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승복이 그토록 어려운가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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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삼성동 사저 정치 부활 아닌 헌재 판결의 존중과 승복 필요 시점

3월10일(금)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판결 이후 하루아침에 전(前) 대통령이 된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TV에서는 연일 시사평론가들이 모여 헌재의 탄핵 인용 결과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복할 것인가, 승복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추측을 쏟아냈다. 대다수의 평론가들은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중요시했던 요소가 원칙과 신뢰였고 국민통합을 이 정부의 대의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헌재 결과를 승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필자 역시 이 글을 쓰는 동안 원고의 상당 부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박 전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12일(일) 저녁 삼성동 사저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박 전 대통령은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라는 다소 모호한 발언을 끝으로 18년 넘게 진행했던 본인의 정치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이어진 민경욱 의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 판결에 승복한다는 말씀은 없었다’는 추가적인 메시지를 국민들은 모두 확인했다. 종편에 출연한 일부 시사평론가는 “헌재의 판결은 승복했으나 자신을 향한 법적 처벌만큼은 인정할 수 없기에 앞으로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메시지로 이해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인가.

 

© 시사저널 임준선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라는 발언은 문장의 배치만 다를 뿐 ‘지금 시점에서 드러난 결과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라는 뜻에 불과하다. 민경욱 의원도 박 전 대통령이 결과에 승복한다는 말씀은 없었다라고 누차 강조하며 해당 메시지가 승복이 아니라는 점에 쐐기를 박았다. 탄핵 인용 후 삼성동 사저로 이동할 때에도 촛불집회를 위해 1600만명이 모였던 광화문을 피해가는 코스를 선택해 논란을 만들더니 삼성동에 도착한 이후에도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친박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말만 강조했을 뿐 이번 탄핵 인용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한다거나 국민들을 위한 통합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결코 남기지 않았다.

 

지금처럼 온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때도 드물다.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경제 위기, 안보 위기를 외치고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대한민국은 연일 강대국의 압박과 공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불확실성이 점점 증폭되는 2017년 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면서까지 결과에 대한 존중과 승복 대신 불확실성을 더욱 키워내고 설왕설래를 키우는 메시지만 남기고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다. 삼성동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친박 의원들은 ‘거실이 추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펑펑 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리를 다쳐 몸이 안 좋아 보였다’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했다.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이고 국민통합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는 정치에 대해 그토록 혐오하던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지지자들만 믿고 다시 한 번 삼성동 골목 정치 또는 사저 정치에 모든 노력을 다할 기세다. 친박 의원들이 사저를 방문한 후 쏟아내는 메시지에는 연일 ‘몸이 안 좋다’이니 검찰에서 소환 조사를 실시하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피해자 프레임’으로 입장을 전환해 강경하게 검찰 조사에 맞설 태세다. 국정농단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지가 벌써 5개월이 넘어가는데도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적 시련을 풀어낼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고 일부 업적을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인물로 역사에 기록된 이유는 헌법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숱한 긴급 조치를 남발해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탄압했고 3선 개헌과 10월 유신 등을 통해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심지어 긴급 조치를 비판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긴급 조치까지 시행해 헌법 위에 권력이 존재함을 과시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 정치 이후 ‘힘이 곧 법이다’, ‘힘 있는 사람에게 법은 아무 쓸모없는 장난에 불과하다’는 조롱 섞인 이야기들은 지금도 드라마의 대사로 활용되고 있다. 그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법은 절대로 권력을 처벌하지 못한다’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헌재의 탄핵 인용 및 특검의 수사 결과는 대한민국 사회에 더 없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준엄한 법의 심판 앞에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자 불멸의 권력이라던 삼성의 재벌총수는 구속됐다. 정치 대통령과 경제 대통령이 법의 잣대를 모두 피할 수 없었던 시대는 적어도 대한민국 역사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이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실현되려면 법의 심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직접 해당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태극기 집회에 나선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서도 폭력적인 시위를 중단하고 국민 통합에 모두가 힘써줄 것을 당부해야 한다.

 

미국이 각국의 수많은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치경제를 선도하는 이유는 법의 심판 앞에 모두가 결과를 승복하는 국가적 도덕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1990년대 후반 세계 에너지업계를 좌지우지하며 신경제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엔론은 회계부정을 끝으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서적이 20만부도 판매되지 않은 반면 국내에서 해당 서적이 130만부가 판매된 이유이다. 이번 탄핵 인용을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은 법의 심판에 대한 존중과 승복을 국가의 시금석으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를 거부했다.

 

헌정을 유린하고 적극적인 정경유착을 바탕으로 국정을 농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헌재의 판결에 관해 명확한 승복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다. 존중과 승복을 바탕으로 국민통합이 이뤄져야 할 중요한 이 시기에 또 다시 박 전 대통령은 통합 대신 분열을, 치유 대신 갈등을 선택했다. 지금도 삼성동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자자들이 ‘헌재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다가올 검찰 수사를 또 다시 국론 분열의 빌미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진정한 통합과 치유는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진심으로 자신의 행위를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때 가능하다. 이번 국정농단의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주말마다 모든 국민은 촛불 집회 또는 태극기 집회에 나서며 국가의 앞날을 걱정했다. 언론에서 연일 차기 대통령은 국민통합과 화합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는 차기 대통령이 실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더 이상 국론 분열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국민통합의 첫 걸음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검찰 조사에 자연인으로서 성실히 응해야 한다. 헌재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자신의 지지 세력을 바탕으로 정면 돌파한다면 이는 또 다른 사저 정치의 시작이자 어리석은 선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연일 삼성동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보호하고 그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친박 의원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에게 제갈공명으로 더욱 유명한 제갈량이 역사에 기록되는 충신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남긴 ‘출사표’ 때문이다. 그는 군주는 안일(安逸)을 경계하면서 신하의 충언(忠言)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고 신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군주에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함을 역설했다. 또한, 제갈량은 왕이 사리에 맞지 않는 비유를 들어 충간(忠諫)의 길을 막으면 분열과 위기만 다가올 것을 경고했다. 국민이 박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건 하나다. 헌재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할 것. 더 이상 사리에 맞지 않는 비유를 들어 헌재 결과를 부정하고 삼성동 사저 정치로 회귀하는 그녀의 모습을 국민은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드리는 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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