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사회에 서로 ‘얼굴반찬’이 되어주자”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24 16:27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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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30년 만에 첫 산문집 펴낸 공광규 시인 “문학이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오일장이 서면 어머니는 걸음이 느린 나를 앞세우고 시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막과자를 사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아파서 걸음이 느린 어머니에게 막과자 봉지를 사서 들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다. 눈물 글썽한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눈물에 굴절되어 들어오는 겨울 별빛을 바라보다가, ‘맑은 슬픔’이라는 말을 생각해 냈다.”

공광규 시인이 등단 30년을 정리하는 첫 산문집을 펴냈다. 《맑은 슬픔》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추억과 도회지에서의 삶을 자신의 대표적인 시와 함께 마흔한 편의 산문으로 담백하고 잔잔하게 그려낸 것이다.

 

《맑은 슬픔》의 저자 공광규 시인 © 교유서가 제공

“마음대로 해 보는 문학을 한 번 해 보고 싶다”

공광규 시인은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뒤,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말똥 한 덩이》 《소주병》 《담장을 허물다》 등 시집을 통해 당대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시들을 발표했다. 2013년, 그의 자연 친화적이고 호방한 시 ‘담장을 허물다’는 시인과 평론가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찌 산문집을 펴낼 기회가 30년 동안 한 번도 없었을까? 공 시인은 그동안 여러 번 낼 기회가 있었지만 아낀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왕이면 30주년을 기념해 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문집을 내고 문학의 방향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싶었다. 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다. 커다랗고, 솔직하고, 좀 더 마음대로 써보는 그런 시를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고백하는 공 시인의 삶은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삶과 닿아 있다. 이웃과 담장을 허문 시인은 이웃과 웃고 울며 글을 써왔다. 시인의 인생이 세속의 삶과 다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다. 그는 시인을 일컬어 발견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발견을 하려면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발견 대상에서 물질이 툭 튀어나온다면서, 그가 시인이 된 배경이기도 한 어린 시절 경험을 들려준다.

 

“아버지는 미루나무처럼 성정이 물러터진 나를 항상 걱정하셨다. 커서 제 밥벌이나 할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미루나무가 그림붓이 거꾸로 서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계절에 따라 들판 풍경이 색깔을 바꾸니, 모두 미루나무가 색칠을 하는 것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사생대회에 나온 학생들이 마감을 앞두고 더 열심히 붓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공 시인은 “요즘 시들이 기백이 없고 횡설수설에다 난잡·난해·불통인 것은 시가 현실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시를 버린 독자들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는 시가 삶의 사유(思惟)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계속 받아왔다. 그러나 분명히 시는 직접적으로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다. 도구일 수 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물질이다.”

공광규 지음 교유서가 펴냄 308쪽 1만800원


“돈 중심의 사회가 ‘혼밥족’ 많이 만들어”

 

공 시인은 다만 현실과 접촉하지 못한 시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한 것이라며, 시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 창작 방법 안에는 시를 대하는 태도와 정신이 들어 있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의 문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대다수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현재 감각되는 것, 현재 밥 먹고 사랑하고 노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만이 절실하다. 과거와 미래는 추상이고 관념일 뿐이다. 현재만이 실제이고 구체일 뿐이다. 그래서 현재 감각되는 사물과 사건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고 쓰는 방식도 여전히 현재 기준이다.”

 

공 시인은 문학이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찢는 게 아니라, 통합시키고 정돈시키고 좀 더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 역할이라는 것도 아주 간단한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혼밥, 혼술’ 이야기가 나도는 시대에 공 시인은 “서로 얼굴반찬이 되어주자”고 제안한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나쁜 사회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돈 중심의 사회가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많이 만들고 있다.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의 해체를 낳았다. 그래서 여럿이 모여 밥 먹을 기회도 없고, 가족끼리 북적대며 사는 재미가 없다. ‘소셜다이닝’이라고,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밥 먹는 건데,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얼굴반찬이 되자’고 한 거다. 왕따를 당한다든가, 이혼을 했다든가, 사별을 했다든가, 실직을 했다든가 하는 여러 이유로 혼자인 친구를 찾아가서 얼굴반찬을 해 주는 것, 그것이 굉장히 좋은 방식의 사회운동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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