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은 죄가 없다
  •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 (dgshin0825@daum.net)
  • 승인 2017.12.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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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의 잉여Talk(1)] ‘대통령의 혼밥’ 자체가 중국 국민 마음 사는 고도 정치 행위

 

[편집자주] 

시사저널은 앞으로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가 쓰는 ‘신동기의 잉여Talk’를 연재합니다. 신 칼럼니스트는 현재 기업이나 대학 MBA/최고경영자 과정, 정부기관 등에서 인문학&경영학 융합 내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 했을 때다. 기껏해야 3년 서울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낯설어 진 것들이 많았다. 일본 현지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좀 일본을 제대로 즐겨볼까 할 즈음에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이 인사발령이 나 아쉽게 귀국했는데, 이제 다시 또 현지적응(?)에 나서게 됐다. 

 

낯설어 진 것 중 하나가, 나도 주재원 나가기 전에는 그랬겠지만 ‘회사 사람들이 혼자 밥 먹는 것을 매우 불편해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혼자 밥 먹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인격 문제와 연결 짓기까지 하였다. 다소곳이 혼자 앉아 밥을 먹으니 창피를 살 일이 없고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먹으니 인격이 들어날 일도 없는데도 말이다. 오전 내내 보직자들은 일보다 점심 파트너 찾는데 더 열성인 듯 했고, 점심시간 임박해 약속이 취소되는 불상사라도 벌어지면 얼굴이 사색이 되어(?) 허둥댔다. 혼자 밥 먹는 것이 그야말로 그들에겐 공포였다. 한마디로 ‘혼공증’, 즉 ‘혼밥 공포 증후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2월14일 오전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 한 현지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인 만두(샤오롱바오), 만둣국(훈둔), 꽈배기(요우티아오), 두유(도우지앙)을 주문해 식사하고 있다. 왼쪽은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 © 사진=연합뉴스

 

‘혼밥’ 통해 미래 내다보는 시간 가져야  

 

일본에서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서 또는 회사 근처 공원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도시락으로 공원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캔으로 된 차 마시고 혼자서 담배 피우고 혼자서 쓰레기를 치운다. 혼자 먹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이나 그것을 이상異狀(abnormal)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젠가 책에 그렇게 썼다.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혼자 점심 먹는 요일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고. 곰곰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를 내다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직장인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 회사에서는 일에 치여, 집에서는 집안일 치우느라 늘 정신이 없다. 출퇴근 시간? 그 시간은 전쟁 아니면 모처럼의 평화다. 서서 가면 전쟁이고 자리에 앉으면 몸과 함께 정신도 쉬어줘야 하는 성역의 평화다.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1년이 쌓여 삶이 된다. 지난 한 달 동안 한 시간이라도 자기 혼자 있는 시간, 오롯이 자기의 삶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면 앞으로 1주일, 한 달 아니 사회생활 하는 내내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 쉽지 않다. 혼밥 시간은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다. 운전할 때처럼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사고를 내거나 할 염려도 없다. 1주일에 하루 점심을 혼밥 시간으로 정해 놓으면 한 달이면 4시간, 1년이면 52시간이나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계획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보면 ‘혼밥 공포 증후군’이 아닌 ‘혼밥 탐닉 증후군’이 생길 수도 있다. 지나친 탐닉도 마찬가지로 병(증후군)이다.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이 논란이다. 기사로, 칼럼으,로 사설로 거의 신문 전체를 도배할 기세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여러 정치행위 선택지 중 참모들은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행위를 선택한다. 국내 아닌 국가 간 문제에 있어서는 당연히 상대방과의 조율이라는 강력한 제약 하나가 더 추가된다.

 

사드 배치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반한 감정은 시진핑이나 리커창과 같은 중국 지도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도자의 지시든 언론의 영향 때문이든 중국의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해지고 있는 중국의 유무형 보복은 중국 지도자의 입장 변화와 더불어 중국 국민들의 정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반한 감정 해소에는 한중 최고지도자 간 신뢰 회복은 물론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정치행위가 함께 요구된다.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은 바로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그 중에서도 ‘공감’을 사는 행위다.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 같은 외교활동이지만 한류 스타들의 만찬 참석은 ‘선망의 대상’이다. 반면에 서민식당에서 갖는 대통령의 서민 식사는 바로 ‘공감의 대상’이 된다. 정서적으로 한편이 되는 바로 그 ‘공감’이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혼밥은 혼밥 아닌 만萬밥이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중국 지도자 한 사람과 식사를 하면 그것은 쌍雙밥에 그치겠지만, 13억 인구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식당, 매일같이 먹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13억 인구 중 1억의 공감이라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만밥, 아니 1억밥이 된다.

 

 

문 대통령의 혼밥, 비난보다 속뜻 알아야 

 

사실 대통령 혼밥의 원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재직 중 관저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혼밥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갖는지 그것을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시간에 중국 일반 서민식당에서의 식사 아닌 어떤 다른 일정을 갖았더라면 국가이익에 더 큰 도움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을 문제 삼는다면 바로 이 부분을 문제시 하는 것이 맞다. 같은 시간에 훨씬 더 국익에 도움이 되는 다른 대안을 제쳐두고 왜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을 했냐고 따지는 것이 옳다. 물론 양쪽 대안의 국익 효과를 평가하는데 사회적 합의는 필수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은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중국 국민 13억을 아침 식사에 초대한 거대한 밥상이다. 당연히 혼밥 아닌 만萬밥이고, 어쩌면 1억밥 13억밥일 수도 있다. 1억밥인지 13억밥인지는 지금부터 중국의 여론, 중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혼밥은 죄가 없다.

 

 

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현대경제연구원이 ‘휴가철 CEO가 읽어야 할 도서(2015년)’로 선정한 《네 글자의 힘》을 비롯해 《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회사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까는 인문학적 생각들》, 《생각여행》, 《인문경영으로 리드하라》, 《인문학으로 스펙하라》, 《독서의 이유》, 《해피노믹스》, 《직장인이여 나 자신에게 열광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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