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우조선을 ‘좀비’로 만들었나
  • 박준용 기자 (iuney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4 16:46
  • 호수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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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깜깜이’ 대책으로 혈세만 날린다

 

국내 조선 업계 ‘빅3’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은 이제 국내 증시에서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3월29일 대우조선이 외부감사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을 받은 탓이다. ‘한정’ 의견을 받은 대우조선은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업종별 국내 대표기업으로 구성된 코스피200지수에서도 빠진다. 이는 대우조선이 코스피200 종목으로 지정된 2002년 이후 15년 만이다. 대우조선이 ‘한정’ 감사의견을 내년에도 받으면 증시에서 퇴출된다.

 

벼랑 끝에 선 대우조선의 위기는 증시에서뿐 아니다. 회사 존립이 위태롭다. 대우조선은 4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해양플랜트 손실과 원유시추선(드릴십) 인도 지연 등으로 영업손실 1조6089억원, 당기순손실 2조710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대우조선이 2015년 10월 금융 당국과 채권단의 결정으로 공적자금 4조2000억원을 받은 채 낸 실적이다. 당시 “대우조선에 추가지원은 없다”던 금융 당국은 올해 3월23일 다시 강도 높은 채무재조정을 조건으로 2조9000억원을 수혈하겠다고 말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논란을 촉발시키고 있다.

 

조선업 ‘빅3’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 © 시사저널 박정훈

“금융 당국의 앞선 실책 덮기 위한 지원 의심”

 

대우조선은 과거에도 비슷한 ‘전력’이 있었다.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진 뒤 대우조선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선수금 환급보증(조선업체가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금융회사의 보증)을 포함하면 약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우조선은 이제 ‘좀비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대우조선이 추락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전문가들은 세계적 조선업 변화 흐름에 대우조선 대주주(산업은행(산은) 31.46%, 금융위원회 12.15% 각각 지분 보유)인 금융 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아니 아예 엉뚱한 정책으로 잘못 대응한 탓이라 입을 모은다. 금융 당국은 2009년부터 해양플랜트 진출 등으로 산업 규모를 키웠다가 ‘유가하락’ ‘수주절벽’ 등을 만났다. 남은 건 대규모 적자다. 이로 인해 대우조선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금융 당국이 조선 업계의 변화에 ‘몸집 키우기’식으로 대응했다. 사실 그때 산업 재편을 시작했어야 했다”면서 “올해 ‘4월 위기설’의 한 축이 대우조선 부실 문제다.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이미 지난해부터 산업 차원에서 부실을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대우조선 부실 문제를 인지했으면 정책방향을 선회해야 하는데,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서야 대응 방침을 내놓았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조선공학과 교수도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은 등이 나서서 대우조선의 과도한 사업 확장을 자제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선업 호황기에 단물만 마시다가 미래 대비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 경영실패는 정부의 ‘밀실회의’도 한몫했다. 권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공적자금 지원안 등 대우조선 관련 방침을 정하는 청와대 서별관회의 등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극소수 관료의 판단만으로 천문학적 금액의 금융 조치가 논의된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김은정 간사는 “금융 당국의 밀실회의로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하다 보니 매번 경제관료들이 공정한 근거 없이 ‘지원을 해야만 하는 이유’만 반복해서 설명하는 상황이다. 이번 조치도 금융 당국이 앞선 자신들의 실책을 덮기 위해서 한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대우조선의 대규모 회계 부정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수사를 통해 2012~14년 이뤄진 분식회계 규모가 5조7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 금융 당국의 감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산업은행이 분식회계 감지 시스템을 만들고도 대우조선 감독에 활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2015년 10월 서별관회의 문건에 따르면, 청와대와 정부는 대우조선 분식회계를 인지하면서도 공적자금 지원을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좀비기업’ 된 대우조선 지원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이 ‘좀비기업’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게 맞을까. 이제껏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이 기업을 정상화할 수 있고, 국가경제에 이득이라 역설했다. 이유는 조선업의 ‘장밋빛 미래’였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추가 지원하는 데 쓴 근거는 ‘클락슨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영국의 조선·해운업 분석기관 클락슨이 발표하는 업계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인용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클락슨은 2018년부터 조선업 수주 현황이 크게 개선된다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최근 이 자료의 신뢰도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2015년 정부는 클락슨을 인용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클락슨은 2016년 조선 업계 수주시장 전망을 밝게 봤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 의지해 대우조선이 2016년 115억 달러(약 12조8700억원)를 수주할 것으로 예측하며 2015년 10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우조선의 실질 수주액은 15억 달러(약 1조6788억원)에 그쳤다. 이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제3의 기관에 너무 기대서는 안 된다”면서 “정부가 클락슨 보고서에 의지해 대우조선의 전망을 너무 낙관적으로 잡았다. 클락슨 보고서는 전반적인 수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만신창이가 된 대우조선이 정상일 때처럼 수주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공적자금 지원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대우조선 부도 시 파급효과를 과장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금융위가 대우조선 부도 시 경제 손실을 59조원(삼정KPMG 추산)으로 잡은 것과 달리, 산업통상자원부는 손실 규모를 17조원으로 집계하며 논란이 됐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산업부 집계도 너무 적다고 보지만, 금융위가 제시한 59조원의 손실도 과하다는 느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산출한 최대치”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1위, 세계 7위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은 단칼에 파산시키고, 대우조선은 계속 살리는 것은 ‘이중 잣대’라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위와 산은 등은 지난해 한진해운에 요구한 자구안 규모인 7000억원 중 1400억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규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끝낸 파산했다. 반면 대우조선은 자구계획 이행률이 29%에 불과했는데도 추가지원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3월30일 “한진해운도 대우조선도 기회를 줬고, 안 되면 똑같이 ‘P플랜(약식 법정관리)’으로 갈 것”이라며 진화(鎭火)에 나섰다.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로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우조선, 삼성重·현대重으로 통합해야”

 

금융 당국이 대우조선을 ‘좀비기업’으로 내모는 동안 불똥은 노동자와 채권단으로 튀고 있다. 정부는 대우조선 인력 2만3000명을 줄이려 한다. 이미 대우조선은 4만6000명이던 직원 수를 1만2000명이나 줄였다. 이를 두고 조선 업계 노동조합 관계자는 “명백한 경영실패와 정책실패가 불러온 위기를 일방적 인력 감축으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고 반발한다.

 

채권단은 대우조선 부실 탓에 채권 일부를 포기해야 할 처지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우조선이 채무재조정을 받지 못하면 공적자금 투입은 물 건너간다. 또 법정관리의 일종인 ‘P플랜’에 돌입하게 돼 있다. P플랜이 가동되면 기존 수주계약도 깨질 수 있다. 하지만 채권단의 입장도 난처하다. 대우조선 전체 회사채의 29%인 3900억원어치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만 봐도 그렇다. 보유한 회사채는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사들인 것. 그렇지 않아도 ‘애물단지’인 회사채인데, 이 중 절반은 적자 규모가 큰 대우조선 주식으로 바꿔야 하고, 절반은 만기를 유예해 줘야 한다. ‘손해 보는 장사’일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임직원이 P플랜 돌입을 막기 위해 채권단을 최대한 설득하고 있다. 회사 측에서는 채무재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대우조선 사태’는 공적자금 회수, 노동자와 채권단 피해 최소화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대우조선의 해양플랜트 사업 정리를 강조한다. 다행히 금융 당국의 추가 지원 안에는 이 내용이 담겼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해양플랜트 수주를 지양하고, 고부가가치 상선과 특수선 사업에 집중하는 산업은행의 방안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조선 업계가 ‘빅3’ 체제에서 ‘빅2’ 체제로 재편되는 산업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배근 교수는 “중국과의 저가 경쟁에서 가능성 없는 부분들은 정리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 사업에서 경쟁력 있는 부분을 분리한 다음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으로 통합하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우조선 사태 실마리를 풀기 위해 관치금융을 끊고 회생 작업을 투명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박상인 교수는 “차라리 법정관리에 가서 해결을 보는 게 나을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관치금융을 이제 끊어내야 한다”면서 “공적자금을 투입하더라도, 미국 GM 사례를 주목해서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 미국은 GM 회생 과정에서 정부 출자로 뉴GM을 만들고, 옛 GM의 자산과 고용을 승계했다. 민간전문가를 투입해 뉴GM 경영을 맡겨서 공적자금을 회수했다. 이런 방식이어야 공적자금 회수율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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