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공백 시 삼성전자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 송창섭·박준용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2.18 12:18
  • 호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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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구속’으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삼성 위기론’, 그 실체에 대한 검증

사실상 삼성그룹 총수 역할을 해 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자, 한쪽에서 ‘한국 경제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어떻게 하든 총수의 구속만은 막고자 했던 삼성 측이 특검 조사를 받는 동안 계속 물밑에서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 더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는 논리를 편 결과이기도 하다.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일부 보수층이 이 부회장 구속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도 표면적으로는 ‘경제 논리’다. 이 부회장 구속과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성립의 연관성도 무시할 순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산 1000조원에 직원 50만여 명을 거느린 초대형 글로벌 기업이, 총수 한 사람 구속된다고 해서 갑자기 뿌리째 흔들릴까. 그 정도로 삼성은 취약한 것일까.

 

삼성의,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그룹 총수의 부재 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는 것이고, 당장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까지 인수하기로 한 미국의 자동차 전자장비업체 하만 인수가 무산될 것이란 우려다. 현재 하만의 일부 주주들은 하만 이사진이 삼성전자와의 독점 협상 과정에서 ‘추가 제안 금지 조항’을 수용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에 합병을 반대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하만을 주당 112달러에 현금으로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M&A 사상 최대 규모인 80억 달러(약 9조4000억원)의 계약이다. 현재 일부 하만 소액주주들은 이 매각이 ‘헐값’이라는 이유로 합병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디네쉬 팔리월 하만 최고경영자(가운데)가 2016년 11월2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 손영권 사장(왼쪽), 전장사업팀 박종환 부사장과 손을 맞잡고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 연합뉴스


이에 대해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마치 하만 인수 무산의 직접적 원인이 될 것이란 일각의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란 입장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이미 우호적인 지분을 대거 확보한 상태여서 궁극적인 합병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도 보도자료를 통해 “가격 재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삼성 쪽에서는 삼성전자의 대표이사들이 나서면 된다. 삼성전자의 경영자는 대표이사인 권오현·윤부근·신종균 사장이다”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 부회장과 삼성 비리에 대한 특검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1월까지도 하만 측은 합병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설령 합병에 반대하는 하만 소액주주들의 뜻대로 당장 인수·합병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해서 M&A 판 전체가 깨지는 것은 아니다. 추가 협상을 통해 풀어가면 되고, 이는 협상과정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하만 인수, 이재용 구속과는 별개”

 

주식시장의 반응도 당초 예상보다는 차분하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2월17일 삼성전자 주가는 한때 주당 186만4000원까지 내려갔지만, 별다른 영향이 감지되지 않자 회복세를 보여 전날보다 0.42% 내린 189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 대형 증권사 전자부품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가 삼성동 한전 부지를 인수한다고 발표하고,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한다고 발표한 날 주가는 오히려 9%대나 빠진 적이 있다. 이것과 비교해 보면, 구속 당일의 시장 반응은 평상시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SDS·삼성생명 등 삼성그룹주 역시 투자심리 위축으로 약세를 기록했을 뿐 하락폭이 크지는 않았다. 한 해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나 주가하락 폭이 확대되면 매수 기회는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의 큰 폭 실적개선으로 내년까지 실적 개선 효과가 뚜렷한 것도 긍정적인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삼성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가 경영 성과와 관련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1월, 2007년 10월〜2009년 12월 삼성 비자금 수사와 이건희 회장의 유죄 판결·사면 등의 사건이 삼성전자의 재무성과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 관련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기관 ‘커런트 어낼리시스’는 “제품 문제가 아닌 경우에 시장에서 (이 부회장 구속 사태의)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대 주식시장의 사례를 봐도 ‘삼성의 오너리스크’에 일부 단기적 반응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은 없었다. 이 또한 총수 부재나 사법처리가 곧 회사 차원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2007년 10월말 김용철 변호사가 훗날 검찰수사의 신호탄이 되는 ‘삼성 일가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하지만 이날 이후 한 달간 삼성전자의 주가는 54만4000원에서 56만5000원으로 오히려 오름세를 보였다. 2008년 4월22일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는 첫 한 달간 주가가 1만3000원가량 일시 소폭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 수사 기간 전체로 봤을 때 삼성전자의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조준웅 특검’의 삼성 비리 수사와 이 회장의 집행유예 선고가 이뤄진 2008년 초부터 2009년 말까지, 삼성전자의 주가는 50% 상승했다. 이 회장이 2014년 5월11일 심근경색으로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한 뒤 한 달 사이 삼성전자 주가는 10만원 올랐다. 

 


‘이재용 구속’ 후 삼성 경영 향배는?

-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 유지될 듯

 

2월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그룹 경영의 향배에도 이목이 쏠린다. 우선 삼성은 당분간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미 몇 년 전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회사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2008년 사례다. 2008년 4월 ‘조준웅 특검’이 삼성그룹의 비자금조성·탈세·불법승계 혐의가 포함된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4월22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 삼성은 전문경영인 집단협의체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이후 이 회장이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하기까지 23개월간 이 체제는 계속됐다.

 

삼성 사장단이 1월11일 수요 사장단회의를 마치고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때문에 이 회장 때의 사례와 같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에도 이와 유사한 체제로 삼성그룹이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경영인 협의체의 인적 구성은 다소 변할 전망이다.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 등은 특별검사팀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따라서 이번의 전문경영인 협의체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되지 않은 삼성 관계자 중심으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승계구도 재편설’도 나왔다. 발원지는 외신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부회장 공백 시기에 그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일정부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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