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마법·일감몰아주기로 총수 지배력 높인 한국타이어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5 14:56
  • 호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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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26) 한국타이어그룹] ‘조양래 회장式’ 경영 훈련은 당분간 계속

 

국내 타이어 시장 부동의 1위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한국타이어월드)는 올해부터 3세 경영 승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월드 회장은 2013년부터 두 아들에게 계열사 경영을 맡겨온 데 이어,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 업무를 맡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 대표이사(사장)와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 경영기획본부장(사장)은 각각 한국타이어 마케팅본부장과 경영운영본부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인사에서 두 사람은 겸직을 떼고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 쪽 업무에만 집중하게 됐다. 조현식·조현범 사장이 모두 지주사 경영 업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경영 승계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효성그룹과 한 핏줄을 이루고 있는 회사다.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가 1984년 차남인 조양래 회장에게 ‘한국타이어제조’를 물려주면서 2세 경영이 이뤄졌다. 조 회장은 1999년 2월 ‘한국타이어’로 상호를 변경했고, 2012년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이와 동시에 타이어 사업 부문을 분할해 한국타이어를 신설했다. 또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를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했다.

 

서울 강남구 한국타이어 본사.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왼쪽)와 조현범 경영기획본부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두 형제 지주사 지분율 차이 없어

 

3세 승계에 대한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아직 후계 구도는 명확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의 공동 대표이사이자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조현식 사장이 후계자 경쟁에서 앞선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차남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 사장으로 등재돼 있지만, 한국타이어월드 등기임원으로는 등재돼 있지 않다.

 

장남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효성과 달리, 조 회장은 두 아들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경영권에 대한 동기부여를 심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두 형제의 역할이 경영 전면으로 떠오른 것은 2012년 9월 한국타이어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체계로 분할되면서인데, 조양래 회장은 이때부터 장남과 차남의 역할을 분담시켰다. 조현식 사장이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를 맡아 인수·합병을 통한 신사업을 발굴했고, 조현범 사장은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를 맡아 타이어 사업에 집중했다.

 

조현식 사장은 2012년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의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조현범 사장 역시 같은 해 한국타이어 경영기획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분할 이후 두 형제 모두 경영에 전반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갖게 됐다. 한국타이어의 지주사 체제 전환이 3세들의 경영능력 검증의 첫 발판이 된 셈이다. 그러다 2015년 7월, 조 회장은 형제에게 전문영역을 서로 바꾸는, 이른바 ‘교차 경영’을 지시했다. 조현식 사장이 동생의 주력 회사인 한국타이어의 마케팅본부장을, 조현범 사장은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의 경영기획본부장을 겸하도록 한 것이다. 두 형제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역할 분담을 잘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음에도 교차 경영을 주문한 것은 후계 구도를 본격화하기 위해 각자의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의 두 형제 지분은 거의 차이가 없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한국타이어월드의 대주주는 23.59%를 소유한 조 회장이다. 조현식 사장의 지분은 19.32%, 조현범 사장의 지분은 19.31%로 거의 동일한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조 회장의 지분을 누가 상속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배가 갈리게 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타이어가 회사를 분할하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것이 오너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타이어가 인적분할된 후 지주사의 지배구조를 갖추면서 조 회장 일가의 지분은 늘어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 때 기존 회사 주주들이 분할된 회사의 신주를 원래 지분만큼 배정받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 분할 전에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면 분할 뒤 그만큼 총수 일가가 지배할 수 있는 지분이 늘어나게 되고, 총수 입장에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조 회장 일가는 인적분할 이전인 2012년 6월 한국타이어의 36.23% 지분을 갖고 있었으나 같은 해 9월 40.83%로 늘었고, 올해 6월말 기준으로 42.57%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타이어월드의 지분 25.16%도 포함돼 있다.

 

한국타이어월드 지분도 마찬가지로 늘어났다. 2012년 9월 36.23%였던 조 회장 일가의 지분 비율은 73.92%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타이어의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설립 등의 과정이 결과적으로 오너 일가의 재산 축적에 커다란 기여를 한 반면 상대적으로 소액주주들에게는 불이익을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 분할 때 자사주를 의결권 확대에 쓸 수 없도록 한 법안들이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 의해 제출돼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8월26일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등을 막기 위해 ‘자사주의 마법’을 차단하는 대책을 국회와 협의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시사저널 미술팀

 

오너家, 계열사 신양관광개발 100% 지분 보유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해서도 한국타이어월드는 자유롭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의 내부거래·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규제 대상을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서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으로 변경했다. 개정안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되면서 2017년 4월 기준으로 자산 9조4000억원을 보유한 한국타이어월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

 

한국타이어 계열사인 신양관광개발, 엠프론티어, 엠케이테크놀로지는 내부거래 비중이 매우 높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양관광개발이다. 신양관광개발은 건물 및 시설관리 용역과 부동산임대업 등을 하는 회사로, 한국타이어와 한국타이어월드의 건물관리와 임대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한국타이어월드의 지분 0.03%를 가지고 있는 작은 회사지만, 조 회장 자녀들이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조현식 사장이 44.12%, 조현범 사장이 32.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도 조 회장의 두 딸인 조희원씨와 조희경씨가 가지고 있다. 신양관광개발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출의 100%를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다.

 

시스템 관리를 담당하는 SI 계열사인 엠프론티어의 내부거래 비중은 81.8%다. 엠프론티어의 지분 60%는 조 회장 자녀들이 가지고 있고, 나머지 40%는 한국타이어월드가 보유하고 있다. 엠케이테크놀로지의 내부거래 비중은 98.6%에 이른다. 지난해 573억원 중 565억원의 매출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엠케이테크놀로지의 지분은 한국타이어가 50.1%, 조현범 사장과 조현식 사장이 49.9%를 갖고 있다.

 

이렇게 내부거래 의존도가 높은 계열사 지분을 후계자들이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계열사들의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후계자들의 승계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배당을 통한 이익 몰아주기가 가능한 데다, 향후 상장 및 합병을 통해 지분 승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총수 일가가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거나 지배구조를 조정해 정부의 재벌 개혁 기조에 맞춰나갈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타이어월드 이끄는 두 아들들

차남 조현범 사장, 이명박 前 대통령 사위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은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둘째 아들이다. 조양래 회장은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장의 딸 홍문자씨와 혼인해 2남2녀를 뒀다. 미국 페어리디킨슨대(FDU) 수학과 교수로 활동하는 장녀 조희경씨는 노재원 전 중국대사의 아들인 노정호 연세대 법대 교수와 결혼했다. 장녀 희경씨와 차녀 희원씨는 지주사와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 뿐 경영 전반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 시사저널 미술팀

장남 조현식 사장은 미국 힐스쿨 포츠타운고등학교와 시러큐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쓰비시상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1997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고, 2010년 한국타이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2년 뒤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2015년에는 한국타이어 마케팅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룹 경영 전반을 경험했다. 조현범 사장은 미국 드와이트잉글우드 고등학교와 미국 보스턴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형보다 1년 늦은 1998년에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광고홍보팀장과 마케팅본부장을 거쳐 2005년부터 경영기획본부장을 지냈다. 2012년 사장으로 승진했고, 2015년부터는 조 회장의 지시로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 경영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인 수연씨와 결혼했다. 조 사장은 2007년 이 전 대통령이 대권주자로 부각되던 당시, 장모인 김윤옥 여사에게 1000만원이 넘는 가방을 선물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에는 일명 ‘사위 게이트’로 논란이 됐다. 한국타이어 자회사 아트라스BX의 주식을 팔아 50억원을 마련한 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앤디코프와 코디너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조 사장은 이듬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조현범 사장은 이 전 대통령 임기 동안 대외활동을 자제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부터는 신사업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두 형제 사이는 돈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현식 사장은 지난해 3월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경영권을 나누거나 할 계획은 현재로는 전혀 없다. 둘이 힘을 합쳐도 모자란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둘이 함께 힘을 합치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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