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노출도, 김수현의 눈물도 다 소용없었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3 11:16
  • 호수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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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괴작’ ‘역대급 망작’ 악평 쏟아지는 영화 《리얼》

 

영화 《리얼》이 6월28일 쟁쟁한 화제작 《박열》 《옥자》 등을 제치고 한때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초기 화제는 주연배우 김수현의 몫이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 2013~14)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를 통해 브랜드 파워를 입증한 컴백작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봉 직전 화제는 단연 설리가 이끌었다. SNS에 올린 장어 사진과 글 논란으로 또 여론의 도마에 오른 ‘이슈 메이커’ 설리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가 예고된 탓이다. 이렇듯 《리얼》을 향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다양한 각도에서 쏟아졌다. 일각에선 ‘노이즈 마케팅’이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 《리얼》은 혹평에 휘청이고 있는 모양새다. 작품 안팎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어느 하나 긍정적인 것은 없다.

 

배우 김수현의 열연에도 혹평을 받고 있는 영화 《리얼》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하기 힘든 흐름

 

그간 《리얼》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둘러싼 두 남자의 비밀과 음모를 그린 액션 느와르’라는 홍보 문구에 수렴되었다. 사실 이게 전부이기도 하지만, 더욱 정확하게는 이 홍보 문구가 최선으로 잘 정리된 문장에 가깝다. 영화는 해리성 장애를 앓는 장태영(김수현)이 치료를 위해 신경정신과 최진기 박사(이성민)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태영은 카지노 시에스타를 오픈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그의 또 다른 자아는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를 취재하는 르포 작가다. ‘사업가’ 장태영은 ‘작가’인 자아를 없애고 싶어 한다. 어느 날 암흑가 대부 조원근(성동일)이 시에스타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타나고, 장태영은 자금 유통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때 장태영 앞에 의문의 한 투자자가 나타난다. 이름뿐 아니라 생김새까지 장태영과 같은 남자(김수현)다. 그는 자금 유통은 물론 조원근까지 해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건넨다.

 

폭력 세계와 도박·마약·섹스 등 온갖 자극적인 소재가 범람하는 가운데 《리얼》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파악하기 힘든 불분명한 흐름으로 내달린다. 주인공의 존재론적 고민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심도 있게 파고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사라는 구성 요소를 아예 잊은 듯 펼쳐지는 화려한 촬영과 미장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슈퍼히어로 액션과 현대 무용을 뒤섞은 듯한 후반부 액션신에 이르면 내내 터져나오던 한숨이 실소로 뒤바뀐다. 목적 없는 배우의 열연은 공허하기만 하다.

 

‘SNS 기행’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설리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베드신을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그는 최진리라는 본명까지 내세우며 연기를 위한 열의를 보였지만, 영화의 만듦새를 보면 아깝기만 한 열정이다. 설리를 포함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섹스를 위한 도구 혹은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다. 젠더 감수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묘사에서 받는 감흥은 불쾌함, 그 이상이다. 이것이 과연 2017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맞는가. 수지·아이유·다솜 등 초호화 카메오들이 등장했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이후에 다시 한 번 찾아오는 충격이다.

 

개봉 이틀 전 언론시사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리얼》은 부정적인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투자 배급사 CJ가 ‘배급 대행’이라는 역할만을 강조한 채 뒤로 빠지면서, 작품의 완성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입소문이 이미 돌았던 터다. 제작 중간에 감독이 교체되면서 한 차례 홍역을 겪기도 했다. 애초 《리얼》의 연출가로 알려졌던 이정섭 감독은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고, 현재는 이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제작사 대표인 이사랑이 감독으로 되어 있다. 이사랑 감독은 김수현의 이종사촌으로 알려졌다.

 

영화 《리얼》에 출연한 설리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영화 흥행 잔혹사 이을까

 

영화가 공개되자 흉흉한 소문들은 사실이 됐다.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익숙한 장르에서 벗어나 애매한 리듬감으로 줄타기하면서 신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요원한 바람으로 보인다. “나의 20대를 장식하는 대표작이 되길 바란다”는 김수현의 바람 또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리얼》은 지금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하는 작품 중에 뼈아픈 오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쏟아지는 언론의 혹평 때문인지 김수현은 VIP 시사회를 찾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하던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수현의 팬덤과 설리의 노이즈 마케팅을 등에 업은 《리얼》이 뜻밖의 관객몰이를 기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것 또한 기록할 만한 일대 사건일 것이다. 중국에서의 수입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제작 초기 단계에 한·중 동시개봉을 목표로 했던 것에 반해 지금은 사드 여파로 인해 중국 개봉을 당장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 《리얼》에는 흥행의 영광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을 필두로 한 한국영화 흥행 실패 잔혹사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워 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와 《리얼》은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는 공통 구성을 가진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알리며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문제는 콘텐츠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오우삼 감독의 영화까지 거침없이 베끼며 공감하기 힘든 유머를 구사한 이 영화는 의도를 짐작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망작이었다. 결국 영화의 제작비는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폭주는 전국 관객 14만 명 정도라는 수치 앞에서 막을 내려야 했다. 손익분기점 400만 명이라는 목표치가 민망할 정도의 성적이었다. 이후 《아유레디?》(2002), 《튜브》(2003), 《내츄럴 시티》(2003), 《청풍명월》(2003)까지 80억~100억원대의 제작비가 무색하게 흥행에 참패한 영화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버블 광풍은 값비싼 실패들을 껴안은 채 가라앉았다. 그나마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황당무계한 전개 안에서 이것이 ‘성소 게임’이라는 게임의 과정임을 명확히 하기라도 했다. 《리얼》은 그와는 또 다르다.

 

내용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자본’이 다르다. 《리얼》은 중국 투자사 알리바바픽처스가 투자와 공동제작을 담당했으며, 지난 4월 개장한 동북아 최초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가 촬영을 지원하는 등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받은 영화다. 《별에서 온 그대》의 중국발 열풍에 힘입어 스타덤에 오른 김수현에 의한 성과였다. 김수현의 이름값 하나를 믿고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프로젝트는 스타에 기댄 콘텐츠 제작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중국과 미국 등 다국적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충무로의 투자 패러다임 안에서 한국영화는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 것인가. 심도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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