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들, 한국이었다면 모두 다 ‘블랙리스트’감!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0 17:15
  • 호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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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아웃!” 할리우드에 부는 反트럼프 바람 주목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당선 이전부터 여러 구설에 오르내렸던 인물답게 그의 정책을 둘러싸고 연일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는 ‘반(反)트럼프’를 넘어 트럼프와의 전쟁을 선포한 분위기다.

 

 

할리우드, ‘트럼프와의 전쟁’ 선포 분위기

 

1월29일(현지 시각) 열린 제23회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은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의 바로미터이자 북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할리우드 스타들은 트럼프를 향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라라랜드》로 영화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엠마 스톤은 “사회를 반영하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 그리고 희망을 주는 그룹(할리우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어 테러 방지 차원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시리아와 이라크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중단시킨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꼬집어 “용서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며, 앞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사이먼 헬버그와 조셀린 타운, 메릴 스트립, 엠마 스톤, 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 © AFF/PA연합· AP연합


인기 드라마 《빅뱅이론》 출연 배우인 사이먼 헬버그는 아예 ‘난민들을 환영한다(REFUGEES WELCOME)’라는 문구를 쓴 피켓을 들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아내이자 배우 겸 감독 조셀린 타운과 함께 입장했는데, 타운의 가슴 위쪽에는 ‘그들을 들여보내라(LET THEM IN)’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빕》으로 TV 코미디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는 “나는 프랑스에서 탈출한 이민자 아버지의 딸”이라며 “이민자 금지 법안은 전혀 미국답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날 시상식 사회를 맡은 배우 애쉬튼 커처는 격앙된 목소리로 “공항에 발이 묶인 모든 사람들도 나의 조국 미국에 속한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고 환영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반트럼프 정서는 지난 1월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드러났다. 공로상 격인 세실 B 드밀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은 “오늘 시상식장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비난받는 외국인들과 미디어 종사자들로 가득 차 있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트럼프의 장애인 조롱과 인종주의를 공식 비난하고 나섰다. 이 수상 소감이 화제에 오르자 다음 날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여배우 중 한 명인 메릴 스트립이 나를 공격했다”며 받아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업무일인 1월21일엔 워싱턴 DC는 물론 전 세계에서 200만 명이 ‘반트럼프 여성행진’에 참여했다. 이들은 이민자 권리 보장, 낙태 규제 완화 등을 반대한 트럼프를 반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도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석했다. 나탈리 포트만·엠마 왓슨 등이 참여한 가운데 스칼렛 요한슨의 연설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트럼프를 향해 “나는 당신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당선 사실을 존중하고, 당신을 지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하지만 먼저 나와 모든 여성, 모든 것에 대한 평등을 위한 우리의 싸움을 지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해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볼링 포 콜럼바인》(2002), 《화씨 9/11》(2004) 등 미국 사회를 비판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며 오래도록 ‘조지 W 부시 저격수’ 노릇을 해 온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역시 트럼프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기 전인 지난해 10월 트럼프와 그의 지지층인 백인 남성을 탐구한 다큐 《트럼프랜드의 마이클 무어》를 공개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 반대 5대 행동 수칙’으로 직접 공직 출마, 지역구 의원에게 항의 전화 걸기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그 밖에 로버트 드 니로·알렉 볼드윈 등 유명 배우들도 트럼프를 향한 비판에 동참했다.

 

이 같은 할리우드의 움직임에 비춰볼 때 오는 2월말 열리는 제89회 아카데미시상식 역시 트럼프 규탄대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하면서 이미 분위기가 달궈진 상태다. 그의 신작 《세일즈맨》은 올해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감독의 국적인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입국과 비자 발급을 금지한 7개국 중 하나다. 파르하디 감독은 트럼프에 대해 “각 나라와 문화에 대한 다름을 의견 차이로, 그것을 다시 증오와 두려움으로 바꾸려 한다”고 비판하며, 이례적으로 입국을 허가받는다 해도 참석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연합


1950년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도

 

할리우드 스타들이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판뿐 아니라 후원회를 여는 등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도 흔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반환경 정책을 이유로 2004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는가 하면, 지난해 10월 줄리아 로버츠부터 휴 잭맨 등 스타들이 총출동해 ‘힐러리를 지지하는 브로드웨이’라는 후원금 행사를 열어 하룻밤 사이에 200만 달러 이상을 모을 수도 있는 곳이 할리우드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에 불어닥쳤던 ‘매카시즘’ 광풍은 할리우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진보 성향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가와 배우들은 정부가 작성한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라 줄줄이 퇴출당했다. 《로마의 휴일》(1953) 등으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필명을 여러 번 바꿔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그의 이야기는 제이 로치 감독이 연출한 《트럼보》(2015)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 할리우드는 1960년대 말부터 사회비판적 시각을 담은 영화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시기를 연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성적 성격이 뚜렷한 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감독과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매체들은 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의 행보를 매카시즘에 빗대 ‘트럼피즘’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타들의 정치 참여는 사상을 억압하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풍자와 비판에 앞장서는 할리우드의 모습은 블랙리스트 이슈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반추하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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