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위기 넘긴 한라그룹 맏딸·큰사위 경영 기대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2 14:21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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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36) 한라그룹] 장자가 승계받지 않아 2세 간 경영권 다툼

 

자동차부품 제조업과 건설업을 양축으로 삼고 있는 한라그룹은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1962년 세운 현대양행이 첫출발이다. 정 명예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이다.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던 정 명예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권유로 현대건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현 총수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정인영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정몽원 회장은 1997년 1월 그룹 회장에 취임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그룹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 정 회장이 취임한 지 1년 만에 한라그룹은 부도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한라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삼호중공업과 만도는 매각됐다. 남은 것은 한라건설뿐. 정 회장은 한라건설을 기반으로 그룹 재건에 들어갔고, 핵심 계열사인 만도를 9년 만인 2008년 다시 사들였다.

 

만도를 되찾은 이후 정 회장은 적극적으로 그룹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 2010년 만도는 증시에 재상장됐고, 꾸준한 실적을 내면서 한라그룹 핵심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통합 물류 조직인 마이스터도 신설했다. 이후 만도는 한라그룹에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실적 개선)를 선물했다. 2016년 연결 기준 매출액 5조8664억원, 영업이익 3051억원, 순이익 2106억원을 달성한 것이다.

 

서울 송파구 한라시그마타워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왼쪽),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정인영 명예회장, 차남에게 경영권 넘겨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은 1989년부터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장남을 제치고 차남인 정몽원 회장을 그룹 차기 경영자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형제의 난’의 불씨가 지펴졌다. 정몽국 회장이 한라중공업·한라시멘트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지휘해 오던 터라, 재계는 장자 승계 원칙이 당연히 적용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1995년 3월 정몽원 회장을 총괄 경영자 자리에 앉혔고, 정몽국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형제간 갈등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증폭됐다. 정몽원 회장이 1997년 12월 부도난 한라시멘트 영업권을 미국계 투자회사 로스차일드로부터 4000억원을 대출받아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형인 정몽국 회장이 갖고 있던 한라시멘트와 한라콘크리트 지분을 동의 없이 처분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몽국 회장은 2003년 정몽원 회장을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했다. 당시 현대그룹 ‘왕자의 난’에 이어 아우 격인 한라그룹 2세 간에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 것이라 세상은 떠들썩했다. 2005년에는 주식반환청구 소송이 시작됐다.

 

법원은 정몽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009년 정 명예회장이 주식 집중을 막고 명의를 분산하려고 정몽국 회장에게 주식 소유권을 넘긴 뒤 그룹 기획실을 통해 관리해 왔고, 관리처분권한을 위임받은 정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주식을 넘겼기 때문에 따로 정몽국 회장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1년에는 건설 및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건설이 주력인 한라건설은 미분양으로 인해 수천억원의 영업 손실을 본 뒤 재계 순위 5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당시 만도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정몽원 회장은 한라건설 정상화에 집중하겠다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만도였다. 만도는 2013년 4월 자회사인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3385억원을 한라에 출자했다. 당시 만도가 한라마이스터의 유상증자에 돈을 대고, 이 자금을 한라건설의 증자에 활용하는 방식이 논란이 됐다. 만도의 주주 및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한라에 대한 추가 지원으로 인해 기업가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만도의 한라건설 부당지원과 관련해, 정몽원 회장을 신용공여금지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만도의 한라 지원이 신용공여에 해당되지만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라는 사유를 들어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일찍부터 3세 정지연씨 경영 참여 시작

 

정몽원 회장은 과거 한라그룹 우량 계열사 자금을 부실기업인 한라중공업에 불법 지원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2002년 1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정몽원 회장은 항소를 제기했고, 재판부는 2003년 8월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정몽원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때 마지막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돼 2007년 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됐다.

 

한라에 대한 만도의 자금 지원은 한라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는 지배구조 개편을 촉발했다. 정몽원 회장은 2014년 9월 만도의 기업 분할을 통해 한라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주력사인 만도의 계열사 지원을 줄여 한라의 리스크가 그룹 계열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정몽원 회장이 오너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잃어버렸던 주주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조치라는 시각도 있었다. 이로 인해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는 주력 계열사인 한라와 만도를 양 축으로 거느리게 됐다.

 

올 10월 정몽원 회장은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만도 대표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건설과 더불어 자동차 부문을 일선에서 직접 챙겨 그룹의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복귀 이유를 밝힌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만도 복귀가 2014년부터 시작된 한라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 짓기 위한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는 정몽원 회장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확고하다. 정몽원 회장이 한라홀딩스 지분 23.38%를 보유하고 있고, 부인과 자녀 2명이 0.0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배력은 그룹 중심 회사인 만도와 한라로 이어진다. 한라홀딩스는 만도의 지분 30.25%를 보유하고 있다. 한라홀딩스의 한라에 대한 지배력은 더 막강하다. 한라홀딩스가 16.88%, 정몽원 회장이 18.17%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라대학교 학교법인인 배달학원이 2.38%, 부인과 자녀들, 친인척이 0.4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범(汎)현대가인 KCC도 10.15%의 지분을 갖고 있다.

 


후계로는 장녀 정지연씨가 거론된다. 정지연씨는 미국 최초 여대인 마운트홀리오크 칼리지를 나왔고, 뉴욕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정몽원 회장 나이를 감안할 때, 후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3세 경영 수업은 일찌감치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원 회장은 2010년 정지연씨를 그룹 핵심 계열사인 만도에 기획팀 대리로 입사시켰다. 정지연씨는 2012년 당시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아들인 이윤행씨와 결혼했다. 정지연씨는 결혼 당시 영업팀 과장으로 승진했다가, 해외지사 경험을 쌓기 위해 미국에서 만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재계에서는 정지연씨와 사위 이윤행씨가 어떤 방식으로 경영 일선에 참여할지 주목하고 있다.

 

 

통상임금소송 패소·노조 파괴 논란도

 

정몽원 회장은 배우자와 딸들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정지연씨는 2008년 11월 2만9000주를 시작으로 자사 주식매입에 나섰다. 2010년 4월 한라건설 유상증자 이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인 배달학원의 지분율이 낮아지자 두 딸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 2만3800주를 확보했고, 2014년 만도의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자, 만도를 위해 주식을 신규 매수하기도 했다. 보통 주식 추가 매입은 오너가의 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분석되지만, 아직 한라그룹 3세들의 지분은 미미한 상태다. 현재 정지연씨는 한라에 0.27%의 지분을 갖고 있고,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에는 0.0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지수씨는 한라홀딩스에 0.02%의 지분만 갖고 있다. 

 

한편, 한라그룹은 노사관계 부문에서 해결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만도는 2011년 생산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확대 소송 2심에서 최근 패소했다.

 

만도 관계회사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만도헬라)에서는 ‘노조 파괴 논란’이 일었다. 만도헬라는 2008년 만도와 독일계 자동차부품 회사 헬라가 공동출자해 설립한 회사로, 홍석화 만도헬라 대표는 정몽원 회장의 처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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