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새로운 장르 ‘마동석’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9 14:17
  • 호수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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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극장가 최대 이변 《범죄도시》의 흥행 이끌어

 

《범죄도시》의 흥행세가 심상치 않다. 개봉일(10월3일) 전국 600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관객의 입소문에 힘입어 일일 관객 수가 계속 증가했고, 개봉 6일 차에 최다 일일 관객 수(42만 명)를 기록했다. 이날은 《범죄도시》가 같은 날 개봉한 블록버스터 《남한산성》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결국 이 영화는 개봉 7일 차에 200만 명을 돌파하며, 올 추석 황금연휴 최고의 복병을 넘어 실질적 승자가 됐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임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무엇이 《범죄도시》와 관객을 통하게 했을까. 호쾌한 액션,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 구멍 없는 배우들의 호연 등 여러 흥행 포인트가 있지만, 그 중심에 가장 크게 자리한 것은 ‘마블리’ 마동석의 존재다.

 

© 키위미디어그룹 제공

 

마동석이 직접 영화 아이디어 제안해

 

이 영화를 두고 ‘장르가 마동석’이라고 말하는 관객 평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범죄도시》는 영화가 극 중 역할에 알맞은 배우를 찾은 것이 아니라,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을 만나 영화에 특색을 입힌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만큼 마동석의 개성은 곧 이 영화의 개성이기도 하다. 함께 출연한 배우 윤계상이 《범죄도시》에서 잔악무도한 조선족 폭력배 ‘장첸’ 역으로 이미지를 180도 바꿔 승부수를 띄운 것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배우 그 자체의 매력이 캐릭터이자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절대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마동석이 《범죄도시》를 통해 새삼 증명한 가능성은 그런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15년 차 형사이자 강력반 데스크 ‘마석도’를 연기한다. 겉모습만 봐서는 형사인지 폭력배인지 분간할 수 없는 험악한 외모의 소유자인 그는 주먹 한 방의 강력한 힘으로 가리봉 일대의 평화를 수호한다. 조선족이든 아니든 이 일대의 모든 조직폭력배들은 마석도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반면 그는 땀내 나게 함께 뛰는 동료들과 인근 조선족 상인들에게는 깊은 속정을 내비칠 줄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형사가 범죄 소탕에 나서 화끈하게 응징한다는 점에서 《범죄도시》는 《공공의 적》 시리즈(2002~08)나 《베테랑》(2015)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여기에 근육질 히어로를 연상케 하는 마동석의 육체가 가세하니 캐릭터 파괴력은 남다르게 변모했다. 《범죄도시》는 주인공의 개인적 사연과 역사를 지운 채 마석도라는 강력한 인물이 잔악한 악당 장첸과 그 일당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관객을 자극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형사물에 으레 기대할 수 있는, 그러니까 사건을 해결해 가는 수사 과정이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마석도의 활약과 응징의 방식이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눈을 제대로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것들이지만, 이런 행동을 마구잡이로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존재인 마석도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이 느끼는 두려움은 통쾌함으로 전복된다. 마석도가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사용해 따귀 한 방으로 발악하는 범인을 제압할 때, “너 혼자야(혼자 왔어)?”라는 장첸의 말에 “어, 아직 싱글이야”라고 답할 만큼 여유와 유머가 넘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악당에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 같은 당당함과 힘을 갖췄으며, 비열하고 악한 세력으로부터 언제든 약자를 보호해 줄 것 같은 주인공. 마석도를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슈퍼히어로물을 보는 기대심리와 비슷해진다.

 

최근 《청년경찰》을 비롯해 한국영화 안에서 조선족 집단이 범죄의 온상처럼 그려지는 데 대한 우려와 비판이 높아지는 와중에 조선족 범죄를 아예 중심에 놓은 이 영화는 해당 논란에서 어느 정도 비껴나 있다. 2004년 하얼빈에서 넘어온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했던 한국 강력반 형사들의 실화에 기초하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꽤 안전한 방식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기획이 애초에 마동석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범죄도시》는 줄곧 형사 영화를 꿈꿨던 마동석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친구였던 강윤성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프로젝트다. TV 드라마 《히트》(2007, MBC)에서 형사로 출연한 이후 강력계 형사들과 사적으로도 친분을 유지해 온 마동석이 적극적으로 낸 아이디어들은 이 영화에 대사와 설정들로 구체화됐다.

 

마동석은 영화 《범죄도시》에 형사 ‘마석도’로 출연했다. © 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충무로에 나타난 ‘한국형 슈퍼히어로’

 

우람한 체구에 험상궂은 마동석의 외모는 종종 《함정》(2015) 속 살인마와 같은 캐릭터에 활용되곤 한다. 하지만 대중의 폭발적 호응은 그가 외모를 역으로 이용할 때 나온다. 드라마 《히트》에서 우람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일명 ‘미키성식’ 형사의 이미지는 몇 년 뒤에 구체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현실의 무게를 등에 짊어진 채 기죽어 살다가 결국 눈물 어린 홈런을 날린 《퍼펙트 게임》(2011) 속 야구선수 ‘만수’, 덩치는 산 만하지만 아내 앞에선 누구보다 상냥한 《결혼전야》(2013)의 애처가 ‘건호’, 모든 일에 힘이 먼저 앞서지만 어른에게만큼은 예의범절을 깍듯하게 지키는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속 청년 ‘천보’, 철없는 톱스타 친구를 살뜰하게 챙기는 《굿바이 싱글》(2016) 속 다정한 스타일리스트 ‘평구’. 이들의 공통점은 우락부락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움과 뜻밖의 다정함을 갖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마동석이 지닌 또 하나의 이미지 축은 ‘정의의 주먹’이다. 보는 이의 속이 시원할 정도로 살인마를 가차 없이 응징하는 《이웃사람》(2012)의 ‘혁모’로 보여준 이 같은 이미지는 10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테랑》의 카메오 ‘아트박스 사장님’ 등으로 이어졌고, 《부산행》(2016)으로 정점에 올랐다. 극 중 마동석이 연기한 인물인 ‘상화’의 매력이 폭발하는 순간은 열차 안에 가득한 좀비 떼를 향해 그가 탱크처럼 돌진할 때다. 임신한 아내와 객실에 있는 아이들을 포함한 노약자는 보호하고, 자신의 두 팔에 포장 테이프를 비장하게 감은 채 비좁은 통로를 뚫고 좀비를 제압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환호성을 부추긴다. 게다가 그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인물이다. 즉 《범죄도시》의 마 형사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간 마동석이 대중에게 호감을 샀던 이 같은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빚은 결과물이다. 마동석의 등장을 바꿔 말한다면 충무로에 나타난 ‘한국형 슈퍼히어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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