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안희정의 빈곤한 철학과 시대정신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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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이 결핍된 철학과 시대정신으로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안희정 충남지사에 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는 현재 진보와 보수라는 특정 진영논리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확장성에 있어서는 같은 당 문재인 후보 또는 선명성을 앞세운 이재명 성남시장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게 그의 장점이다. 도지사로서의 안정적인 행정 능력, 그리고 30대 후반에 2002년 대선을 지휘한 경험이 있기에 그의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에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진보 또는 보수, 영남 또는 호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고 언제나 상식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발언하는 그의 모습은 점차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안희정이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희정 지사의 돌풍에 대해 의아한 시선을 종종 보내곤 한다. 문재인 후보는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다양한 공약을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있고, 이재명 시장은 연일 적폐 청산과 부정부패와의 고리를 반드시 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강점 분야인 교육과 4차산업혁명이라는 중요 키워드를 선점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놀랍게도 안희정 지사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공약이나 약속을 쏟아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자 다른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안희정 지사를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다른 후보들과 달리 많은 약속을 하지 않는 그의 단호한 주장이 더 많은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5년 전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나 당시 경쟁 상대인 문재인 후보는 현재 반값등록금 공약 및 정책과 관련돼 침묵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다시 ‘일자리 대통령’을 자신의 프레임으로 내세워 많은 공공분야 일자리를 약속한 상황이다. 이와 달리 안희정 지사는 ‘반값등록금을 약속할 수 없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제 공약인 현금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 며 직격탄을 날렸다. 선거 때마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일자리 공약, 반값등록금 공약, 복지 공약이 당선 후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안희정 지사에 대한 지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2월2일 오전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희정 지사의 장점은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한다는 점이다. 많은 후보들이 재원의 부족, 현실적인 어려움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원칙 없이 무차별적인 공약을 만들어내는 데 비해, 안희정 지사는 ‘정치인은 국민에게 허황된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공약을 쏟아내기 이전에 왜 그 공약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공약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정책 약속 이전에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철학과 시대정신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공약 주장에 앞서 대통령 후보로서 생각하는 철학과 시대정신을 내세우는 건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철학을 그토록 강조하는 그의 메시지에서 빈곤한 철학적 사고가 느껴지는 건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의 메시지가 공허한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 대선후보의 출마 선언에는 미래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그리고 현재 직면한 정치경제, 사회문화 각 영역에 걸친 구조적 모순이 무엇인지 담겨 있어야 한다. 상호 협력하는 젊은 리더, 민주당 적자(嫡子)로서 젊은 리더십만을 강조하는 그의 출마 선언문은 아쉽게도 현재 산적한 대한민국의 문제점과 해당 병폐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결여돼 있다. 구체적인 문제해결 이전에 현 시대의 문제점을 관통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던 그의 메시지가 정작 출마 선언문에는 어디에도 없다. 출마 선언문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현재 국가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생각하고 직면한 구조적 모순과 적폐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혜안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아쉽게도 그의 출마 선언문에서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둘째, 구체적인 공약 제시가 여전히 부족하다. 올해 대선은 연말에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큰 편이다. 인수위원회를 구성할 시간도 없는데도 여전히 지난 정부 때 각 대통령이 약속한 정책을 이어가면 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와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였지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는 여전히 우리 시대 필요한 경제성장 해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창의적 경제와 친환경 기술에 기반한 녹색성장 등 신재생에너지․환경 산업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정부 시절 녹색성장과 창조경제의 정책 중 어떤 점을 계승하고 어떤 점을 뜯어 고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대선후보들처럼 무차별적 공약을 쏟아낼 필요는 없지만, 기존 정부의 정책을 정교하게 살펴보지 않고 계승한다고 미리 약속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1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19대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셋째, 안희정 지사는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이재명 시장을 필두로 각 당의 주요 후보들이 쏟아내는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며 ‘약자(弱者) 우선 복지 구상’을 밝혔다. 근로 시장에서 소외된 이웃들의 삶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적 약자에게는 보상 및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고(故) 존 롤스 하버드대 교수의 생각과 닮아 있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가 실현되면 국민은 시혜자(施惠者)와 수혜자(受惠者)로 자신들을 인식하고 가진 자들의 조세 저항은 더 커져 결국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연대 의식이 약화된다는 점을 그는 모르고 있다. 선별적 복지가 실행되면 복지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납세를 꺼리면서 복지의 질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공유해야 할 시민의식이 형성되지 않는다. 선별적 복지로 공적 영역을 모두가 누리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민주사회 시민의식의 기본 뿌리가 돼야 할 연대와 공동체 의식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시대 정의를 주장하는 공동체주의 학자들의 보편적인 견해이다.

 

넷째, 그의 대연정 발언이다. 발언의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는 아쉽게도 단 한 번도 부정부패와의 고리를 완전히 끊거나 풀지 못하고 진행돼 왔다. 통합과 타협, 협치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의와 공정함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의 협치는 정치적 사치일 뿐이다. 안희정 지사가 철학을 그토록 강조하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목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정치의 목적은 좋은 삶의 구현이기에 국민을 이끌어 갈 주요 공직과 영광은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무엇이 공동선(共同善)인지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선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들이 주요 공직을 맡는다면 시민의 미덕을 키울 수 없기에 이는 정치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잘라 말했다. 안희정 지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안희정 지사는 지금까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말을 당당하게 하고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선심성 공약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자 이상으로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지, 누구와 함께 협치를 해야 하는지 대선 후보라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서 구체적인 혜안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아쉽게도 그의 메시지에서는 시민의식의 함양, 시장의 도덕적 한계, 공동선을 모색해나가야 할 정치적 혜안, 정의에 대한 철학과 시대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모호한 철학적 화술을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 또는 유권자들을 가르치려고 든다. 정작 자신이 먼저 국민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안희정 지사가 자문(自問)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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