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가야사 편)] 한국은 해상왕국이었다 (하)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3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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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 역사의 사라진 고리를 잇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요인들이 등장하면서 서기 1세기 무렵 한반도 남부 지역에 무수히 작은 해상국가들이 존재했었다는 가설에 갑자기 힘이 실리게 된다. 해안지역을 개발하면서 아주 오래 전의 유골과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그것들이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먼 곳까지 교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 부산 서남부 낙동강 하구의 섬 가덕도의 부산신항 개발 현장. 지금까지 없었던 규모로 땅을 파헤치게 되자, 그 속에 묻혀 있던 신석기 시대 유골과 유물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약 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중에는 분명히 아시아인과는 다른 골격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 있었고, 분석 결과 그 유골은 유럽인의 것임이 밝혀졌다. 7000년 전에 유럽과 한반도사이에 왕래가 있었다면, 그로부터 5000년 뒤인 수로왕 시대에 인도와 한반도를 잇는 교류도 당연히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바다를 무대로 활동했던 해상국가 가야의 존재에 대해 더 큰 무게가 실리게 된 것이다.

 

우리의 역사인식은 그렇게 막연히, “아 옛날에도 먼 곳까지 왕래했던 모양이다”라고 짐작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는, 그 옛날에 그렇게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배를 만드는 선박제조기술이나 바닷길을 거쳐 가는 항해술이 발달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그래서 가야국의 수로왕비가 과연 인도에서 왔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실하게 믿기 어려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산 가덕도에서 발굴된 조개팔찌를 하고 팔다리를 굽혀묻기한 인골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 구석기.신석기실에 전시돼있다. ⓒ 연합뉴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다’라는 말도, 살다 보면 종종 하게 된다. 시각(視覺)은 인간에게 있어서 참 중요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시각기관은 얼굴 앞면에 배치되어 있고 뇌와 아주 가깝게 연결된다. 그러다 보니 역사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는 것만 신빙성 있는 자료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글자로 엄연히 쓰인 것, 혹은 유물이나 유골 등. 특히 19세기, 20세기의 역사학에서는 ‘실증주의’라고 해서, 뭔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자료만이 의미 있는 것으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역사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자기모순이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사람의 삶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과거 우리 땅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한편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게 세상을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역사적 실증주의는 딱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판단도 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는 셈이나 다름없다. 

 

이런 의견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역사는 지나간 일이어서, 그 중에서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자료가 분명하게 남아있는 부분도 있고, 전혀 없는 부분도 있다. 역사적으로 증거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을 ‘사라진 연결고리(missing link)’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과거에 대해서는 사라진 연결고리로 남아 있는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훨씬 더 많다. 특히 고대로 갈수록. 

 

이런 상황인데 확실히 남아있는 증거자료로만 얘기하자면 불분명한 부분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특정 자료의 의미만 확대된 나머지 전체 역사의 모습은 오히려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할 때에 유추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하고 관계를 맺어갈까? 여러 가지 방식이 동원된다. 자신의 직감을 믿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특징이나 행동 방식에서 그 사람됨을 짐작하기도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데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결국 한 사람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직접적·간접적 정보와 정황들을 총체적으로 통합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꼭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증거만을 갖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에 대해서도 똑같은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의 일에 대해 다양한 방면의 자료를 보고, 전체적인 판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런 반성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의 역사학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만 가지고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제한적이어서, 오히려 올바른 역사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구전 역사’라고 해서, 글자로 남아 있지 않아도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는 콘텐츠를 중시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또 20세기에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옛날의 환경조건이 어땠는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점점 더 발달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또 옛날에 있었던 일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일을 이해하려는 학문의 흐름을 ‘환경사’라고 한다. 

 

이 연재에서는 그렇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과거의 모습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인지 가늠해보려고 한다. 즉 사라진 고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가는 역사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한반도 남부지방은 인도와 교류하고 있었을까?”라는 역사적 질문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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