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해 ‘저녁 있는 삶’ 누린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1.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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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1월1일부터 퇴근 후 이메일 ‘안 볼 권리’ 발효한 까닭

새해가 밝으면 주목받는 법안이 매번 등장한다. 올해는 2017년의 시작과 동시에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 흥미로운 법이 등장했다. 

 

스마트폰 한 대만 있다면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넷(NET) 사회가 됐다. 무척 편리해 보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업무용 메일과 메시지가 나의 사생활에 끝없이 침입하는 시대에 살게 됐다. 도대체 어디에서 선을 그을 지 알 수 없는 때가 된 셈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근무 시간이 끝난 뒤 전달받는 업무 메일을 제한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는 게 화두가 됐다. 

 

그런 화두를 법안으로 만든 곳이 프랑스다. 세계에서 유급 휴가가 가장 긴 나라인 프랑스는 노동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어 올해 1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영국 BBC는 “올해 1월1일 이후 종업원 50명 이상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근무 시간 외 업무 관련 메일 수신을 거부할 법적 권리를 부여 받는다”고 보도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메일 알림음을 듣고 읽지 않으면 불안하다. 혹시나 저 메일이 시급을 다투는 메일일 수도 있다는 염려가 생긴다. 그래서 확인하기를 도저히 그만 둘 수 없게 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건 아마 우리도 유럽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다.

 

ⓒ Pixabay


이처럼 ‘근무 시간이 끝난 뒤에도 업무 연락을 확인 한다’는 노동자의 조건 반사적인 행동은 국경과 대양을 뛰어넘어 전 지구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메일이나 메시지 정도가 뭐 어때서?’라는 상급자의 사소한 생각은 겹겹이 쌓여 하급자의 스트레스로 진화한다. 게다가 이건 초과수당의 대상도 아니다. 그냥 완전 ‘일’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독일의 경우도 선제적인 대응 시도가 있었다. 2014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는 사회민주당이 ‘반(反)스트레스 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해 화제가 됐다. 워크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 기업의 특성은 이 문제에서도 빛을 발했다. 독일 자동차 빅3 중 하나인 다임러의 경우 휴가 중인 사람의 메일 수신을 자동 응답하고, 제거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다임러의 인사담당자는 “업무상 정말 중요한 사내 메일은 20% 정도이며, 이것들도 상사나 다른 동료들이 충분히 커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ICT(정보통신기술)가 발전할수록  일하는 방식도 바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상대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생각하지 않고 메일이나 메시지로 연락을 시도한다. 이건 우리네 현실을 놓고 봐도 이해가 된다.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뽑은 ‘시급한 근무 혁신 과제’ 중 1위는 ‘정시 퇴근’이었다. 그리고 상위권인 5위에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가 위치했다. 

 

시간 외 커뮤니케이션을 노동으로 본다면 이걸 줄이는 게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는 기업도 있다. 존슨앤존슨은 평일 오후 10시 이후와 휴일에는 사내 메일의 교환을 2015년 7월부터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여기에는 관리자나 임원도 모두 포함된다. “근무 외 시간까지 업무 메일에 쫓겨서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최소한 평일 야간과 휴일은 일을 잊고 재충전하기 바란다. 그래야 근무 시간 중에 업무 효율도 오른다”는 게 그들의 지론이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디지털기기와 노동자 간 전투가 벌어지면서 결국 프랑스에서 먼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2016년 상반기 노동법 개정에 포함된 법안 중 하나로 추가했다. 직원 50명 이상의 기업은 디지털과 관련된 것이 직원의 사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메일 교환을 할 수 있는지 등이 명시돼야 한다.

 

프랑스 사회당의 베느와 하몬 의원은 “다양한 조사에서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옛날에 비해 매우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스트레스는 끊이지 않는다. 직원은 사무실 밖에서도 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치 개처럼 전파의 사슬에 매여 있는 셈이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프랑스가 제시한 ‘연결하지 않을 권리’는 전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카톡 감옥’에 갇혀 메신저앱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이른바 ‘카톡포비아’가 지배하는 우리네 현실도 프랑스와 다르지 않다. 지난해 6월22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카카오톡이 무서운 노동자들’이라는 포럼을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김기선 연구위원은 “전체근로자의 86.1%는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면 노동 시간도 증가하는 법. 업무 시간 이후에 평균 하루 1.44시간, 주당 11.3시간을 더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럼이 열린 날,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영등포을)은 동료 의원 12명과 함께 ‘퇴근 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노동 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우리 역시 자율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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