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관계 바탕엔 '헌신·희생' …그런 사람이 보살"
  • 글 박동욱, 사진 최재호 기자 (sisa510@sisajournal.com)
  • 승인 2017.10.05 17: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고종 경남교구 종무원장 법성스님의 추석나기

 

“무슨 일이든 어느 사람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빛을 보기 어려운 법. 그런 헌신과 희생을 하는 사람이 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인 셈이지.” 

 

태고종의 경남교구 종무원장인 법성(法性) 스님은 모든 인간관계를 ‘헌신과 희생’ 관점으로 바라봤다. 시절 인연에 따라 내가 베풀 때가 있고, 누군가의 지극정성으로 성공을 맛보기도 하지만 인간 본성인 이타성(利他性)을 스스로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게 인생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법성 스님이 주지로 있는 경남 함안군 함안면 백암길에 있는 백암사를 찾은 날은 추석 연휴 직전인 9월말이었다. 경남도 문화재 529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백암사는 지난해말 법성 스님이 전임 주지로부터 인수한 사찰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찰에서 자비마을이란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한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 운영될까하는 호기심에 찾아나선 길이었다. 


태고종 경남교구 종무원장 법성스님. ⓒ 최재호 기자

 

이날 오후 미리 만나기로 예약했지만, 법성 스님은 저녁녘에나 사찰에 도착했다. 함안면에 경남교구의 종무원사를 건립할 부지를 계약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는 게 스님의 얘기였다.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 백암사에 보존

 

태고종의 경남교구는 전국 교구 가운데 가장 많은 사찰(70여 곳)을 관할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경남교구 종무원장에 취임할 당시 법성 스님은 오는 2020년 2월까지 임기 안에 교구를 통할하는 종무원사를 독립 건물로 새로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35년 전 속세를 떠나 삭발할 때 굳게 다짐한 것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약속이든 그렇게 지키며 지금껏 살아왔지.”

 

스님은 20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친척이 운영하는 운송업체에서 잘나가던 사원으로 근무했다. 근데 뚜렷한 병명을 알 수 없이 온몸에 힘이 빠지는 증상에 시달리던 그는 조계종 사찰에 몸을 의탁했고, 이후 태고종으로 종파를 옮겨 2014년 혜초 종정으로부터 금장 가사(袈裟)와 함께 종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스님이 주지로 있는 백암사에는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이 있지만, 사찰 창건 시기는 1570년께로 전해지고 있다. 석조여래좌상과 관련해서는 1959년 법당이 재건되기 이전에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우연히 밭에 방치돼 있던 석불을 발견, 석불의 부러진 한쪽 손가락을 갖고 산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찰 밑 마을 이름은 백암마을이다. 이 마을 이름도 흰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과 무관치 않다. 마을 사람들의 이런 우환을 감안해 이름 붙여진 백암사에는 높이 8m에 이르는 지장보살의 대불(大佛)이 마을 아래를 지켜보고 있다. 

 

경남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백암사 전경. ⓒ 최재호 기자

법성 스님은 전임 주지와 함께 지난 2009년 베트남에서 제작된 이 대형 불상을 부산 감천항을 통해 보름이나 걸려 백암사까지 옮겼다. 당시 불상을 4등분해 대형 트럭 12대에 나눠 옮긴 일은 지금도 스님에겐 크나큰 얘깃거리로 남아있다.

 

 

'자비마을' 운영하며 청소년 40여명 私費로 키워내 

  

백암사의 전설을 듣고 있다가 취재진이 당초 사찰을 찾은 이유인 사회복지시설의 운영 실태를 물으니, 스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내놨다. “현재 남아있는 2명(고1, 중3)이 자립해 나가면, 시설 허가를 반납할 생각이다. 보조를 전혀 받지 않고 사비를 들여 복지시설을 운영해 왔는데, 올해 들어 환멸을 느꼈다.”

 

백암사가 운영하는 자비마을에는 많을 때는 오갈 데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20명 가량 있었다한다. 이곳을 지난 20여년 동안 거쳐 간 고아는 40여명. 올곧게 성장한 원생 가운데는 현재 대기업 과장에 재직중이거나 직업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승합차를 이용해 산속 사찰에서 마을 학교까지 등하교시키고, 대학생을 4명이나 배출하면서 한때 보람도 느꼈다한다. 하지만 올해 몇몇 원생들이 시설을 탈출하다시피한 뒤 보인 갖가지 행태에 스님은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원생이 학교에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경찰 관계자로부터 파렴치 복지시설 운영자로 몰리는 상황에 처했지. 보조금을 지원해주겠다는 당국의 권유도 뿌리치고 떳떳이 아이들을 키우려고 아등바등했는데…깊은 허무감을 느꼈지.”

 

우울한 화제를 돌려, 스님의 향후 계획을 물었다. “태고종은 큰 숙제를 2가지 안고 있지. 종단의 부채 해결과 (조계종과) 선암사 소유권 분쟁을 잘 마무리한 뒤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게 그것이지. 전국 지방교구의 최대 종무원장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뿐이야.”​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