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상-장려상] 화상경마장과의 기나긴 전쟁
  • 남현우(국민대 언론정보학과)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8 15:36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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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마사회의 끝없는 싸움…1250일간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도 몰랐어요.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지….”

허름한 천막에 홀로 남겨진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주민대책위원회 정방 대표가 처음 한 말이다. 주민들이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화상경마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지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옳은 일을 한다는 명분 하나로 시작한 주민들은 17만 서명운동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처음에 서명운동 시작과 동시에 구청장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건 “건축과장이 결재하여 잘 몰랐습니다”라는 대답뿐이었다. 5만 서명은 주민들이, 12만 서명은 구청 주도로 모았다. 그들은 성당, 거리 등을 배회하며 서명을 얻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빠른 시일 안에 얻을 수 있었다. 획득한 12만 명의 서명은 농림축산식품부로 전달됐다. 나머지 5만 명의 서명은 2014년 경마장 임시개장 직후 청와대에 직접 전달했다. 마사회 측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화상경마장 폐쇄를 요구하는 주민들은 4년 가까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남현우 제공

문화시설 인·허가 후 슬그머니 용도변경

 

“수녀님들이 용산에 예쁜 건물이 새로 생겼다고 말해 줬어요.” 그때까지 주민들은 어떤 건물인지 몰랐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건물은 학교에서 215m 떨어져 있었고 걸어서 6분 거리에 있다. 주변 건물과 아파트에서 쉽게 관측 가능하다. 무심코 지나친 그 건물이 도박장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0년 6월30일 한국마사회의 의뢰로 건물 신축과 인·허가 업무를 맡은 S사는 용산구청에 건물의 주 용도를 ‘문화 및 집회시설’로 기재한 신축요청서를 제출해 신축허가를 받아냈다. 그 후 2011년 9월8일 이 건물의 주 용도를 ‘문화 및 집회시설(마권장외발매소)’이라고 다시 표기해 구청으로부터 ‘건축용도 변경 승인’을 받아냈다. 문화시설에서 경마장 발매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건물은 2012년 12월에 완공됐다.

 

경마장 발매소라고 밝혀진 시점은 2013년 4월말이었다. 그 건물이 ‘화상경마장’인 것을 알게 된 오천진(새누리당), 권용하(민주당), 설혜영(정의당) 전 구의원이 학교를 방문해 이 사실을 알리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청천병력과 같은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주민들은 장태평 한국마사회 회장 재임 당시 그와 세 차례 논의했다. 장 회장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임기를 마치기 전 돌연 사퇴한다. 정방 주민대책위 대표는 “용산 화상경마장 문제도 사임의 한 가지 이유는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2013년 12월 현명관 전 삼성 비서실장이 한국마사회 신임회장으로 임명됐다. 대책위 측은 조찬 모임을 잡고 현 회장을 찾아갔다. 그는 “법으로만 해결해서 마사회 측이 잘못했다. 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대책위 측은 자신들의 입장과 생각을 전달했다. 현명관 회장은 말을 다 듣고 불현듯 박기성 본부장에게 브리핑을 시켰다. 급작스러운 브리핑에 당황한 대책위 측은 다음을 기약하고 회담을 마쳤다. 이후 달라진 건 없었다. ‘주민들과 대화에 들어갔다’는 언론 보도뿐이었다.

 

결국 마사회는 주민 설득을 이루지 못한 채 2014년 6월 화상경마장 기습 개장을 시도했다. 6월29일 주민들과 마사회 직원은 새벽에 몸싸움까지 벌였다. 마사회는 직원 외에도 본사 소속의 유도부와 탁구부 선수들까지 동원해 물리적 제압을 시도했다. 다른 지역 ‘경마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할인 쿠폰을 제공했다. 마사회가 보여준 전략적 움직임은 놀라웠다.

 

마사회는 물리적 충돌을 빚은 주민들 22명을 고소·고발했다. 대책위 측도 맞고소로 응수했다. 마사회는 참여연대 안진걸 처장을 통해 쌍방고소취하를 제안해 왔다. 마사회가 주민들에게 2000만원 가압류를 걸어뒀기 때문에 대책위는 승낙했다. 가압류와 다른 고소는 취하했지만 마사회 측은 1건만 고소취하를 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성심여자중고등학생들이 7월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 화상경마장 추방을 위한 입법 청원서’를 들고 화상경마장 추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완성됐으니 못 나가겠다”는 마사회

 

마사회가 화상경마장 건축을 시도한 것은 용산구만이 아니었다. 2010년 12월 696억원을 들여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땅을 매입한 뒤 마권장외발매소를 지으려 했다. 용산구 경마장 건설시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인·허가 과정 비리 의혹과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까지 이 땅은 공터로 남아 있다.

 

건물 완공 여부가 그 둘의 차이를 만들었다. 서초구 소식을 들은 용산구 주민들은 “우리들도 백지화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거절당했다. 용산구청의 허가로 인해 건물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마사회 측은 “건물 시공에 1200억원이 투입됐는데 ‘나가라’고 하면 더 이상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장 빈도가 높은 단어를 분석해 주는 구름단어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각 측의 문제 접근방식을 알 수 있다. 우선 정방 대표 인터뷰 분석 결과 △마사회가 △굉장히 △아니라 등이 높은 빈도로 사용됐다. ‘마사회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에 대한 원인이 상대측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소 공격적이다. 하지만 마사회는 △마사회 △불법 △없음 등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결백성을 주장한다. ‘죄송하다’라는 단어는 23건으로 199회 사용된 ‘없습니다’에 비해 미미하다. 대책위 측은 마사회 측에 문제 원인이 있다고 보고 비판하지만, 마사회 측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셈이다.

 

화상경마장 관련 법 개정을 위한 시도가 있었다. 김동철(민주당), 박인숙(새누리당), 김광진(민주당) 전 의원이 장외발매소 설치 제한 규정을 신설하는 한국마사회법, 학교보건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 폐기됐다. 결국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화상경마 중독률 70% 달해

 

마사회와 주민들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양측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사회에 있다. 대책위는 소통을 하려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지만 마사회는 그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대화를 하더라도 1200억원 가까이 되는 건물 폐기 문제를 당사자끼리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제3자가 필요하다. 국회에 건의를 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 20대 국회로 넘어왔다. 아직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는 않다.

 

마사회는 건물을 건축하기에 앞서 주민에게 충분한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비밀리에 들어와서 이미 완성됐으니 못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위법은 없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불가피했다.

 

학교보건법에는 “교육감은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의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을 설정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서는 일정한 행위 및 시설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사행성 시설은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용산 화상경마장과 같은 사례가 다른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최소 1km는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대한민국 도박 중독 인구는 200만 명이 넘는다. 본인의 인지로 도박을 끊을 수 없는 도박 중독자 비율이 7.2%로, 영국(1.9%)보다 약 4배 높다. 도박 중독의 위험성은 인지하지만 아무도 정부의 7개 합법 도박 규모(약 20조원)를 지적하지 않는다. 화상경마 중독률은 70%에 이른다. 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사행산업 이용객 중 43.4%가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된 사행활동으로 경마를 뽑았다.

 

주민들은 ‘합법’과 ‘불법’의 문제를 떠나 도박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당률이 낮다고 도박 중독률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의 논의’와 ‘국민들의 관심’으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을 비추고 싶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두 가지 이유로 용산 경마장과 관련한 취재를 기획했다. 첫 번째는, 당사자들의 진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경마장 앞에서는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위를 한다.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어떤 이유로 학부모들이 거리에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 당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스트레이트 기사만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시위가 지속될수록 양측 모두 피해를 본다.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았다. 양측의 의견을 듣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심층보도를 기획했다.

인터뷰에 응해 준 정방 대표를 기준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사건은 1250일간 지속됐다. 언론의 관심이 멀어져서 사건의 발생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알릴 필요가 있어 서사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와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인터뷰와 마사회 설명 자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추방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다. 자료 조사 후 인터뷰를 시행했다. 수집된 자료를 검토하면서 부족한 자료를 추가로 요청해 자료를 보완했다.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에 대한 마사회 입장을 알아보기 위해 PR팀에 불법비자금 조성 보도 설명 자료를 요청했다.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사건을 검토한 뒤 해결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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