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 당선 위해 러시아는 세계 선거 개입 중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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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9세의 나이.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되는 과정에도 외부의 공격이 거셌다. 특히 미국 대선의 데자뷔처럼 해커들의 공격을 받은 건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 공식 선거운동 종료를 앞둔 4월6일, 마크롱 후보 측의 이메일과 회계 정보가 담긴 9GB의 자료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퍼진 시기가 꽤 절묘했다. 왜냐면 프랑스는 대선 투표 마감 44시간 전부터 선거운동과 선거에 관련된 언론 보도를 금지한다. 그러다보니 자료가 퍼져도 마크롱 측의 해명이 어려운 시점에 터진 악재였다. 

 

결과적으로 이런 악재를 딛고 마크롱은 당선인이 됐다. 해커들이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프랑스 선거보도 준칙이었다. 프랑스 선관위는 해킹된 자료에 관한 보도를 규정에 따라 금지했고, 언론들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선관위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그러다보니 역동적인 변수가 되지 못했다.  

 

프랑스와 유사한 사건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낙선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캠프 측 핵심 인물의 이메일이 유출된 일이 있었다. 미묘한 판세에서 공개된 부정적인 자료들은 표심을 흔들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 탄생에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부의 개입이 의심되자 오바마 정부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섰고 결국 해킹을 두고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한 러시아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다. 이 사건 자체가 ‘러시아 게이트’로 명명된 것을 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지목한 셈이었다. 

 

오바마 정부 측 인사들은 러시아의 개입이 계속될 거라며 주변국들에 경고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지낸 존 칼린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선거 개입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선에서 해킹 방지 노력이 부실했던 미국의 결과를 자성하며 나온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프랑스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지원을 받는 ‘APT28’이 유력한 용의자”

 

미국에 이어 프랑스 대선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것일까. “그런 것 같다”라는 게 대체적으로 나오는 얘기다. 일단 미국에서 벌어진 일과 흡사한 흐름이 그렇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 크렘린궁의 지원을 받는 ‘APT28’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보도했다. APT28은 러시아군 정보총국(GRU)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해커 단체다. 그들이 프랑스 선거에 개입한 이유는 러시아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 온 마크롱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참모총장은 2013년 발표한 논문에서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소서는 외교와 군사뿐만 아니라 ‘정보전’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친 적이 있다. 물론 과거 크렘린은 구소련 시대 때부터 정보전을 통해 서양 정치에 영향을 주려고 했지만, 이제는 SNS와 유럽 내 극우파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수단과 동료가 생겼다. SNS로는 가짜뉴스를 퍼트릴 수 있고(유럽에서는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러시아라는 의견이 많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치인을 지원하는 방법도 쓸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민주주주의 정치에 대해 가해지는 직접적인 사이버 공격이다. 

 

그동안 러시아가 개입한 해킹으로 의심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체제를 반대하는 러시아 반(反)체제 인사들은 자신의 컴퓨터를 조심해야 했다. 2015년 4월 영국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작가이자 구(舊)소련 때 12년이나 감옥 생활을 한 뒤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반(反)체제 인사인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74)가 갑자기 경찰에 검거됐다. 이유는 아동 포르노그래피 소지 때문이었다. 경찰은 “당신이 아동 포르노그래피를 갖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말하며 자택으로 밀고 들어왔고 부코프스키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런데 그의 컴퓨터 안에서는 아동 포르노그래피가 발견됐고 그는 기소됐다. 하지만 지난 해 5월 영국 검찰은 공판 연기를 요청했다. 이유는 “컴퓨터에 제3자가 접근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3자’로 지목된 쪽이 부코프스키를 제거하려는 러시아였다. 

 

러시아와 적대적인 국가의 기반 시설이 해킹으로 마비됐다는 의혹도 있다. 2015년 12월과 2016년 1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고 주민들은 한 겨울에 큰 불편을 겪었다. 당시에도 러시아의 해킹 때문이라고 의심했을 뿐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그런데 올해 1월 사이버 보안업체인 시큐리티 파트너스(ISSP)는 “2016년 발생한 정전이 해킹 때문이었으며, 재작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정전과 유사하다”고 발표하며 배후에 러시아가 있음을 시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도 러시아의 해킹으로 의심되는 자료 유출 사건이 있었다. ⓒ 사진= EPA연합

9월 독일 총선을 향한 경고들

 

물론 이런 유형보다 더 큰 사건은 타국 정부의 일에 직접 끼어드는 일일 거다. 미국 대선 개입은 워낙 큰일이니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도 비슷한 공격은 있었다. 2015년 러시아 해커 집단인 ‘팬시 베어’가 베를린 독일 연방 의회의 컴퓨터에 침입했던 일이다. 이번 마크롱 측 자료 유출 사건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연이은 의혹과 비난을 받는 러시아는 왜 이런 도발을 멈추지 않을까. 마크롱 해킹 건을 보면 미국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미국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우호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결선 투표에 오른 마린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트럼프와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예를 들어 르펜은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림반도 사람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병합되길 원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그의 발언에 화가 난 우크라이나 정부는 입국 금지를 내릴 정도였다. 

 

프랑스 대선의 결선 투표는 후보 두 명이 서로의 표를 뺏는 제로섬 게임이다. 단 두 명의 후보가 맞붙으니 한 쪽의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상대편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크롱 당선인의 타격은 르펜에게 호재인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 상황에서 르펜마저 프랑스의 지도자가 되고 미국과 유럽의 대표가 러시아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다면 대(對)러 제재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보조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제재 해제는 러시아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국익이다.

 

어쨌든 해커의 뜻대로 프랑스 대선은 흐르지 않았다. 이번 해킹 의혹에 대해서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러시아 정부를 향해 견제의 멘트를 날리는 중이다. 그들의 의혹대로라면 러시아는 공정한 경쟁 아래 선거가 이뤄져야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크게 손상시켰다. 

 

하지만 미국과 프랑스가 날리는 날 선 견제에 러시아가 움찔할 것 같진 않다. 조만간 또 한 번 국제 뉴스에 등장할지 모르겠다. 극우 세력이 급성장한 유럽의 수장국인 독일에서 올해 9월 총선이 열리기 때문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메르켈 총리가 4연임에 도전하게 되는데 메르켈 총리는 시리아 내전부터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세계적 현안에서 사사건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충돌해 왔다. 이미 독일 총선을 우려하는 주요국의 경고가 날아들고 있는 상황이다. 내용은 한결 같다. “러시아를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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