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육지전 영웅'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 이제야 떴다
  • 박종운 기자 (sisa515@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1 20: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구·교육·제향 등 선양사업 추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서부경남 일대에서 불퇴전의 기록으로 바다의 이순신 장군에 빗대 ‘육전(陸​戰)의 명장’으로 일컬어지는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하동군은 11월1일 섬진강포구식당 물꽃정원에서 윤상기 군수, 이갑재 도의원, 군의원, 창립 위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발족시켰다. 창립총회에서는 정두규 전 해군대학 총장이 회장으로, 한충영씨 등 5명이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집행위원장에는 문찬인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이 추대됐다. 정한효 하동향교 전교, 정연가 하동노인대학장, 노동호 하동문화원장 등은 상임 고문으로 임명됐다. 이사진은 70명에 이른다.  ​

 

 

 

정기룡장군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장면 ⓒ 하동군 제공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장군의 탄신제 등 제향 거행 △학술세미나 등 연구 활동 △책자 발간 등 각종 홍보·교육 △기마동상 건립 △전적지 탐방 △선양·기념사업 등을 다각적으로 펼쳐나간다. 

 

 

임진·정유재란 동안 60전 전승 '경이적'

 

임진왜란 30년 전인 1562년 4월 금남면 중평리 상촌마을에서 태어난 정기룡 장군은 1580년 고성 향시에 합격하고 25세인 1586년 무과에 급제한 뒤 왕명으로 기룡(起龍)을 하사받았다.

 

159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립 장군의 휘하에 들어간 뒤 1592년 임진왜란 때 거창에서 첫 승전고를 울린 것을 시작으로 임란 7년간 60전 전승이라는 경이적인 전공을 올렸다.

 

특히 36세 때인 1597년 상주목사로 재임할 당시 고령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성주·합천·초계·의령을 탈환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3품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돼 한양으로 향하는 왜적의 중로 침공을 차단했다.

 

장군은 임란 후에도 경상도 방어사, 김해·밀양·울산부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고 1605년 원종선무일등 공신에 올랐으며 오위도총부 도총관, 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1622년 2월 진중에서 순직했다. 사후 150년이 흐른 1773년 영조 때 충의공 시호를 받았다.

 

현재 하동군에는 문화재자료 제188호 금남면 정기룡 장군 유허지 내 경충사에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돼 있다. 하동군은 기일인 매년 음력 2월 28일 장군의 위업을 기리는 향례가 거행하고 있다.

 

유허지의 유물전시관에는 교지·장검·유서 등 유형문화재 제286호 장군의 유품이 전시돼 있고, 사당 입구에는 장군의 생가가 초가집으로 복원돼 있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