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사 관전하는 법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1.2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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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원년 청사진 제시할 트럼프 정부의 첫 메시지 감상법

취임사는 행정부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다. 1월20일(한국시각 1월21일 새벽)에 공개될 트럼프 취임사는 그래서 주목할 부분이 많다.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인 트럼프가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내놓는 행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직접 초고를 쓸 거라고 밝혔다. 취임식만은 스탭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꾹꾹 눌러 적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초고를 바탕으로 취임사의 완성은 31세의 스티븐 밀러가 맡았다. 31세지만 적은 머리숱으로 나이보다 원숙해 보이는 밀러는 민주당이 강한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해 의견을 내왔다. 공격적인 보수주의자에 가깝다. 듀크대를 졸업했는데 학내 보수파의 오피니언 리더격이기도 했다. 학생 때부터 밀러는 테러에 대한 강한 대응, 불법 이민자 대처를 위한 국경 방어 강화 등을 주장해 왔다. 

 

ⓒ UPI 연합

△ 스티븐 밀러에 대한 탐구

 

대통령 선거 기간 트럼프 진영에서 정책 파트를 담당했던 밀러는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을 맡게 됐다. 그는 트럼프가 법무장관에 지명한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의 보좌진으로 의회를 경험한 바 있다. 미셸 바트먼 전 공화당 하원의원의 스탭으로도 근무했다. 바트먼은 반(反)오바마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보수세력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취임사를 이해하려면 취임사를 쓰는 밀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라이팅 머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원고 작성에 능하다. 그렇다고 글만 쓰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서 밀러는 여러 역할을 맡았다. 일단 트럼프의 정책 상담을 맡았다. 그리고 트럼프의 후보 시절 연설 초안을 잡았고 선거 집회에 연단에 올라 직접 연설도 했다. 오프닝에 등장해 열변을 토하고 그 자리에 모인 트럼프 지지자의 열기를 높이며 바람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뒤 트럼프는 미국 전역에서 ‘감사 투어’(Thank you tour)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도 지지자들을 향해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열광시켰다.

 

방패막이 역할도 밀러의 몫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메시지 공격을 막는 1차 저지선이었다. 예를 들어 클린턴은 2015년 4월 인터넷을 통해 출마 선언을 했다. 당시 클린턴은 자신을 두고 “평범한 미국민의 변호인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클린턴의 메시지를 받아친 건 밀러였다. 밀러는 이후 집회에서 “트럼프 후보는 결코 로비스트와 특정 이익단체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고 호소한 뒤 “트럼프는 바로 당신의 변호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의 메시지를 반사한 뒤 더 뚜렷하게 증폭시킨 셈이었다. 

 

취임사를 쓰는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트럼프와 궤를 같이 한다. 반(反)이민, 반다문화주의다. 밀러는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멕시코 이민자는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멕시코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발언과 비난은 반대로 미국식 백인 문화를 지키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와 밀러는 유사하다.

 

 

△ 트럼프가 취할 연설 스타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라이스대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브링 교수는 “트럼프가 대통령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과거의 취임식에 관해 질문을 많이 던졌다. 특히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을 물었다”고 말했다.

 

2017년 1월9일,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와 악수하는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가 레이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레이건 시절의 미국은 강한 보수주의가 풍미하던 때였다. 레이건은 합리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능했고 소통을 잘했으며 강한 리더상을 표현하려고 했다. 트럼프 역시 레이건 같은 ‘강한 리더’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따올 것 같다고 보도했다. 1961년 케네디의 취임사처럼 국민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연설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케네디의 취임사는 이 한 문장으로 대표된다.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라.” 이후 케네디의 연설 스타일은 미국 정치인들이 차용하는 스탠다드 중 하나가 됐다. ‘문장과 단어는 짧게, 그리고 요점은 정확하고 명료하게’라는 원칙이 강조됐다.

 

여기에 트럼프만의 특수성이 더해질 수 있다. 그간 트럼프는 자신이 강조하려는 부분에서 말의 변주를 가져왔다. 연설 속도를 떨어뜨리며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고 손가락 제스처를 곁들여 집중도를 높였다. 연설 중 이런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활용하는 부분이 나온다면 아마도 그가 강조하려는 정책일 거다.

 

 

△ 내정에 좀 더 집중될 메시지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유권자와의 약속’을 내걸었다. 취임 후 100일 간의 공약 이행 내용에 관한 약속이다. 이를 요약해보면 경제는 고용 창출, 사회는 이민 정책, 외교는 안보 강화 및 테러에 대한 강한 대응으로 정리할 수 있다. 

 

취임사 내용은 지난해 12월27일 미국 정치매체인 '더힐'이 힌트를 줬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메인 테마가 된다. 또 다른 강조점은 ‘하나된 미국’이다. 인수위의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결속을 호소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매체인 ‘폴리티코’가 지난해 12월28일~29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취임사에서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내용으로 응답자의 49%가 ‘갈라진 미국 사회의 복구’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동안 의도적으로 유권자를 가르는 발언들을 해왔고 그 전략이 성공해 대통령이 됐다. 그 뒤를 이은 게 제조업의 유지와 고용 회복 등이었다. 트럼프가 강조했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장벽, 무슬림 입국 금지 등에 대한 기대는 여론조사에 뒤로 밀렸다. 이런 유권자의 바람이 취임사에도 반영될 것으로 점쳐진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별칭처럼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내 문제와 국외 문제를 동시에 다룬다. 이 둘의 시간 배분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위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민의 관심은 국내 문제에 좀 더 집중돼 있다. 트럼프의 취임사가 내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 트럼프 메시지를 받을 1순위자

 

연설은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주요 타깃을 정하고 우선 순위를 두는 게 효과적이다. 취임사도 그런 효과를 고려해 흘러간다. 아마도 1순위는 자신을 강하게 지지해준 백인 노동자 계급이 될 거다. 고용 창출처럼 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문제가 취임사에 중요하게 담길 수 있다. 다만 의외로 타깃이 불분명할 개연성도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승리 연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2년, 3년, 4년, 그리고 8년 동안 국민 여러분이 우리를 위해 협력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사실상 ‘2기 8년’을 이미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폭넓은 정치메시지를 보내는 게 필수적이다. 주요 타깃의 해체도 점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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