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간첩' ① “나의 간첩 혐의는 국정원이 조작했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1.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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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기 회피약물 간첩’ 혐의 이혜련씨를 둘러싼 의혹 세가지

여기 또 하나의 ‘자백’이 있다. 탈북한 뒤 간첩혐의로 옥살이를 한 이혜련(41)씨의 얘기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 살던 그는 2012년 말 한국행을 택했다. 이씨는 2013년 2월 한국에 온 뒤 국가정보원의 정부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이씨는 자신을 ‘북한 보위사령부가 직파한 간첩’이라고 말하게 된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 자백을 기초로 그가 2012년 6월께 보위부 공작원이 됐고, 한국으로 위장 잠입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씨의 자백은 주변인의 진술과 다르거나 상식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시사저널은 이씨를 만나 이 자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씨의 인터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건에 대한 약간의 ‘예습’이 필요하다. 그리 어렵지 않다. 국정원과 검찰․법원이 이씨가 간첩이라고 인정한 이유는 뭘까. 이씨의 재판기록,《뉴스타파》의 2014년 보도, 관련자의 진술을 종합해 사건의 의문점을 짚어보자.

 

© 시사저널 고성준·pixabay


# 1. 거짓말탐지기 회피약물은 존재할까?

 

 ‘이씨는 국정원의 탈북자 신문을 통과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밴드모형) 2쌍의 사용방법을, 국내 보위부 공작원 ‘꼽새’와 접선 및 상부선 연락방법을 교육받았다.’

 

국정원․검찰 조사결과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바로 ‘거짓말 탐지기 회피 약물’이다. 이 부분은 이 사건의 명칭이 되기도 했다. 과연 이런 게 존재할까. 복수의 의료계 관계자들은 “거짓말 탐지기 자체가 신빙성에 의문이 있는 상황이고, 이런 것들을 피할 수 있는 약물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을 맡았던 장경욱 변호사도 “이 사건에서 거짓말 탐지기는 피의자의 누명을 벗기기보다 오히려 허위자백을 이끌어내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만약 이런 약물이 있다 해도 이씨가 이 약물을 한국에 반입했는지 확실치 않다. 국정원․검찰은 이씨가 밴드형 약물을 브래지어의 ‘패치 넣는 공간’ 숨겨서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4년 변호인단이 이씨가 북한에서 입고 온 속옷을 살폈을 때 약물을 숨길만한 공간(패치를 넣는 공간)은 없었다고 한다.

 

 

# 2. 수상한 지령…간첩 파견 하고 공작금도 안 준 보위부 

 

‘알몸 수색을 하지 않으니 거짓말탐지기 약물을 몸에 지닌 뒤 검사를 통과하고, 옛 연인인 최아무개씨(반북활동가로 활동)의  동향을 파악하라’,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안기부 조사기간이 한 달에서 일주일로 줄어든다.’

 

국정원과 검찰이 주장하는 북한 보위부장이 내렸다는 지령 내용이다. 하지만 이 지령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우선 보위부장의 지령과 달리 국정원은 탈북한 이들에 대한 알몸수색을 한다. 북한에서 위험물질을 가져올 경우를 대비한다는 게 국정원의 당초 입장이었다. 실제로 합신센터를 경험한 A씨는 “알몸수색이 불쾌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만 국정원은 이씨를 조사하면서는 알몸수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합신센터 조사기간에 대한 지령도 사실과는 다르다. 국정원은 2014년 합신센터의 명칭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바꿨지만 최장 조사기간은 6개월 그대로다. 게다가 지령은 국정원을 옛 이름인 ‘안기부’로 부르기도 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약 18년 전인 1999년에 국정원으로 바뀌었다.

 

의문점은 또 있다. 보위부가 이씨에게 지령을 내렸다면 공작금을 주고 교육을 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당시 변호인단이 복수의 탈북자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씨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공작금은커녕 탈북과정에서 자비로 모든 걸 해결했다.

 

게다가 지령에는 이씨가 국내 동향 정보를 전달해야했던 이는 북한의 송아무개씨로 돼 있다. 지령대로라면 송씨는 이씨와 보위부의 전달책인 셈이다. 하지만 송씨 딸의 증언은 이 지령과 배치된다. 송씨의 딸은 "어머니는 이 시점에 다른 범죄혐의로 북한에서 수감돼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공작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라고 말한다.

 

 

# 3.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아 끌려온 간첩?

 

수사당국의 조사를 보면 이씨는 간첩임무를 받고 한국으로 침투했다. 하지만 ‘침투’라고 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이씨가 “함께 탈북하자”는 연인에게 출발 당일 “가기 싫다”고 거절한 정황이다. 함께 탈북한 연인 김아무개씨는 《뉴스타파》인터뷰에서 “이씨가 탈북하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한국에 가지 않았다고 했고, 그날 화가 나서 때려가며 한국에 왔다”고 했다. 

 

이씨의 말도 일치한다. 이씨는 “가족도 챙겨야 하고, 엄마도 위암을 앓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김씨에게)나는 안 되겠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우리 엄마네 집에서 나와서 끌려오면서 매를 맞았다. 그렇게 한국에 왔다”고 진술했다. 함께 탈북한 김씨는 간첩 의심을 받지 않았다. 탈북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오히려 이씨와 함께 탈북한 연인 김씨 였는데, 이씨에게 간첩혐의가 적용된 셈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데…출소한 이씨의 고백은?

 

결국 이씨가 간첩이라는 증거는 사실상 본인의 ‘자백’뿐이다. 항소심 선고(2014년 4월)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이 이 사건을 뒤집기 위해 새로운 증거들을 제출했지만, 이미 1,2심에서 이씨가 자백한 내용이 발목을 잡았다. 이씨는 2013년 10월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014년 10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를 옭아 맨 유일한 증거였던 ‘자백’. 이제, 그의 ‘자백’에 대해 다시 들을 때다. 

 

● 다음 기사에서 이혜련씨와 인터뷰내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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