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대륙길 막혀도 흐를 곳은 넘쳐난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29 11:20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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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한령 이후 새로운 한류 거점으로 떠오른 ‘동남아’

 

11월8일 열린 한국과 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하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2017 한-베 K-Pop 우정콘서트’는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동남아 국가와 중국·일본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6인조 보이그룹 헤일로, 일본·브라질 등에서 월드투어를 시작한 걸그룹 드림캐쳐,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예 보이그룹 스누퍼, 한류 대표 아이돌인 틴탑, 그리고 지금 현재 베트남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 티아라 등이 참여한 이 콘서트는 티켓 예매 시작 3분 만에 3000석이 모두 매진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2017 코리아 브랜드&한류상품 박람회’와 연계해, 단지 문화행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비즈니스가 한류 교류와 더불어 시너지를 만든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11월8일(현지 시각) 베트남 호찌민에서 ‘한-베 수교 25주년’ 기념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열린 ‘2017 한-베 K-Pop 우정콘서트’가 성황리에 폐막했다. © 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차이나’로 떠오른 베트남 한류

 

중국의 한한령 이후 한류는 이제 새로운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코트라(KOTRA) 자료에 의하면, 올해 1~3분기 한국의 베트남 수출액은 전년 대비 50.5% 증가했다. 대부분의 동남아 시장을 여전히 일본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베트남만은 예외가 되었다. 중국 27.1%, 한국 22.3%, 일본 7.7% 순으로 수출액은 중국보다 적지만, 수출 증가율은 48.6%로 중국(16%)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이는 최근 1년간 베트남에 대한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가 급증했다는 걸 말해 준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 현지의 국내 기업들이 실제로 큰 타격을 입으며 불안감을 갖고 있고, 중국의 인건비 또한 점점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베트남은 그 대체지로 주목받고 있다. 한류는 이처럼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기업들에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셈이다. 이번 호찌민에서 열린 한류 박람회가 그렇듯 기업 행사와 한류가 함께 움직이는 건 이젠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한류의 저변을 갖고 있었고, 2015년 영화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가 역대 흥행 2위를 달성하는 등 성과가 있었던 곳이 바로 베트남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이벤트적인 성격을 넘어 보다 일상화된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CJ E&M 현지법인인 CJ블루가 현지 채널인 ‘VTC5’를 2022년까지 임차 운영하는 권한을 받아 ‘TV블루’를 개국했기 때문이다. 이제 베트남 대중들은 《시카고 타자기》나 《도깨비》 《삼시세끼》 같은 국내 프로그램을 바로바로 접할 수 있게 됐다.

 

태국에서의 한류 열풍은 그 촉발점이 2005년 《대장금》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장 거셌던 시기는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였다. 그 시기 우리네 로맨틱 코미디와 사극은 꾸준히 인기를 끌었고, 그 결과 연간 40여 편이 넘는 한류 드라마들이 태국에서 방영되곤 했다. 이 시기는 K팝 또한 글로벌 시장으로 뛰어드는 시기였다. 당시 방콕의 콘서트홀이나 쇼핑센터에서는 거의 한 주 걸러 K팝 공연이 열릴 정도였다. 이 시기 방영을 시작했던 《런닝맨》은 지금도 여전히 태국의 고정 팬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태국의 한류는 지난해 10월13일 태국 국왕의 별세로 인해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태국 TV에서 아예 드라마·오락 프로그램들이 사라졌고, 공연도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춤했던 태국의 한류가 국상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최근 다시 깨어나고 있다. 올해 7월에서 9월까지 3개월 동안 무려 47편의 한류 드라마가 방영되었고, 5차례의 콘서트와 7차례의 팬 미팅이 열릴 정도였다. 그 중심에는 역시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시장을 강타한 《태양의 후예》가 있었다. 영화보다 드라마가 특히 강세를 보이는 태국 한류는 그래서 화장품이나 푸드 산업 같은 관련 산업들의 태국 진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않았던 미얀마도 신흥 한류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얀마는 이미 2002년 《가을동화》가 첫 한류의 불을 지핀 이래 우리네 드라마에 대한 열풍을 이어오고 있다. 미얀마가 새삼 주목되고 있는 건 최근 들어 이 지역이 국제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중국에 이어 베트남으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미얀마로 이어지는 노동시장의 흐름에 따라 돈이 흐르고, 그만큼 문화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는 것. 최근 열린 ‘Myanmar K팝 콘서트’는 미얀마의 한류가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지인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이 콘서트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동남아로 직접 들어가는 한류 채널들

 

현지에 직접 한류 채널을 만드는 것도 동남아로 흐르는 한류의 새로운 양상 중 하나다. CJ E&M은 지난 1월 싱가포르에, 그리고 4월에는 말레이시아에 ‘tvN 무비스’라는 해외 전용 한국영화 전문 채널을 열었고, 베트남에는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채널인 ‘TV블루’를 개국했다. 또 콘텐츠 업체인 아시안 스토리는 태국에 한류 드라마와 K팝을 소개하는 ‘K웨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이 업체는 이후 미얀마·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방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의 콘텐츠가 해외에 수출되어 인기를 얻고 어떤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것과, 한류 채널이 현지에 직접 만들어져 그 안에서 콘텐츠들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일상적으로 한국에서 현재 방영되는 콘텐츠들을 바로바로 소개한다는 건 문화적 시차를 없애는 일이면서, 동시에 거기 얹어지는 한국 문화는 물론이고 산업 또한 보다 다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류는 문화 콘텐츠가 먼저 움직이고, 그로 인해 시장이 촉발적으로 생겨나는 흐름을 보여왔다. 하지만 채널이 생긴다는 건 콘텐츠와 함께 동시 다발적으로 상품을 연계하는 사업이 전략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류 드라마와 함께 연계되어 가장 큰 효과를 보고 있는 뷰티·화장품 산업의 경우, 한류 채널에 대한 기대감이 특히 클 수밖에 없다.

 

 

11월8일(현지 시각)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물리아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걸그룹 AOA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동남아, 中·日에 비해 정치·역사 리스크 없어

 

알다시피 중국·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 역시 인근 국가라는 점에서 정치와 역사·경제 문제들이 깊게 뒤얽혀 있다. 즉 사드 배치로 인해 한한령이 내려진 중국의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사안들이 한류의 흐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지난 10월31일 한·중 정부가 사드 배치 이후의 긴장관계를 끝내고 전략적 관계 발전을 추진키로 하면서 중국 한류에 대한 기대감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아직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에 한류 드라마가 다시 올라오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행은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걸그룹 마마무가 쓰촨TV 음악 프로그램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그 한 사례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여전히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대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위안부 사과나 독도 같은 과거사와 영토에 대한 억지 주장으로 갈등의 고리가 그대로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들어 한류는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가 올해 홍백가합전 (歌合)출연이 확정될 만큼 일본 내 한류를 재점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새로운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베트남은 거꾸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거사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호의적인 편이다. 오히려 베트남인들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나라는 한국·미국보다도 중국이다. 오랜 세월 동안 통치를 받았던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신흥시장으로서 중국도 진출을 노리고 있는 베트남에서 상대적으로 한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이런 국가에 대한 베트남인의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만은 중국과의 수교로 우리와 단교한 지 25년이 넘었다. 그래서 여전히 양국 간에는 감정의 골이 남아 있지만, 이런 골을 오히려 한류가 메워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첨병에 서 있는 건 한류 드라마들이다.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그리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연달아 나오면서 해마다 대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별에서 온 그대》는 대만에 치맥 문화를 만들었고, 《태양의 후예》는 내년 모병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대만에서 군인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영화 《부산행》과 《택시운전사》가 대만에서 화제가 된 사실은 이례적이다. 특히 《택시운전사》는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제공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네 한류는 중국과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겪으면서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대자본의 투자가 가능한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던 중국이 국제정세에 의해 하루아침에 문호가 끊겨버릴 수 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무익했던 것만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 후 대체할 만한 지역들을 찾아내고 그곳에 새로운 한류의 거점들을 만들어내는 일들은 오히려 중국이 막히면서 본격적으로 실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곳에 집중 투자되는 것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불러오는가를 잘 알려줬다. 이제 우리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류의 흐름에 있어 다양화, 다각화를 향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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