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김광석’, 기형도는 살아 있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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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광명 ‘기형도 문학관’ 개관 앞두고 《기형도 전집》 특별 한정판 발간

 

가객(歌客) 김광석과 그의 딸의 불행한 죽음을 뉴스를 통해 바라보는 문인들에게는 한 사람의 시인이 스친다. 1989년 3월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기형도다. 서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숨진 기형도 시인과 서른셋의 짧은 생을 살다 간 가수 김광석은 못다 핀 예술혼들이지만, 그만큼 우리들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각인되고 있다.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중략)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 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대학시절》 中에서

 

‘나를 /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 《오래된 서적》 中에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中에서

시인 기형도 © 연합뉴스│전집 편집위원회 엮음│문학과지성사 펴냄│1만8000원

 

기형도의 시어(詩語)는 문학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깊이 각인됐다. 1989년 출간되어 82쇄 29만 부를 찍은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물론이고, 그의 10주기인 1999년 출간된 《기형도 전집》도 29쇄를 발간했다. 한 대형서점이 주관해 9월말에 발간한 전집 한정판은 오는 11월 대중에게 선보이는 광명 ‘기형도 문학관’의 개관과 맞물려 그에 대한 그리움을 더 깊게 한다.

 

살아 있어도 아직 환갑을 맞지 않았을 기형도의 실질적 고향은 이번에 문학관이 세워지는 경기도 광명시다. 1960년 연평도의 한 피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64년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으로 이사 오면서 광명 생활을 시작한다.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수재민들의 정착지이자 도시 배후의 근교농업을 하는 농민들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기형도의 기억이 시작된다. 항상 상위권의 성적이었지만, 그에게는 우울한 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10살에 아버지가 중풍에 쓰러지고, 16살에는 바로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

 

1979년 연세대(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기형도는 가족사는 물론이고, 그 시대가 지닌 아픔까지도 고스란히 자신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그런 그의 출구는 시였다. 10·26사건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던 시대 속 그의 대학 생활은 시 《대학시절》에서처럼 혼돈 속에서 진행됐다. 그는 오래전 같은 교정을 걸었을 선배 윤동주처럼 예민한 저항으로 시대를 지나갔다. 이후 안양에서 방위 복무를 마친 후 복학한다. 대학 4학년 때인 1984년 10월 중앙일보에 입사하면서 사회로 나오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인으로서의 생활도 시작한다.

 

그가 사회인으로 세상에 발을 붙인 것은 채 5년도 되지 않았다. 1989년 가을의 첫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그해 3월, 그는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아끼고, 그의 발전을 기대하던 이들에게 그의 영면은 큰 좌절이었다. 그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이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문학평론가 김현이다. 김현은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라는 부제가 붙은 해설을 시집의 뒤에 썼다. 해설 자체가 그의 삶을 완전히 체화(體化)한 듯한 글인데, 여기에서 김현은 그의 시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를 붙여줬다.

 

 

실질적 고향 광명에서 다양한 추모기획 진행 중

 

김현의 예측대로 기형도 시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많아졌고, 이후 수없이 되살아났다. 그해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나온 데 이어, 1주기에는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이 나왔고, 5주기에는 미발표작과 추모작을 담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출간됐다. 1999년 10주기에 맞춰 시와 소설, 산문을 정리한 《기형도 전집》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특별판으로 다시 출간된 전집에는 그의 미발표작 시와 소설, 산문들이 실렸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준비하던 ‘기형도 문학관’이 오는 11월 개관을 준비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문학관은 그가 도시화의 뒷전에서 ‘안개’로 묘사했던 음울한 공간이 아닌, 두 개의 고속도로가 만나고 고속철도 광명역이 있는 부근에 세워졌다. 옆에서는 이케아나 코스트코 등 대형 국제 유통그룹과 국내 유통기업들이 각축을 벌이는,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곳이다. 필자는 문학관 옆 ‘기형도 문화공원’을 돌아봤다. 공원은 몇 개의 대리석에 새긴 시비(時碑)가 있을 뿐 별다른 것이 없었다. 초가을 쓸쓸함 속에서 공원을 걷는 한 노인은 시인의 병든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기형도의 시집에 해설을 쓴 평론가 김현도 그가 죽은 지 1년여 만에 영면한다. 그런데 기형도를 해설하면서 김현은 죽음을 넘어선 기형도의 시에 충격을 받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는 빨리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11월에 건립하는 기형도 문학관을 통해서든, 2년 후 있을 30주기에도 시도될 기획이 말해 주듯 시인 기형도는 절대 죽지 않았다.  

 

 

New Book

 

사라지는 미래 

김성일·정창호 지음│한스미디어 펴냄│1만6000원

 

우리나라의 인구 축소로 인해 다가오는 메가톤급 변화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아직 일반은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인구 감소는 지방 소멸로 이어지고, 공무원·교사 등 철밥통 직업에 대한 인식을 순식간에 뒤집어버릴 수 있다. 인구 부족은 결과적으로 미래에 더 큰 영향을 주는데, 이 책은 은퇴 설계 전문가인 두 사람이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저술한다. ​ 

 

 

생명의 설계도 게놈 편집의 세계

NHK 게놈 편집 취재반 지음│이형석 옮김│바다출판사 펴냄│1만5000원

 

 

생명체의 설계도인 게놈을 이해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바꿀 가장 혁신적인 생명과학 기술이라는 건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이제 그 생명체를 편집하는 게놈 편집 기술은 최신 과학 기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다. 학문은 물론이고 특허에서도 치열한 논쟁의 장이 됐고,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을 다룬다.​ 

 

 

중국 핵심 강의

안계환 지음│나무발전소 펴냄│1만8000원

 

 

사드 문제 이후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가는 중국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작다. 중국 고전을 키워드로 인문학적 키워드를 뽑아내던 저자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초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을 역사·철학·문학을 통해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와 신중국을 전후로 변모하는 중국인의 유교관 등 흥밋거리를 정리한다. ​ 

 

 

전쟁 마술사

데이비드 피셔 지음│전행선 옮김│북폴리오 펴냄│1만6000원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전장(戰場)의 매직 쇼를 통해 나치 독일을 농락한 북아프리카 전투의 히어로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영국의 위장술 장교였던 그는 탱크 부대를 트럭으로 위장하고, 이집트 최대 항구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통째로 옮기며 수에즈 운하를 숨기는 등 지상 최대의 마술 공연을 기획했는데, 곧 영화로도 선보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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