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여전한 영화의 바다, 그래도 영화제는 계속된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7 17:00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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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전 세계 75개국 총 298편의 영화 상영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린다. 스물두 번째로 10월12일부터 21일까지다. 해마다 아슬아슬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김동호 이사장(조직위원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등 ‘투톱’은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 뒤 고수해 왔다. 2014년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직후부터 부산시와 갈등, 각종 외압 및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BIFF는 안팎으로 여전히 부침이 심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그나마 다행히 올해 영화제는 관객을 만나기 위해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다.

 

올해 BIFF에서 감지되는 큰 변화 중 하나는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기간 프랑스 현지에서 갑작스레 작고한 고(故)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를 기리는 작업들이다. 우선 아시아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가 생전에 의욕적으로 준비하던 아시아 독립영화인 네트워크 ‘플랫폼부산’이 론칭한다. 그의 염원 중 하나였던 프로그램으로, 그간 아시아 영화 허브를 자처해 온 BIFF에서 아시아 독립영화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공동 성장을 모색하도록 돕는다. 그의 이름을 딴 상도 생겼다. 올해부터 ‘지석상’이 신설돼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 월드프리미어 영화 중 두 편에 수여된다.

 

9월11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왼쪽)과 김동호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재차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무국 직원들, 김동호·강수연 ‘불신임’

 

하지만 이 평화로운 애도 분위기와는 달리 영화제를 둘러싼 안팎의 갈등은 아직 여전하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9월11일 부산과 서울에서 각각 열린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김 이사장은 임기가 아직 4년 남았지만 “지난해 정관을 개정하고 영화제를 치렀으면 일차적인 제 역할은 끝났으며, 더는 영화제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내년 2월까지 임기인 강 위원장은 “취임 이후 해결되지 않는 숙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올해 영화제 폐막을 끝으로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영화제는 치러야 한다는 믿음으로 준비했다”며 영화인과 관객 참여를 당부했다. 후임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이사회에서 현명하게 차기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을 선출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2014년 서병수 부산시장이 《다이빙벨》 상영을 반대하며 불거진 ‘다이빙벨 사태’는 BIFF를 휘저은 거대한 태풍이자 영화제를 둘러싼 모든 갈등의 시작이다. 강 위원장은 2015년 8월 사태 수습을 위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취임했으며, 외압으로 인한 영화제 특별감사 및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강제 사퇴 후 지난해 단독 집행위원장 체제로 영화제를 치렀다. BIFF 역사의 산증인인 김 이사장은 지난해 영화제가 민간 조직위원장 체제로 넘어가며 추대됐다.

 

이들이 나란히 사퇴를 선언한 것은 지난 8월8일이다. 하루 전 영화제 사무국 전 직원 일동의 연명으로 성명서가 발표된 직후다. 내용의 핵심은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을 향한 불신임이었다. BIFF 사무국은 이 성명을 통해 “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을 빌미로 박근혜 정부를 위시한 정치권력에 철저히 농락당했으나 이 탄압에 대해서 가해자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피해자는 명예 회복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으며, 사무국 직원이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며 BIFF 정상화 및 사태 해결에 대한 두 사람의 미온적 태도를 지적했다. 강 위원장을 향해 합리적 의견 개진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김 이사장에게 진정했으나 이마저도 문제 해결의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앞서 김 수석 프로그래머의 뒤를 이어 부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됐던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금전 문제’와 ‘부당 지시’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그는 직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사표를 냈다. 일련의 사건들로 지속해서 진통을 견디던 사무국 직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복귀와 서병수 부산시장의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의 사퇴 선언은 직원들과의 이 같은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인들의 보이콧 문제 역시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영화감독조합을 비롯해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다이빙벨》 사태 여파로 인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BIFF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제니퍼 로렌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등 참가

 

그럼에도 영화제가 무조건 정상적으로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에는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이하 사무국 직원 모두 변함이 없다. 이에 올해도 프로그램만큼은 차질 없이 준비됐다는 게 영화제 측 설명이다. 올해는 전 세계 75개국 총 298편의 영화가 BIFF를 찾는다. 개·폐막작은 모두 여성 감독의 영화로 선정됐다. 영화제 역사상 최초다. 내용적으로도 여성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에 깊이 밀착한 작품들이다. 개막작 《유리정원》은 《명왕성》(2013), 《마돈나》(2015) 등을 통해 사회적 폭력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탐구해 온 신수원 감독의 신작이자 문근영이 주연한 영화다. 감독은 ‘인간이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자연처럼 공존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폐막작 《상애상친》은 3대(代)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다. 문화대혁명을 겪었던 어머니 세대, 천안문 사태와 급격한 산업화를 경험한 딸 세대, 록 음악으로 대변되는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손녀 세대를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두기봉 감독의 《우견아랑》(1989) 등 10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배우로 더 익숙한 실비아 창이 연출과 주연을 도맡았다. 그는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후보에 오른 《20 30 40》를 비롯해 《마음의 속삭임》(2015) 등 감독으로서의 이력 역시 지속적으로 쌓아나가고 있다. 《상애상친》은 최근 그가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들에 견주어 가장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폐막작을 비롯해 최근 급속히 성장 중인 중화권 영화의 현재를 담은 영화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유키사다 이사오 등 일본 중견 감독들의 신작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올해는 영화제를 찾는 게스트들의 면면이 최근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앞서 베니스와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서 화제였던 《마더!》의 주인공 제니퍼 로렌스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동반 내한은 영화제 초반 최대의 화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영화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 중 한 편이다. 신작 《이름없는 새》로 초청된 일본 배우 아오이 유우, 《맨헌트》를 선보이는 홍콩 누아르의 전설 오우삼 감독의 방문도 화제다. 세계적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은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BIFF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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