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스티븐 호킹의 잔잔한 울림
  • 노진섭 기자·조문희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7.03.03 09:24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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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장애 환자도 일반인에게 도움을 준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일반인에게 그의 뒤틀린 외모로 유명하다. 옥스퍼드 학생 때인 21살에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2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근육이 마비돼 사지(四肢)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블랙홀 등의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스티븐 호킹의 루게릭과 비슷한 근육병(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오성환씨(22)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 연세대 심리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대학 입학으로) 노력과 성취를 인정받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복한 성취는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돌 무렵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퇴화해 호흡근육마저 약해지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근육을 움직일 수 없어서 휠체어와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10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게 당시 병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휠체어를 타고 일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꿋꿋하게 공부했다. 고비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3년 9월에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중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인근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그에게 심장마비 증세까지 나타났다.목에 구멍을 뚫어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심폐소생술로 겨우 숨이 돌아왔다. 그러나 호흡근육이 약해져 목소리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어도 학교 친구들과 대화는 가능했었는데 그마저도 힘들게 된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숨 쉬기조차 힘든 상황에 공부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는 “상실감을 느끼고 인생을 비관했다”며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당시를 회상했다.

 

오성환씨(맨 왼쪽) 등 대학 입학·졸업을 앞둔 근육병 환자들과 그 가족이 참석한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가 2월22일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렸다. © 시사저널 임준선


호흡 재활로 희망 되찾아, 수능 전 과목 1등급

 

오씨가 목소리를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100일 후였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서 인공호흡기 없이 숨 쉬는 법 등 호흡재활치료를 받았다. 물론 밤에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숨을 쉴 수 있지만 적어도 낮에는 일반 사람처럼 호흡하고 말도 하게 됐다. 무엇보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씨는 “이대로 살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겠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굳은 손가락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며 EBS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책장을 넘겨주고 밑줄을 그어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탓에 하루 2시간이 그에게 주어진 공부시간 전부였다. 그만큼 집중해서 공부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수능 전 과목 1등급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오씨는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는 것을 가장 해 보고 싶다”며 대학 생활에 큰 기대를 보였다. 자신과 같은 희귀병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상담가가 그의 꿈이다. 그는 “입원해서 치료를 받을 때 조금만 더 의지를 가지면 금방 쾌유할 수 있는데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았다”며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도 호흡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장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장 © 시사저널 임준선

오성환씨처럼 근육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4명과 올해 대학 졸업을 앞둔 2명이 2월22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모였다. 이들은 모두 이 병원에서 호흡재활치료를 받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장(재활의학과 교수)은 이런 학생들의 대학 입학과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를 6년째 마련해 오고 있다. 강 센터장은 지금까지 107편의 관련 연구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국내 최고의 호흡 재활 전문가다.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호흡 장애 학생들의 대학 입학·졸업 사례는 삶을 쉽게 포기하려는 중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으로 믿는다. 중증 환자, 특히 희귀병 환자는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다. 할 수도, 해도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 많은 호흡 장애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도록 사회적 관심을 주면 좋겠다.

 

 

선천적인 원인 외에 후천적으로도 누구나 호흡 장애를 겪을 수 있는가.

 

물론이다. 예컨대 교통사고를 당하면 흔히 목뼈를 다치지 않는가. 이때 호흡을 관장하는 척수 부위가 손상되면 호흡 장애가 온다. 척수가 병원균에 감염되는 척수염이 생겼을 때나 암이 척수로 전이된 경우도 호흡 마비가 생긴다. 또 노인의 폐 조직은 COPD(만성폐쇄성 폐질환·폐에 염증이 생겨 폐 기능이 떨어지고 호흡곤란이 생김) 환자와 비슷해져 호흡곤란에 빠지기 쉽다. 누구에게나 호흡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호흡 재활이 필요하다.

 

 

호흡 재활은 어떤 치료이며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호흡 재활은 ‘치료’보다는 ‘관리’에 방점을 둔 개념이다. 다리를 못 쓰게 돼도 정도 차이에 따라 지팡이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휠체어가 유용한 경우가 있는 것처럼, 호흡 장애 환자도 자신에게 맞는 인공호흡기 등을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호흡 재활이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밤에 잘 때만 사용하고 낮에 사용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지도하면 환자의 삶의 질은 매우 높아진다. 이를 위해 물리치료, 보조기구 사용법, 호흡요법, 심리치료, 영양 교육 등이 동원된다. 또 인공호흡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자는 폐렴 등 합병증에 취약하다. 따라서 합병증 예방과 관리도 호흡 재활의 영역이다. 비록 호흡 장애 자체를 완치할 수는 없지만 그 증상을 완화해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는 게 호흡 재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호흡 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일반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호흡 장애를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고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합격해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면접에서 탈락시킨 사례가 있다. 그들에게 신체적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이겨내고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하는 사례는 오히려 사지가 멀쩡한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호흡 장애 환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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