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때와 달라진 文, 北 도발에 강경대응 예고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2 16:47
  • 호수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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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미사일 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남북관계 시험대 올라

 

새 정부 출범으로 돌파구 마련이 기대되던 남북관계에 문재인 대통령의 ‘적 도발 응징’ 발언이 돌출변수로 떠올랐다. 취임 이후 잇단 대북 강경행보를 이어가던 문 대통령이 작정한 듯 북한을 직접 겨냥해 경고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향후 김정은 정권의 대응 수위와 추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잇단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불쾌감을 함축한 것 같은 이번 발언의 파장이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적으로 콕 집어 지목한 발언은 5월17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방문에서 나왔다. 취임 이후 첫 정부 부처 현장방문 차원에서 국방부를 찾은 문 대통령은 “우리 군은 적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이 무력도발을 감행한다면 즉각 강력히 응징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그런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누가 보더라도 분명하고 또렷한 어조로 북한 김정은 정권을 우리 대한민국의 적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런 언급은 대선 기간 보여준 행보와는 큰 차이가 난다. 대통령선거 기간 중 TV토론 등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다른 후보들이 ‘북한은 우리의 주적인가’라고 질문 공세를 펼치자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며 피해 갔다. 이 때문에 ‘안보관이 의심된다’는 의혹에 시달렸고, “당선되면 북한에 가장 먼저 가겠다”는 등의 언급과 맞물리면서 해명에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김정은 정권을 ‘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공세였다. 다행히 이 같은 논란을 두고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란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태는 가라앉았지만, 문재인 캠프 측은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이미 사흘 앞서 전조(前兆)가 있었다. 북한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호를 쏘아올린 5월14일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며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미사일 발사라는 북한의 호전적 행동이 있었다고 하지만 예상보다 강경한 발언이 직접 대통령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대북제재와 압박 국면 속에서도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이 내심 ‘대화’ 쪽에 방점을 두고 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 사진=연합뉴스

 

취임 후 첫 방문 부처가 국방부

 

문 대통령은 국방부와 합참 방문 자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다시 한 번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반하는 중대한 도발이자 한반도는 물론이고 국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도발과 핵 위협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 선언 당시의 대화록 공개 논란을 촉발시킨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피해 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서해 NLL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높은 게 오늘의 안보 현실”이라고 지적한 뒤 군 지휘관들에 대한 격려의 말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벽두부터 대북 강경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배경을 두고 현재의 긴장된 한반도 안보상황과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의 격앙된 대북 여론을 고려한 전략적 대응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국제사회를 향해 추가 핵실험 위협을 지속하고 미사일 시험발사 등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특히 지지층의 기반을 이루는 진보 성향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대선 유세와 대통령 당선 이후의 행보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입각한 행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미 국방부가 발행하는 국방백서가 북한을 적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2016년판 국방백서는 북핵과 미사일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과거 김영삼 정부 때 발간된 1995년 국방백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며 처음 주적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판부터는 주적 표현이 사라지고 ‘직접적 군사 위협’이란 구절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국방백서는 ‘적’이란 용어로 대체했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북한을 ‘적’이라고 언급하면서도 향후 북한과의 협상 돌파구 마련이나 대화 국면도 염두에 둔 모습을 보였다. 직접 ‘북한=적’이라고 언급하거나 김정은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누가 봐도 ‘적’으로 지칭하는 대상이 북한이란 점을 알 수 있게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는 것이다.

 

 

北 예상과는 다른 文 대통령 행보

 

물론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 해도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을 적으로 규정한 데 대해 불쾌한 입장일 수 있다. 깐깐한 보수 성향의 대북정책을 펼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만에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초반부터 날려버리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에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북한은 대북 제재망 구축에 적극적인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이에 동참한 중국에 대해서도 비난 공세를 퍼붓는 등 무차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대선을 거치면서 일찌감치 문재인 후보에 대해 노골적인 우호 입장을 드러냈다. 보수 성향의 후보들뿐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까지 싸잡아 비난 공세를 펼친 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최근 워싱턴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전제로 한 대화 가능성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과의 대화 국면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다. 이런 국면에서 불거진 문재인 대통령의 ‘적 응징’ 발언과 북한의 반응은 향후 남북관계를 예측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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