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노출 드레스는 ‘달콤한 독배’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7 10:42
  • 호수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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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애와 함께 다시 돌아온 ‘노출 드레스’ 논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반 최대 이슈는 서신애였다.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서신애는 상반신의 중간 부분이 세로로 터진 듯한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이른바 ‘노출 드레스’다. 인터넷이 들끓고, 관련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축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작품들이 선을 보이고,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부산을 찾는다. 그중에 누구도 서신애의 화제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서신애의 드레스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를 덮어버린 것이다.

 

두 가지가 겹쳤다. 하나는 당연히 노출 그 자체의 화제성이다. 두 번째는 노출의 주인공이 서신애라는 점이다. 사실 노출 수위로만 보면 과거 논란을 일으켰던 노출 드레스보다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신애이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그는 6살에 우유 CF 모델로 데뷔해, 귀여운 모습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고맙습니다》에서도 깜찍한 아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선 잘사는 집 딸 진지희에게 ‘빵꾸똥꾸’라고 무시당하는 가난하고 순수한 아이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서신애는 20살이 됐어도 여전히 귀여운 아이였다. 그 아이가 갑자기 노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니 파문이 컸던 것이다.

 

10월12일 배우 서신애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이며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 사진=뉴스뱅크이미지

서신애는 나이를 먹으면서 존재감이 약해졌다. 심지어 ‘빵꾸똥꾸’의 악역 진지희보다도 활동이 미미할 정도다. 다시금 존재를 각인시켜야 할 시점이고, 아역에서 성인 이미지로 전환할 필요도 있었다. 바로 그래서 충격요법, 또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노출 드레스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서신애 측은 단지 ‘예뻐서 골랐을 뿐’이라고 해명했는데, 의도와 상관없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노이즈는 충분히 일어났다. 부산국제영화제 초반이 서신애의 화제성으로 덮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다. 노출 드레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서신애는 이번에 화제를 모았지만 ‘악플군단’을 동시에 얻었다.

 

노출 드레스 논란의 출발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였다. 당시 오인혜가 노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등장하자 엄청난 논란이 일어났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내내 오인혜가 최고의 화제였다. 케이블TV에서 오인혜 사건을 주제로 토론 프로그램까지 진행됐을 정도로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다. 영화제 후 오인혜는 인기 예능 《강심장》에 초대받았고, 이병훈 PD의 사극 《마의》에도 캐스팅됐다. 논란 초기 사람들의 반응은 ‘오인혜가 누구야?’였다. 그랬던 무명배우가 노출 한 번으로 인생역전 수준의 인지도 대박을 맞은 것이다.

 

이 사건 전에도 노출 드레스는 종종 화제가 됐었지만, 보통은 하루 이틀 정도 인터넷 가십으로 오르내리다 끝나는 수준이었다. 오인혜 사건은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대규모 행사를 행사 기간 내내 완전히 압도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 엄청난 파괴력이 업계를 뒤흔들었다. 기획사는 기획사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노출 드레스 ‘로또’를 노리게 됐고, 이것이 장사가 되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 언론계는 노출 드레스 기사를 쏟아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영화제에 임하게 됐다.

 

당연히 노출 드레스 논란이 연이어 벌어졌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배소은이 누드톤 드레스로 등장해 ‘제2의 오인혜’라 불리며 포털 검색어를 장악했다. 당시 그녀의 소속사는 드레스 제작에 500여만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신인배우 옷에 거액을 퍼부을 정도로 기획사가 노출 드레스의 효과를 확신했다는 이야기다.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선 한수아와 강한나가 화제였다. 강한나는 이때 이른바 ‘뒤태 드레스’로 엉덩이골 노출의 시초라 불리기도 했다. 이해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여민정이 노출사고를 당했는데, 기획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4년 청룡영화제에선 노수람이 영화제에 맞춰 제작한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주최 측이 노수람을 초대한 적이 없다고 했고, 소속사에선 업계 지인의 초청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공식 초청이 없는 상태에서 노출 드레스 홍보 효과만 노리고 영화제에 등장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해 대종상 영화제에선 한세아가 드레스 위에 밧줄을 감고 나타나 마조히즘 콘셉트로 해석되며 ‘밧줄녀’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 말고도 많은 여배우들이 노출 드레스, 시스루 의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그 사례가 점점 줄어들어,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노출 드레스 논란이 아예 없었다. 그러다 올해 다시 노출 드레스가 등장했는데 그 주인공이 아역 이미지가 강한 배우다 보니 파문이 크게 인 것이다.

 

 

인지도 올리려는 ‘신인들의 무리수’ 인식 강해져

 

2011년 10월6일 배우 오인혜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노출 드레스로 등장해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 사진=연합뉴스
노출 드레스가 점점 줄어든 이유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꼽힌다. 네티즌 비난이 컸고, 업계에서도 자성의 흐름이 나타났다. 영화제 측에서도 노출 드레스 논란이 영화제 자체의 화제성을 덮을 정도가 되자 불편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효과가 있었으면 어떤 식으로든 노출 경쟁이 이어졌을 것이다. 노출 드레스의 가장 큰 문제는 상업적 효과가 별로 없다는 데 있었다.

 

앞부분에서 노출 드레스로 화제를 모은 배우들을 열거했지만, 그들 중에 배우로서 성공한 사람을 적어도 지금까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한때 노출 이미지로 입길에 올랐을 뿐이다. 유명해졌지만 인정은 받지 못했다. 노출녀 꼬리표가 너무 강해 오히려 다양한 배역을 맡는 데도 어려움이 생겼다. 이렇게 보면 노출 콘셉트는 지금 당장의 인지도 폭발을 안겨주지만 장기적으론 오히려 해가 되는 달콤한 독배인 셈이다.

 

노출 드레스가 처음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던 건 아니다. 2000년 즈음에 등장한 김혜수의 노출 드레스는 찬탄의 대상이었다. 이때는 여성 억압의 인습에 반기를 드는 당당한 자기표현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노출 드레스의 화제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결국 상업적으로 이용됐고, 그 흐름이 10여 년간 강화된 끝에 ‘오인혜 사태’가 터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해도 너무 한다는 반발이 생겼고, 노출드레스의 원조 김혜수는 노출을 더 이상 안 하게 됐다. 이젠 노출 드레스에, 인지도를 올리려는 ‘신인들의 무리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화제성이 절박한 누군가는 앞으로도 노출 드레스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인지도를 올려봐야 무의미하다는 것을 지금까지 논란의 역사가 잘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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