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명품 크루즈 타고 ‘슬로투어’ 진수 맛보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1 10: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속초에 뜬 7만5000톤급 크루즈 코스타 빅토리아호 타보니…

 

현대인은 시간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더 빨리 말하고, 더 빨리 생각하고, 더 빨리 행동하고, 더 빨리 먹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는 것도 사실은 이 같은 조급증에서 시작됐다 게 심리학자들의 지적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무심코 신문을 집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슬로(Slow)’란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빨리빨리’가 대세인 세상에서 ‘느림’이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으로 조명 받고 있는 것이다. ‘슬로푸드(Slow Food)’ ‘슬로시티(Slow City)’ ‘슬로라이프(Slow Life)’ ‘슬로무브먼트(Slow Movement)’ 등의 신조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부산·속초 모항으로 러시아-일본 취항 크루즈 첫 등장

 

여행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 관광을 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바다 위의 호텔’로 불리는 크루즈는 달랐다. 호텔 수준의 선실에 묵으며, 다양한 레저시설과 쇼를 즐기고, 여행 기간 내내 무료로 제공되는 이탈리아식 정찬 식사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슬로투어(Slow Tour)’의 매력에 빠져들 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비행기보다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값이라도 비행기 보다 크루즈 여행을 더 쳐주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다양한 여행 코스가 현재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크루즈 여행이 생소하다.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모항이 있는 유럽으로 건너가야 한다. 크루즈 승선요금 외에 고가의 항공료까지 추가로 지출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최근 국내에도 정기 크루즈 노선이 들어오면서 가격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속초항에 입항한 7만5000톤급 크루즈 코스타 빅토리아호가 그 주인공이다. 코스타 빅토리아는 유럽 최대 선사로, 이탈리아 국적인 코스타가 보유한 15개 선박 중 하나다. 전장 253m, 전폭 32m 규모의 중·대형으로 탑승 선원만 720명에 달한다. 승객까지 포함하면 모두 2400여 명이 이 배를 타고 여행할 수 있다.

 


 

‘바다 위 호텔’ 불리는 만큼 즐길거리·볼거리 풍성 

 

5월부터 속초·부산항을 모항으로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가나자와(일본)-사카이미나토(일본) 노선을 오가고 있다. 크루즈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기항지에 도착하는 식으로 일정이 진행된다. 승객들이 기항지에서 내려 현지 관광을 즐기고 돌아오면 배는 다시 다음 기항지로 출발하는 식이다. 어찌 보면 단조로울 수 있는 여행이다.   

 

하지만 막상 배에 올라보면 생각이 바뀌게 된다. 코스타 빅토리아에 타면 우선 이탈리아 특유의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만난 알프레오 로미오(Alfreao Romeo) 선장은 “11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운용되는 크루즈 내의 모든 시설이나 음식은 정통 이탈리아식으로 이뤄져 있다. 코스타 빅토리아호에서 이탈리아의 라이프 스타일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 내에는 실내·외 수영장과 스파, 테니스장, 피트니스, 극장, 심지어 카지노와 면세점까지 갖춰져 있다. 극장에서는 매일 저녁 8시 판타스틱한 쇼가 펼쳐진다. 사포리 디 이탈리아, 버라이어티쇼, 트리뷰트 투 마이클잭슨 등 이탈리아식의 다양한 공연이 진행된다. 야외 수영장에는 인공 파도 풀장과 자쿠지 시설이 설치돼 있고, 농구장과 테니스장, 탁구장 등도 이용할 수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크루즈를 두고 ‘바다위의 호텔’이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크루즈 여행이 모두 느린 것만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비행기 여행의 입출국 절차는 매우 길고 지루하다. 길게 선 줄을 따라 티켓팅을 하고, 입출국 절차를 밟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짐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대기해야 한다. 크루즈의 경우 10분 안에 모든 입출국 절차를 마칠 수 있다. 가지고 온 짐도 선실로 배달되기 때문에 승객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비행기와 달리 입출국 절차 간단 매력  

 

러시아나 일본 기항지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권 사본만으로 입출국 절차가 진행되는 게 크루즈 여행 만의 특징이다. 이병선 속초시장이 중간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현지에서 만난 속초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시장은 코스타 빅토리아를 속초에 유치한 장본인이다. 이 시장은 그 동안 크루즈 이용객의들의 입·출국 간소화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여러 차례 일본에 건너가 기항지 지자체장들과 담판을 벌인 결과 이런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5월14일부터 5박 일정으로 기자가 크루즈에 올랐을 때도 이 시장은 기항지 지자체와의 협력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그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만큼 크루즈는 강원도뿐 아니라 속초시 관광 사업에도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출국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여러 차례 일본 등 지자체장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