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억 先(선)지급된 2015년 포스코건설에 무슨 일이…
  • 박혁진·박준용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7.02.15 10:37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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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로 ‘포스코건설-게일인터내셔널’ 분쟁 재조명

송도국제도시를 공동 개발해 온 포스코건설과 미국의 게일인터내셔널 간 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두 회사는 2004년 합작회사인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와 게일인터내셔널코리아(GIK)를 설립했다. GIK는 NSIC의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다. 두 회사 지분은 게일인터내셔널과 포스코건설이 각각 70.1%, 29.9%씩 나눠 갖고 있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던 두 회사 간 갈등은 최근 2년간 몇 개의 사업권 문제를 둘러싸고 폭발했다. 이 과정에서 10여 개에 달하는 쌍방 간 고소 및 고발이 이어졌고, 포스코건설과 게일인터내셔널 측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로펌인 율촌과 김앤장을 각각 선임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두 회사 간 법적 분쟁이 시작된 것은 약 2년 전부터지만 이 사건이 지금에 와서야 주목받는 이유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포스코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언론보도를 통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포스코의 각종 사업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고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사건 또한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직 게일 측 인사는 “게일이 당시 항고 과정에서 검찰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검장급 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사건을 진행했다. 그런데 해당 변호인 측에서 검찰 외부의 압력을 언급하며 오히려 일간지 기자를 소개시켜줬다”며 “외부적 압력이 누군지 묻자 ‘요즘 신문에 많이 나오는 그 사람들’이라고만 말했다”고 언급했다.

 

두 회사 간 분쟁에서 재조명되는 첫 번째 사건은 이른바 ‘700억원 선(先)지급’ 관련 의혹이다. 2011년 11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GIK 대표이자 포스코건설 전무였던 임아무개씨가 2015년 6월 NSIC의 아파트 분양사업 수익 가운데 700억원을 포스코건설에 선지급한 것이 사건의 개요다. 문제는 GIK와 포스코건설 사이에서 수익을 선지급한 전례가 없었던 만큼, 선지급을 위해선 GIK의 모기업인 NSIC 이사회 승인 등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임씨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선지급을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임씨는 게일 측 인감도장을 게일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사용했다. 이에 NSIC는 임씨를 배임, 사문서위조, 업무방해, 위조사문서행사 등 4가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두 회사 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포스코건설이 시공한 송도국제도시의 동북아 트레이드센터. 이 건물에 포스코건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게일인터내셔널코리아도 입주해 있다. © 연합뉴스

포스코건설 “선지급 이사회 의결 사항 아냐”

 

경찰은 2015년 12월23일 GIK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 수사에 착수했고, 이 내용이 언론에도 보도됐다. 경찰은 수사 끝에 임씨의 범죄사실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임씨가 GIK의 인감도장을 이용해 포스코건설에 유리한 각종 서류를 승인한 것으로 확인했었다”고 말했다.

 

사건은 검찰수사에서 결론이 뒤바뀌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인천지검의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검찰 역시 임씨가 이사회 승인절차 없이 포스코건설과 선지급 합의서를 작성한 후 700억원을 지급한 사실 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 공사비를 선지급할 경우 반드시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명시적 규정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점

- 피의자(임씨)가 사건 공사비를 선지급하기로 한 것은 경영상 판단

- 회사 제반사정에 비춰봤을 때 임씨가 NSIC에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배임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항상 회사 측과 수사기관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렇다고 검찰이 일방적으로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검찰은 이 사건에서 완벽하게 포스코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이 범죄사실이 분명하다고 본 것을, 검찰이  문제없다고 결론 내자 NSIC는 이 사건을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하지만 고검 역시 지난해 10월26일 이 사건의 항고를 기각한다고 NSIC에 통지했다.

 

결국 업무상 사소한 문제였던 것으로 마무리돼 가던 이 사건은 최근 포스코건설 관계자들의 내부 증언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시사저널이 만난 복수의 관계자는 하나같이 이 사건이 임씨 개인이 아닌 회사 주도로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포스코 측 인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포스코건설이 잘못한 일이 맞다. 그 과정에서 형사 소송이 붙었는데, 이사회 의결 없이 진행된 일”이라면서 “현금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변칙적 방법을 썼을 수 있다. 개인이 착복한 게 아니고 회사 차원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2016년 11월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포스코건설의 전직 간부 역시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스코건설 사업 중 내부에서 말이 많은 사건이 몇 가지 있는데, 이 일이 그중 하나다. 의사결정에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게 맞다. 게일의 인감을 게일 측 허락을 받지 않고 찍은 것에 대해서는 사실인 것으로 안다. 포스코건설 측에서는 자신들의 편의상 했다고 하지만 이는 이사회 절차가 거꾸로 된 것이고, (포스코건설 측에서) 의사결정을 한 뒤에 문서를 맞춘 것이다. 당시 700억원을 NSIC가 선지급했는데, 지금 서류상으로 보면 돈을 빼고 나서 근거를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걸로 돼 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 일에 대해 연루자를 찾으면 회사에서 10명쯤은 나온다. 이 정도 일이면 당시 그룹 회장도 당연히 보고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사건의 피의자였던 임씨는 시사저널에 “해당 의사결정들은 금융거래이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 사항이 아니었다”며 “외부에서 포스코건설에 부당한 이득이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 자금들은 어차피 포스코건설에 가야 하는 공사비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스코건설은 그 부분에 대한 금융비용을 GIK에 납부했는데 건설에서 흔히 하는 ‘선납할인’”이라면서 “법인 인감도 게일 측이 GIK에 모든 것을 위임했었다. 함부로 인감을 쓴 게 아니라 규정이 있는데 규정에 맞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임씨는 또한 “게일사가 개인 세금을 NSIC나 포스코건설에 해결해 달라고 하면서 여의치 않자 고소한 것”이라며 “결국 무혐의 처분이 나왔고, 회장 보고 사항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 사업에 ‘보이지 않는 손’ 의혹

 

임씨의 주장대로 절차상에 문제가 없었고, 공사비 선지급이 건설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가정해도 의문은 남는다. 임씨가 700억원이라는 돈을 굳이 이사회 의결 없이 임의로, 그것도 인감도장을 사용해 포스코건설 측에 선지급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포스코건설 측 자료에 따르면, 포스코건설 측은 700억원을 선지급하기 전 이미 법적 검토를 거쳤다. 임씨 측 주장과 달리 선지급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법률검토를 한 것이다.

 

검찰수사가 마무리된 단계에서 또다시 내부 고발이 이어지는 이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게일사 측이나 포스코 내부 관계자들은 선지급이 이뤄진 시점과 당시 포스코건설 부사장이었던 최명주씨를 주목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스코건설이 NSIC로부터 700억원을 받은 시점은 2015년 6월말이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는 일이 회사 최우선 과제였다. 포스코건설의 모기업인 포스코는 2015년 6월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와 1조2400억원 규모의 포스코건설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포스코건설 전체 지분의 38%에 해당한다. 매각은 2015년 10월2일 완료됐다. 본 계약에 앞서 맺어지는 MOU(양해각서)는 3개월 전 박근혜 대통령의 사우디 순방 때 체결됐다.

 

공기업 성격이 강한 포스코가 비상장계열사인 포스코건설의 지분을 해외에 매각하기 위해서는 정부 측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권이나 재계의 정설이다. 이에 대해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뒤 이어지는 주식매각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이 유동성을 확보해야 했던 모종의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스탠 게일 게일인터내셔널 회장 © 연합뉴스

당시 포스코건설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합작법인 설립을 주도했던 인물이 최명주 전 포스코건설 부사장이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최 전 부사장은 박근혜 정권의 포스코 이권 개입 의혹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최 전 부사장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옥스퍼드대학 동문이며 친구다. 2016년 12월7일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관련 2차 청문회에서 최 전 사장과 관계를 묻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조 전 수석은 ‘절친’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즉 일련의 과정을 보면 2015년 3월과 10월 사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이 급하게 유동성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최 전 부사장이 깊숙하게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 전 부사장은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을 거부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전직 관계자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최 전 부사장만큼은 지킨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과 게일사는 이 사건 이외에도 잭니클라우스 골프장의 소유권 문제, 인천포스코자사고 설립비용 추가 기부 문제 등 몇 개의 사업을 놓고 맞부딪치고 있다. 게일사 주변에서는 이 문제가 한국과 미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게일사 측은 기본적으로 이번 사건을 ‘한국 사업에 투자한 외국기업에 대한 불공정 대우’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게일사 CEO(최고경영자)인 스탠 게일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는 점에서 본사 차원의 개입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게일사의 한국 관계자는 “아직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인감도장 사용 문제 등은 ‘도장 문화’를 잘 모르는 미국 파트너를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왜 700억을 미리 가져갔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항고조차 기각하는 상황이니만큼 법원의 재정신청 등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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