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 드리워진 인천아시안게임의 그림자
  • 손구민 인턴기자 (koominsohn@gmail.com)
  • 승인 2017.08.17 13:53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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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 꺼진 뒤, 빚의 늪에 빠졌다

 

평창동계올림픽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8월9일, 인천아시안게임 개·폐막식이 열렸던 아시아드 주경기장 앞을 찾았다. 한때 아시아 스포츠인의 열기로 가득했던 이곳에는 썰렁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연달아 터지는 폭죽, 현란한 레이저빔, 각종 문화공연 등 화려한 개막식이 펼쳐졌던 곳이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새로 지은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대지 면적 62만㎡로,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약 3배 크기로 지어졌다. 총사업비 4722억원을 들인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시설 중 하나다.

 

아시안게임의 화려한 조명이 꺼진 주경기장에는 롯데시네마가 입점해 있었다. 저녁 시간대였지만 인적이 드물었다. 오후 8시 ‘프라임 타임’에도 상영관 1관부터 6관까지 20~30개 좌석 정도만 찼다. 영화관 관계자는 “주말에 종종 상영관이 매진되기도 하지만 손님이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경기장 인근 워터파크도 마찬가지였다. 워터파크 관리자는 “손님이 없어 시설 유지비와 운영비 마련이 버겁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장 내 웨딩홀 운영실은 문이 잠겨 관계자를 아예 만날 수 없었다. 초대형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날 기자가 경기장 인근에서 본 시민은 20여 명이 전부였다.

 

4700억원을 들여 지은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 8월9일 경기장을 찾았을 때 산책하는 시민 20여 명이 전부였다.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 시사저널 손구민

 

국제행사 앞세운 돈 잔치, 빚으로 돌아오다

 

주경기장으로 가는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걸어서 25분 거리다. 근처 버스정류장에는 2~3대의 버스가 다닐 뿐이다.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4700억원짜리 ‘하얀 코끼리(거액을 잡아먹는 쓸모없는 대형 스포츠시설)’가 돼버렸다.

 

인천시는 2007년부터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비롯해 무려 16곳의 경기장을 새로 지었다. 인천시는 신설 경기장 건설사업에 총 1조2523억원을 썼다. 당시 전문가들은 신설 경기장이 인천시 재정에 끼칠 부담을 우려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년 5월 “인천 및 수도권의 기존 경기장을 개보수해 활용하면 약 2600억원의 비용만 소요돼 약 1조50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체 가능 경기장으로 정부가 제시한 후보는 성남종합운동장, 김포공설운동장, 서울럭비경기장 등 인천 외 지역의 경기장들이 다수 포함됐다. 당시 인천시가 개발 욕심과 지역이기주의로 정부의 조언을 무시하고 무리한 건설사업을 강행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정부는 특히 인천시 문학경기장을 개보수해 주경기장을 신설하지 않도록 권고한 바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16곳의 신설 경기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약 100억원 적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시는 아시아드 주경기장 외 모든 경기장의 적자 운영을 처음부터 예상했다. 주경기장의 수익 극대화로 여타 경기장 적자를 보전하겠다는 것이 인천시의 원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천시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시설관리공단이 신설 경기장 관리·운영을 전부 도맡아 수지를 맞추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취재 중 만난 남동경기장과 선학경기장 운영실 관계자들도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통한 적자 보전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신 인천시는 신설 경기장 16곳 중 2곳을 우선 민간자본으로 돌리는 등 운영비 절감에 급급하다.

 

시설 운영 적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천시가 아시안게임과 관련해 발행한 지방채는 1조970억원 정도다. 인천시청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인천시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원리금을 평균 870억원씩 상환해 왔다. 올해 예정된 상환액은 917억원”이라며 “앞으로 인천시는 2029년까지 9792억원을 더 갚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말 기준 인천시 채무 잔고는 약 2조3000억원이다. 인천시청 재정관리담당관실에 따르면, 채무 잔고 중 아시안게임 때 발행한 지방채가 무려 37%에 달한다. 적자만 내는 ‘하얀 코끼리’들을 만드는 데 지방채를 남발한 것이다. 이는 인천시 전체 예산의 9%로, 인천시 재정에 앞으로도 계속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말뿐인 사후활용 계획…“적자 벗어날 길 없어”

 

국제스포츠대회가 개최될 때마다 스포츠시설 사후활용 논란은 제기돼 왔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할 때도 지역별로 연고지 프로축구팀이 없어 신설 축구경기장 사후활용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지금도 대전월드컵경기장, 광주월드컵경기장 등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연고 프로축구팀 유치, 경기장 내 쇼핑몰 운영 등 월드컵 개최 이전부터 준비한 경기장 사후활용 계획은 번번이 실패했다.

 

인천시도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전부터 신설 경기장 사후활용 계획을 준비했다. 인천시시설관리공단이 2012년 내놓은 ‘2014인천아시안게임경기장 사후활용 계획’ 자료를 보면, 인천시는 신설 경기장을 수익형, 준수익형, 공익형으로 분리해 유형별로 사후사업 추진방안을 마련했다. 준수익형으로 분류된 남동경기장의 사후활용 계획은 컨벤션사업센터 유치, 경기장 대관 등을 통해 수익을 증대하고, 주민 친화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했다.

 

계획대로 잘 진행됐을까. 3년이 지난 시점에 체육관에는 기업 행사를 준비하는 기업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남동경기장 운영실 관계자는 “시설이 너무 커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애초에 수익시설로 지은 것이 아니라서 돈이 되는 사업을 유치할 수 없고 대관이나 임대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장 내부는 여전히 텅 빈 사무실이 대부분이고, 복도는 불이 다 꺼져 있었다. 운영실 관계자는 “사후활용 계획을 통해 흑자 전환을 꾀했지만 여전히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공익형 경기장도 마찬가지다. 공익형으로 분류된 선학경기장은 ‘문화공원 조성, 가족 나들이에 최적화된 경기장’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선학경기장 앞은 잡초만 무성했다. 불 꺼진 복도를 지나 체육관에 들어가 보니, 10여 명의 시민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선학경기장 운영실 관계자 역시 “시설 규모가 크지만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생활체육 프로그램만으로는 운영·관리비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개막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사후활용 계획은 여전히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내놓은 사후활용 계획 자료는 A4 용지 한 장에 그친다. 1000억원 넘게 들여 새로 지은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 대한 사후 활용 계획은 다목적 문화체육시설, 수영장 등 시민체육시설로 활용하겠다는 내용뿐이다.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와 크로스컨트리센터, 바이애슬론센터는 강원도개발공사가 맡아 훈련시설, 여가활동 시설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전부다. 사실상 골프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인근에 이미 골프장이 들어서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별도의 활용 계획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인구 4000명뿐인 횡계리에 지어지는 4만 명 규모의 올림픽 개·폐회식장은 차후 올림픽 기념관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올림픽 시설 12곳 중 3곳(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 정선 알파인 경기장, 강릉 하키센터)은 아예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다.

 

1064억원을 투입해 신축한 강릉 하키센터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활용 계획이 전혀 없다. ©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제공

 

평창도 ‘운영 부담 떠넘기기’ 급급

 

조직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후활용 계획은 강원도청 측이 마련 중”이라며 사후활용 계획 자료는 A4용지 한 장이 전부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원도청 관계자는 “구체적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구체적 사후활용 계획이 언제 확정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후관리 계획이 아예 없는 3곳에 대해선 “국가 차원에서 시설을 관리하도록 추진 중이지만 정부가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 건설에 든 총비용만 8800억원에 달한다. 사후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조직위와 강원도청, 정부는 올림픽 경기장 사후관리 책임을 여전히 서로 떠넘기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8월7일 경기장 사후활용 계획에 관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외국 사례 등을 연구해 운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시설을 운영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 실질적 해법이 제시될 때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운영 적자를 정부가 부담할지, 강원도가 떠안을지 공을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경기장 사후활용 계획은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사회간접자본까지 고려해 철저히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장 건설비용보다 사회간접자본 규모가 더 크다. KTX와 영동고속도로 등 접근도로 건설에 9조4548억원, 기타 지원시설에 1조1109억원이 소요됐다. 조직위는 접근성이 좋아진 점에 기대를 걸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원도를 ‘아시아 동계스포츠 허브’로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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