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상 문제없다”던 우정사업본부, 1년 만에 박정희 우표 발행 취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3 13:56
  • 호수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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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뮤지컬 이어 우표도 발행 취소…시민단체와 구미시 반응 극명히 엇갈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우표 발행이 결국 취소됐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예정대로 올해 9월 발행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던 우정사업본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이미 결정된 우표 발행 사업을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4월 구미시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60만장의 제작을 요청받았다. 우정사업본부는 5월 우표발행심의위를 열어 발행을 결정했는데, 당시 심의위원 17명 중 9명이 참석해 9명 전원이 발행 찬성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우표 사업 심의 과정에서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비판과 함께 전직 대통령의 탄생일을 기념한 우표가 발행된 전례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72년에 발행된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기념 우표와 1976년 발행된 새마을운동 특별 우표, 1980년 발행된 박 전 대통령 추모 우표.

 

우정사업본부 “심의위원 만장일치 결정된 만큼 문제 없다”

 

시민단체의 비판도 거셌다. 구미참여연대와 구미YMCA, 민주노총 구미지부, 전교조 구미지회 등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정치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의 경우 기념우표를 발행할 수 없다는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 세칙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박 전 대통령을 기념우표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우정사업본부는 심의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관련 규정 미비로 인해 우표발행을 취소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 시행 세칙상의 규정을 이용해 국회나 시민사회가 재심의를 요청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의에도 “동 세칙은 다음해 우표발행 심의대상에 대한 규정으로 이미 의결된 사항에 대한 재심의 근거규정으로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던 우정사업본부가 돌연 “우표 발행 취소와 재심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며 6월29일 임시회를 열고 7월12일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에 대해 재심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사업에 대한 여론 악화 뿐 아니라, 최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 심의회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재점화 된 것도 작용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정사업본부는 근거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세칙’ 제17조 2항 2호에 근거 재검토에 나섰다.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세칙에 따르면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우표발행과 보급에 우정사업본부장의 자문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우표발행심의위원회에 우표발행의 재심의가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자문안건을 올렸고, 임시회를 통해 재심의를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7월12일 재심의에서 ‘박정희 우표’ 발행 취소가 결정됐다. 심의위원 총 17명 중 12명이 참석했고, 발행 철회 8명, 발행추진 3명, 기권 1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발행 계획을 결정했던 지난해 5월과 현재 당연직 공무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은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률이 다르기 때문에 심의에 참석한 심의위원의 구성이 얼마나 동일한지는 비공개 사안이라 확인되지 않지만, 12명 가운데 8명이나 기존 발행 찬성에서 발행 철회 의견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1년 만에 입장을 바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 취소된 것은 지난해 7월 제작이 철회된 ‘박정희 뮤지컬’에 이어 두 번째다. 당초 구미시는 28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박정희 뮤지컬’을 기획했다. 그러나 구미 지역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결국 취소를 결정했다. 또 제작을 결정하기 전에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점이 지적되면서 구미시의 ‘불통 행정’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우정사업본부의 기념우표 제작 철회 결정에 대해 구미시와 시민단체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표 발행을 요청한 구미시는 우정사업본부의 취소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남유진 경북 구미시장은 “우정사업본부 심의위원회 결정은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대한민국 행정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고 밝혔다. 남 시장은 7월12일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박정희 우표’ 발행을 촉구하는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7월12일 세종시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촉구하는 남유진 구미시장(왼쪽)의 1인 시위와 이를 반대하는 구미참여연대 회원의 1인 시위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남유진 구미시장 “정치적 이유로 1년 만에 입장 바뀌었다”

 

또 남 시장은 “1년 동안 사정이 바뀐 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이유 말고는 없다고 본다”며 “1년 전 우표 발행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구미시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줄서기가 아니겠냐”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다. 남 시장은 현재 지역 단체등과 연계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반면 구미지역 시민단체는 제작 철회 결정을 반겼다. 7월13일 구미참여연대․구미YMCA 등 6개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시민의 동의 없이, 국민적 합의 없이 진행된 이번 사업의 취소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민들의 동의 없이 박 전 대통령 탄생 100년 사업을 추진하고 우표 발행을 고집하며 1인 시위까지 나선 남유진 시장의 사과를 요구한다. 구미를 수구꼴통의 도시로 낙인찍히게 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구미시가 올해 추진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의 취소를 다시 한 번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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