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영, 급성장 뒤에 아른거리는 권력의 그림자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11.22 10:14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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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부 시절 시행된 ‘회계 해석 56-90’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

‘금(金)’과 ‘권(權)’의 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로의 이해가 맞물려, 마치 톱니바퀴처럼 돌아왔다. 부영그룹도 이런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관계 유착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런 의혹이 확인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다. 이중근 회장이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아파트 건립 사업의 인·허가를 위해 정·관계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회장은 최근에도 청와대에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하려 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있다. 이런 고리의 시작은 김대중(DJ)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으로 정경유착설이 제기된 시기다.

 

ⓒ 시사저널 포토

DJ 정부서 막대한 국민주택기금 지원받아

 

부영그룹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소건설사에 불과했다. 그런 부영이 급성장한 배경으로 국민주택기금이 지목된다. 국민주택기금은 정부가 저소득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을 명목으로 임대주택 건설사에 제공하는 저금리 대출이다. 당시 시중은행에 넣어놔도 수익이 날 정도로 낮은 금리를 자랑했다. 부영은 DJ 정부 시기 막대한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받았다. 회계업계에선 이를 가능케 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DJ정부 집권 2년 차인 1999년 시행된 ‘기업회계기준 등에 대한 해석 56-90(회계 해석)’을 꼽고 있다.

 

이 회계 해석은 임대주택단지별 입주비율이 90% 이상인 경우 금융리스로, 90% 미만인 경우 운용리스로 회계처리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금융리스로 처리할 경우 임대시점에서 건설원가인 완성임대주택과 임대주택토지를 묶어 임대주택채권으로 처리한다. 핵심은 여기서 국민주택기금 차입금과 임대보증금을 차감 표시한다는 데 있다. 결국 임대주택의 입주율이 90%가 넘으면 국민주택기금과 임대보증금이 부채로 기록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국민주택기금과 임대보증금은 부채로 처리돼 왔다. 이로 인해 부채비율이 올라가면서 임대주택 건설사들은 금융권 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런 가운데 회계 해석이 도입되면서 임대주택 건설사들이 수월하게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반론이 적지 않았다. 국내는 물론 국제 회계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기형적인 회계 해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주다 회사가 부도라도 날 경우, 그 피해를 금융기관에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앞서 한국회계연구원이 리스회계처리 대상에서 임대주택건설업은 제외시켜야 한다는 기업회계기준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원은 리스회계처리는 본질적으로 임대료를 통해 ‘자산원가와 이자’를 회수할 때 적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임대주택건설업처럼 원가는 분양할 때 회수하고 임대료에선 이자만을 회수하는 경우엔 리스회계처리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연구원은 이후 임대주택 건설사들의 반발에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국민주택기금은 부채가 틀림없다는 입장만큼은 끝까지 유지했다.

 

논란들을 뒤로한 채 1999년 말부터 회계 해석은 적용됐다. 이런 회계 해석이 처음으로 반영된 1999년 부영(현 부영주택)의 재무제표를 보면, 부채총액 1조5858억원에서 국민주택채권 8955억원이 제외됐다. 이 회계연도 자본총액이 1066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계 해석 적용 전의 2327%이던 부채비율은 1487%로 무려 840%포인트나 감소했다. 이후 부채비율은 △2000년 996%(부채총액 1조4103억원-자본총액 1415억원) △2001년 898%(1조4228억원-1584억원) △2002년 867%(1조5506억원-1786억원) △2003년 1007%(1조8342억원-1820억원)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이처럼 재무제표상 지표가 호전되면서, 국민주택기금 등 금융권 차입 규모를 계속해서 늘려 사업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만일 상기 회계 해석이 시행되지 않았더라면, 부영의 부채비율은 폭증하게 된다. 국민주택채권이 계속해서 증가했기 때문이다. 부채로 기록되지 않은 국민주택채권을 포함할 경우, 부채비율은 △2000년 2323%(국민주택채권 1조8768만원) △2001년 2600%(2조6967억원) △2002년 2894%(3조6215억원) △2003년 3405%(4조3672억원) 등에 달했다. 사실상 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수치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K스포츠재단 측에 자금 지원 대가로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호전된 재무제표 바탕으로 지원금 ‘싹쓸이’

 

이 회계 해석은 모든 임대주택 건설사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임대주택 건설사들 전반의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로 인한 수혜 대부분은 부영의 몫이었다. 국민주택기금을 사실상 독식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2002년 7월까지 부영에 지원된 자금은 모두 2조1818억원으로 상위 5개 업체가 받은 지원액 3조1960억원의 68.2%에 달했다. 특히 DJ 정부 들어 국민주택기금 지원액은 매년 늘어났다. DJ 정부가 출범한 1998년 1867억원에서 △1999년 2921억원 △2000년 3935억원 △2001년 5239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이런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부영의 건설 실적도 좋아졌다. 부영이 1983년 설립 때부터 1994년까지 11년간 건설한 아파트는 임대용 1만2300세대와 분양용 5700세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DJ 정부 임기 내에 건설한 아파트는 임대용 6만4500세대, 분양용 7000세대에 달했다. 그 사이 1997년 80위권에 머물던 도급 순위는 18위까지 뛰어올랐다. 이를 두고 회계업계에선 DJ 정부가 시행한 회계 해석이 부영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정부의 막대한 지원 때문에 이중근 회장과 DJ 정부의 결탁설이 돌기도 했다. ‘동교동계’가 부영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명예총재로 있었던 봉사단체 ‘사랑의 친구들’의 후원회장을 역임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에 무게가 실렸다. 또 ‘이용호 게이트’ 수사 당시에는 김 전 대통령의 ‘집사’ 격인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6000만원 상당의 채권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부영그룹은 DJ 정부의 막대한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면서 정치권과의 유착설에 휘말린 바 있다. © 연합뉴스

2004년 ‘부영 게이트’ 때 이 회장 구속

 

그러나 DJ 정부 시절에는 의혹에만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의 정·관계 밀월 관계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2004년 불법 정치자금 수사 과정에서다. 당시 이 회장은 협력업체에 지급할 공사대금을 부풀려 27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법인세 74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수사는 개인 비리를 넘어 ‘게이트’로 번졌다. 이 회장이 정·관계에 금품을 전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이 회장은 서영훈 전 민주당 대표를 통해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6억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하는가 하면, 봉태열 전 서울지방국세청장(현 부영 고문)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1억3000만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여기에 아파트 인·허가 편의를 봐달라는 명목으로 김영희 전 남양주시장에게 수억원을 건넨 혐의도 받았다. 이 일로 이 회장은 2004년 4월 구속돼 같은 해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2008년 6월,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 최종 확정됐으나, 2개월 만인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는 광복절을 앞두고 이 회장을 특별 사면했다. 그 뒤 한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 회장은 2011년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이후 수년간은 별다른 구설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악재가 겹치는 모양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특별세무 조사를 받았고, 이로 인해 검찰 고발을 당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다시 정·관계 유착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에서 80억원대 자금지원을 해 주는 대가로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벌인 내용이 담긴 회의록이 공개되면서다. 부영은 이 회장이 직접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자리에 참석하긴 했으나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떴고, 면담을 가진 것은 김시병 부영 사장이라는 것이었다. 김 사장 역시 세무조사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K스포츠재단 측에서 추가 자금지원 요청을 했고, 김 사장이 자금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K스포츠재단 측이 최근 검찰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는 이 회장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직접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김 사장이 세무조사에 대한 내용을 부연 설명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그러나 부영그룹 관계자는 “K스포츠재단의 진술 내용에 대해선 달리 밝힐 말이 없다”며 “이 회장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현재 이 회장을 기소할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이 12년 만에 다시 검찰 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상황은 간단치 않다. 부영그룹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는 특수1부가 국세청에서 고발된 사건 외에도 다양한 제보와 첩보들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자칫 그룹 전반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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