 일부를 개정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스킨·로션·선크림 등 화장품에 트리클로산 사용을 금지하면서도 정작 항균 비누에는 면죄부를 줬다. 비누에 트리클로산 사용을 0.3% 이하로 제한하는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다. 대신 트리클로산이 들어간 액체 항균 비누는 ‘항균 효과가 더 좋다’ 또는 ‘항균 효과가 뛰어나다’와 같은 광고 문구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일반 비누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제품 포장지나 홈페이지 등에 ‘항균 비누’라는 표현은 사용해도 무방한 셈이다. 식약처 대변인실은 “업체가 증명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 액체 항균 비누 포장지에 ‘항균’ 표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옥시(RB코리아)의 항균 비누(데톨)와 애경의 항균 비누(블루칩)에는 ‘항균’이라는 표시나 항균 비누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들 고체 비누에는 트리클로카반이 들어 있다. RB코리아 관계자는 “옥시 항균 비누의 트리클로카반 함유량은 유럽 소비자과학안전위원회(SCCS)의 기준치보다 낮고 지침대로 사용하면 안전하다”면서도 “그러나 소비자 기호나 소비 동향을 고려해 2017년까지 세정용 제품에서 이 성분을 단계적으로 배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리클로카반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물질이다. FDA에 따르면 실험실 연구, 동물실험, 임상시험, 피부흡수 효과, 피부 종양, 독성, 호르몬 작용 등 안전성과 관련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에는 고체 항균 비누에 사용하는 트리클로카반 성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어서 항균 효과도 없는 비누에 ‘항균’ 표시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액체 항균 비누는 식약처 소관이지만 고체 항균 비누는 공산품이어서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비누는 액체 비누와 고체 비누로 나뉘는데 액체 비누는 화장품으로, 고체 비누는 공산품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액체 항균 비누는 식약처가, 고체 항균 비누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관리한다. 항균 효과가 없는 고체 비누의 포장지 등에 ‘항균’ 표시를 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자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표시·광고에 관한 것은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표시·광고를 하려면 업체가 합당한 근거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미국은 트리클로산과 트리클로카반 등이 있는 항균 비누를 시장에서 퇴출했다. 우리 정부는 해당 성분의 사용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항균 효과가 없음을 알고도 ‘항균’ 표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트리클로산과 트리클로카반 등은 비누 자체가 썩지 않도록 하는 보존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라며 “그런 성분을 넣은 비누에 ‘항균’이라고 표시하면 마치 소비자의 손에서 균을 없애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므로 ‘항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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