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차별도 없는 軍 다 함께 고민했다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2 11:29
  • 호수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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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성소수자 차별 방지 노력이 우리 사회에 말하는 것

 

5월16일 대한민국 육군 보통검찰부는 동성애자 A 대위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A 대위는 군 형법 제92조6에 의거해 추행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 대위는 합의하에 자택에서 타 부대 소속인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 올해 초 SNS를 통해 유포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동성 군인 간 성관계 동영상과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A 대위가 구속된 4월17일 군인권센터는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이 동영상 사건을 빌미로 군내 동성애자 장병 색출 기획수사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수사 과정이 담긴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또한 중수단이 협박과 함정수사를 통해 동성애자를 색출한 배후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지목하고, 장 총장과 중수단 수사관 4명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현재 장 총장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 등 영미권뿐 아니라 독일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진보 성향의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taz)은 “어둡고, 이미 극복된 줄로 믿었던 시대를 연상케 하는 사건”이라며 한국 사회 성소수자 문제를 자세히 다뤘다.

 

1월31일 베를린에서 열린 ‘성적(性的) 지향과 정체성’ 주제의 워크숍에서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Bundeswehr Jane Schmidt

 

독일군 동성애 차별 2000년 전환점 맞아

 

독일에서도 한때 군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동성애자는 ‘건강상 이유’로 병역 면제되거나 군에서 퇴출됐다. 동성애를 병으로 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1990년대 말까지 동성애자 장교는 직속상관 및 훈련 교관직에서 배제돼 진급 경쟁에서 밀려났다.

 

2000년을 기점으로 군 내부 동성애를 다루는 독일군의 입장이 달라졌다. 발판이 된 것은 1999년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직된 영국 군인들이 집단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하면서 유럽연합 각 회원국 군이 이를 모두 따르게 된 것이다. 독일군의 동성애자 보직 제외 규칙 또한 2000년 무효화됐다.

 

2001년 동성 파트너 등록법 시행 이후 연방군은 관련법을 개선해 동성 파트너가 있는 장병은 별거 수당, 자녀 교육 휴가 등 이성애 부부가 받는 복지 혜택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게 됐다. 2004년 9월 독일 국방부는 “성적 지향은 연방 군인이 갖는 보편적인 인격권의 일부이며 복무법의 관여를 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같은 변화에도 병영 일선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온전히 없앨 순 없었다. 이 때문에 독일 연방군 성소수자협회(AHsAB)는 차별을 겪는 성소수자 군인 및 민간인 직원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사회적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5월12일 쾰른에서 협회 대표 마르쿠스 오토 대위와 만났다. 올해 33세인 그는 지난 2003년 육군에 징집됐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사회 대체복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나라가 내게 준 만큼 돌려주고 싶어’ 병역을 선택했다. 오토 대위는 9개월간의 병역이 끝날 쯤 2년간 연장 복무를 신청했고, 이후 추가로 3년 반 장교 코스를 밟았다. 그는 “군에 복무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것은 2009년. 장교 코스 중 마지막으로 뮌헨 연방군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오토 대위는 군복무 중 연애를 한 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인식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는 “연방군이 제공하는 심리 상담을 통해 동성애자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절대비밀이 보장됐기 때문에 자신에게조차 내보일 수 없던 고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독일 연방군 성소수자협회 대표를 맡고 있는 마르쿠스 오토 대위 © Bundeswehr Jane Schmidt

 

“교묘한 차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

 

오토 대위는 연방군 소속 상담사의 권유로 AHsAB 활동을 하며 동성애자 군인으로서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처음 부대에서 커밍아웃(동성애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는 일)을 하기 전까지 그는 “공포에 시달렸다”고 회고했다. 독일에서도 커밍아웃은 여전히 많은 동성애자들이 최초로 맞닥뜨리는 벽이다.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장교 교육을 받을 때 나와 매일 같은 차로 출퇴근하던 동료도 동성애자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배제와 차별이 두려운 나머지 가까운 동료에게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오토 대위는 “폭력 행사는 사라졌지만 교묘한 형태의 차별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진급 심사에서의 불안감도 컸다. 그가 속한 협회 AHsAB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급에서 불이익을 당한 성소수자 군인들의 사례가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 한 예로 정보통신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한 장병은 커밍아웃을 한 뒤 갑자기 임무에서 제외됐다. 명목상 이유는 “그동안 과로를 했으니 쉬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군인은 특수임무 분야에 지원해 최종 단계에 올랐지만 면접장에서 성정체성을 밝힌 뒤 탈락했다. 오토 대위는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이뤄지는 차별은 증명하기 어렵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때문에 AHsAB는 단순한 피해자 지원을 넘어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모든 인력을 위한 차별방지 조언과 교육의 제도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기초 군사훈련의 필수 과정에 포함시키기 위해 군 안팎으로 동조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지난 1월31일 열린 ‘성적(性的) 지향과 정체성’ 워크숍이다. 오토 대위는 지난해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국방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 후 성소수자 처우 개선이 국방부의 군 현대화 및 경쟁력 강화 사업에 포함됐다.

 

이날 행사에는 각 군 감찰감과 독일 연방국회 국방위원 등 고위 인사 150여 명이 참여했다.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연방 군인은 어디서 왔든, 누구를 사랑하든, 무엇을 믿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현재 AHsAB는 성소수자와 상관, 군의관을 위한 연방군 가이드라인 작성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오토 대위에게 A 대위 사건을 소개하고 ‘왜 군대가 동성애자를 포용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동성애자도, 군도 모두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군은 동성애자를 포용해야 한다. 강한 군대는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중 “많은 부작용을 우려해 군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새 정권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일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동성애 인권 개선을 고민한다면 독일군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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