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 ‘시급 1만원’은 화산 폭발의 충격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9 10:23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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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시사미식]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원 시대가 되면 식당들 줄줄이 폐점” 우려

 

얼마 전 중요한 모임이 있었다. 여러 분야의 관계자들과 대한민국 자영업 살리기 프로젝트 논의차 모인 자리다 보니 별의별 아이디어가 다 등장했다. 식당에서 자연스레 시간이 길어졌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어가자 주인아주머니가 오시더니 마감해야 한단다. 반취 상태의 중년들이 콧소리를 섞어가며 애원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요새 사람 구할 수가 없어서요. 거기다 또 시급 올려줘야 한다잖아요.”

 

자의반 타의반 가게를 나선 우리는 24시간 영업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안주는 ‘문재인 정부와 시급’이었다. 대통령을 삼촌처럼 여기는 반절과 생각이 많이 다른 반절은 무려 2시간 가까운 취중진담을 이어갔지만 결론은 없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늦잠을 포기했다. 주인공은 수원에서 배달업을 하는 젊은 총각. 필자 강의를 예닐곱 차례 들은 양반이라 통화를 거절할 수 없었다. “선생님, 시급 1만원이면 다 죽는 거 아닌가요. 혹시 장점도 있나요?”

 

두통에 메슥거림에 편치 않은 속이지만, 막내 동생 대하듯 관계를 맺어온 터라 냉수 한 컵 들이켜고 설명을 시작했다. 정답은 없다. 물론 소규모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플 거다. 남들은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환호하는데 나만 발목이 묶이는가 싶으니 더더욱 분통이 터질 것이다. “시급이 늘어난 만큼 소비로 이어질 테고, 아무리 절약하고 아낀다고 해도 결국 시급은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 그 돈을 소비하려는 소비 주체들이 당신의 가게로 찾아올 테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한 시간 가까이 이 소리를 수화기 너머에 토스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일할 사람이 없어 비명 지르는 외식업계

 

머리가 띵하다. 바람도 쐬고 해장도 할 겸 곰탕집을 찾았다. 토요일 오전 오피스타운은 공동묘지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식당에서 주 5일제를 시행하기도 어렵고. 아주머니 한 분이 주방에서 나온다. “뭐 드시게요?” 규모가 좀 돼 보이는 식당인데도 혼자 영업을 하시는 모양이다. “국밥 한 그릇 주세요.” 필자 뒤를 쫓듯 두어 명의 건장한 청년들 역시 벌건 토끼눈으로 들어와 국밥을 주문한다. 호닥호닥 정신이 없다. 인간은 본인이 보고 싶은 거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거만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메뉴판 옆에 붙은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직원모집’ 조건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지원자가 거의 없는 모양이다. “저거 붙인 지 한 달 넘었어요. 아예 전화 한 통 오지 않아요.” “혹시 식당에 붙이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여기저기 광고를 냈는데도 연락이 없기에 가게에도 붙인 거예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식업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라 전체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인데 일할 사람이 없어 비명을 지르는 곳이 바로 외식업계다. 자리 보존을 위해 최저시급을 포기하고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분들의 부당한 일화가 공분을 사는 세상에 최저시급보다 많이 제시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동동거리는 곳이 바로 외식업계란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갈빗집·횟집처럼 노동 강도가 높고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만져가며 지저분한 테이블을 치워야 하는 식당보다는 ‘스타××’나 ‘CG○’ 같은 곳으로만 사람이 몰린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에서 알바를 하면 4대 보험의 본인 분담금 공제를 당연시하면서도 개인 업장에 와서는 세금을 왜 떼느냐고 항의하는 게 부지기수다. 이미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하루하루 고생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시급 1만원은 화산 폭발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제조업, 이사 업체마저 외국인 노동자가 채운 지 오래지만, 손님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외식업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고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무보수 가족 종사자들의 12시간 넘는 초고강도 노동으로 이어가면서도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벌이가 전부인 곳이 부지기수란 말이다.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건 1988년의 일이다. 1950년대 초,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시행하는 데까지 무려 30년이 넘게 걸렸다. 최저임금제도의 목적은 국가가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마지노선을 정하고, 그 이상을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규제하는 거다. 부의 균형을 이루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본철학이 배경이 된다. 덕분에 이 땅의 근로자들은 매년 크지는 않지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한데 아무리 좋은 제도도 피해자가 발생하면 그 의미가 희석되기 마련이다. 특히 본격적 불황에 들어선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근로자도 살아야 하지만, 소규모 자영업자도 살아야 한다. 임대료·식재료원가·인건비·제세공과금이 다 상승하는 상황에서 그 누가 자영업에 뛰어들겠냐 말이다.

 

대기업이 주는 시급과 연간 매출 1억원이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자영업자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확연히 다르다. 일정 정도 이하의 자산 규모나 매출을 올리는 업장에는 차별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 그럼 누가 적게 주는 곳에서 일을 하겠냐고? 일리 있는 소리다. 그래도 그나마 약자를 보호하는 건 이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적용 시기도, 그리고 최저시급도 차등을 두면 좋겠다. 어차피 현재도 최저시급은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오너의 재량에 맡기고 있으니 무조건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조금만 유예를 두자는 생각이다. 만약 외식업 오너 중에 국회의원이라도 한 명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선거공약과 전략을 짤 때 이런 심각한 상황이 조금만 보고되었더라도 시급 1만원에 대한 규정이 좀 더 세분화되지 않았을까? 물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 하지만 강기갑 전 의원처럼 이단옆차기를 해서라도 자영업자들의 방패 하나쯤은 만들어주고 진행하지 않았을까?

 

표현이 좀 거칠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심각하다. 국민이 도산을 하면 정부도 별 방도가 없다. 임대료와 인건비는 하염없이 오르는데 그나마 비용과 시간을 좀 줄일 수 있는 일회용품마저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돼지도 위하고, 소도 위하면서 왜 자영업자는 위하지 않는 걸까? 자영업자들에 의해 버려지는 일회용품들과 대기업에서 네이팜탄처럼 쏟아내는 일회용품 중 어느 쪽이 더 환경을 해칠까? 그렇지 않아도 새 정부에 태클을 거는 이들이 많아 복잡할 시기에 죄송하고 송구스럽다. 하지만 꼭 한 번 생각해 보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2020년까지 시급 1만원 시대가 되면 폐점을 하고 말 자영업자들도 무진장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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