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 도달한 촛불들, “대통령 ‘즉각’ 퇴진 않으면 촛불은 여의도로 향할 것”
  •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6.12.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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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최대 인파 기록한 6차 촛불집회

“열 받아서 홍콩에서 바로 날아왔다”

 

조모씨(47)는 어제 밤 비행기를 타고 급히 귀국했다. 도저히 국가의 위기상황을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 12월2일 탄핵 표결이 무산된 데 대한 답답함이 큰 몫을 차지했다. 특히 대통령의 3차 담화문 이후 탄핵 철회 입장을 키우는 새누리당에 대해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의 열기는 오후 2시, 여의도에서 먼저 내뿜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기 전, 2000여 명의 시민들이 새누리당사 앞에서 ‘당 해체’와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국민 여러분 한없이 죄송합니다’라고 써붙인 당사 벽면 현수막을 향해 수십 개의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새누리당은 대통령 하수인 역할을 멈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간 반가량의 집회를 진행한 후 이들은 KBS와 전경련 앞에서 각각 ‘공정보도’와 ‘전경련 해체’를 외친 후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제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구호는 한층 격해져 있었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여의도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구호는 지난주보다 더욱 격해져 있었다. 대통령 ’퇴진’이란 외침 앞에 ‘즉각’이란 단어가 붙었고, ‘박근혜 체포’ 혹은 ‘구속’을 담은 피켓도 더욱 다양해졌다. 11월26일 5차 촛불집회에서 ‘황소’를 직접 끌며 주목을 받았던 오현경씨는 이날 광화문역 앞에서 황소 대신 ‘박근혜 체포단’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박 대통령 체포를 위한 서명을 받아 12월6일 검찰청에 제출한 뒤 서초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오씨는 “검찰 공소장에도 공범으로 명시한 만큼 더 이상 우리 세금을 대통령에 낭비할 수 없다”며 즉각 퇴진과 처벌을 강조했다. 나아가 탄핵 불가를 외치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해선 “사실상 국정파탄의 공범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국민에 맞서는 모습이 뻔뻔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의 분노도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하야체조를 만든 예술인 모임 ‘맞짱’의 기획자 정희영씨는 “정부의 예술인 탄압은 공공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리스트로 나온 이후부턴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매주  집회 현장에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비박계 등 일부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철회할 지도 모를 움직임을 보이는 요즘, 여의도를 향해 촛불을 들겠다는 시민이 많았다. 두 자녀와 함께 매주 집회에 참석해 온 김 아무개씨(45)는 “마음 같아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요구가 이렇게 높은데도 야당이 더 강하게 탄핵을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새누리당을 지지해온 장 아무개씨(66)는 “새누리당사 앞에 들러 당 해체를 외치고 왔다”면서 “탄핵 부결이 될 경우 촛불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가늠조차 안 된다”고 말했다. 당원들과 함께 현장을 찾은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음 한주 간은 탄핵 가결을 바라는 시민들이 24시간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 것”이라며 “지금 탄핵을 주저하는 의원들 역시 이 촛불의 압박을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아재연합·먹부림연합, 자체제작 깃발부대들

 

광장의 깃발은 더욱 다양해졌다. 대규모로 움직이는 정당과 대학, 노동조합 깃발들 사이사이로 삼삼오오 모여 행진하는 이색적인 일행들이 눈에 띄었다. 치킨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든 ‘먹부림연합’은 애초에 다이어트를 위한 모임이었다. 한 회원은 “매일 밤 술을 찾게 하는 뉴스보도 때문에 다이어트를 망쳐버렸다”며 “속상한 마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왕 나올 거면 좀 재밌는 깃발을 만들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독거 남성 결혼 추진회’ 한승민씨(39)는 “주변에서 집회에 함께 나올 일행을 찾다보니 독거 남성들이 많아 이름을 짓게 됐다”며 “독거 남성뿐 아니라 주말마다 집안일을 돕지 못하고 집회로 나오게 만드는 정부에 분노한 기혼남들도 속해 있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들끼리 결성한 ‘대한민국 아재 연합’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가 있는데, 여기 그들에 반대하는 목소리 큰 ’아재 연합‘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면서 깃발을 흔들어보였다. 깃발 대신 태극기를 들고 나온 청년도 있었다. 30대 중반 이민종씨는 스스로 과거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청년이었음을 밝히며 “새누리당과 대통령은 대한민국 보수라는 이름에 먹칠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받은 상처가 잘 아물어서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애국심 때문에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는 서울 170만명, 전국 232만명이 모였다. 헌정 사상 최대 인파라는 기록을 또 한 번 갈아치웠다. 11월12일 처음으로 돌파한 100만명의 기록을 두 배 이상 뛰어 넘는 수치다.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본 행사는 1시간 반 동안 진행됐으며, 이후 을지로, 새문안로 등으로 2차 행진을 시작했다. 오후 한때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이 허가됐던 청운동 일대에선 늦은 시간까지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2차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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