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 황영기 회장 내치니 ‘올드보이’만 나선 금투협회장 선거
  • 송종호 서울경제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8 17:30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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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연 있는 인사들 도전장

 

강력한 추진력으로 ‘검투사’라는 별명을 가진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2018년 2월 임기를 끝으로 물러난다. 연임이 사실상 확실시됐던 황 회장이 지난 12월초 차기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한 이후 잇따라 전·현직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출마를 공식화하며 협회장 선거가 뜨거워지고 있다. 

 

금투협회장 선거는 각종 협회장과 달리 회원사들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한 명, 한 명의 후보자가 늘어날 때마다 해당 인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관피아(관료 출신), 정피아(정계 출신), 학피아(학계 출신)가 주름잡는 다른 협회장 선출과 달리 금투협회장은 회원사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정부 인사의 낙하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왔다. 

 

결선투표까지 진행돼 드라마틱한 역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하다. 특히 이번 황영기 회장의 연임 포기가 정부의 신종 관치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직선으로 선출되는 금투협회장에 정부의 입김이 얼마나 작용할지도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회장 선거를 앞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 시사저널 박은숙

 

최 위원장 발언 후 황영기 회장 연임 포기

 

금융투자협회장은 금융권 협회 중 은행연합회장에 이어 ‘넘버2’로 꼽히는 자리다. 연봉은 5억원가량으로 상대적으로 다른 협회장에 비해 높지 않지만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등 국내 금융투자 업계를 대표하는 자리로, 금융 당국에 정책을 건의하고 회원사의 투자규정 등을 자율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장외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운영을 주관하는 것도 금융투자협회의 몫이다. 회원사만 증권사 56개, 자산운용사 169개, 선물사 5개, 부동산신탁사 11개 등을 거느린 막강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런 위치에서 연임이 확실시되던 황영기 회장이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인사 관련 발언으로 재출마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신종 관치’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1월29일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이 (출신 회사의) 후원이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선임된 경우가 많았다”며 “또 (그런 인사가)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최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넛지(Nudge) 관치’라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처럼 정해진 인사를 찍어 내려보내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은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슬쩍 제시해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다.

 

더구나 황 회장이 ‘검투사’라는 별명답게 2015년 취임 후 초대형 투자은행(IB) 지정을 위해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해 온 은행권과 얼굴을 붉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등 업계 이익을 위해 열정적이었다는 점에서 황 회장의 면모를 이어갈 수 있는 적임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운용사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황 회장은 은행을 향해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펴고 적극적으로 정치권을 설득해 왔기 때문에 회원사들의 지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이 당국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올드보이가 판치는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 손해보험협회장과는 달리 금투협회장은 정부 관료 또는 정부 관료와 연줄이 닿는 인물이 승산이 없다는 점도 당국으로서는 눈엣가시가 됐다. 실제로 대부분 청와대의 낙점을 받거나 유력 정치인의 후광을 업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금투협 3대 회장인 황영기 회장도 뜻밖의 선출로 화제가 됐을 정도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황 회장 ‘찍어내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줄줄이 금투협회장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 면면이 적폐청산을 외치는 현 정부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1956년생인 정회동 전 KB투자증권(현 KB증권) 대표는 피데스증권중개와 흥국증권중개 대표이사를 거쳐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 6월부터 2012년 5월까지 4년 동안 옛 NH농협증권을 이끌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2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옛 아이엠투자증권(현 메리츠종금증권)과  KB투자증권 대표이사를 거쳤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권혁세 자유한국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을 포함해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53년생인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역시 2009년 6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우리투자증권을 이끌었다. 황 전 대표이사는 MB 라인으로 꼽히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고대 출신인 황 전 대표이사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회장이 임명한 인사다.

 

정회동 전 KB투자증권 대표와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 대표는 2014년에도 협회장 선거에 나선 바 있다. 현직으로 유일하게 출마 의사를 밝힌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이사는 1961년생으로 옛 산업자원부 과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뒤 2009년부터 약 9년 동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키움증권 대표이사직을 수행한 장수 CEO 중 한 명이다.

 

 

© 연합뉴스·뉴시스

© 연합뉴스·뉴시스

 

 

文 대통령 대학 선배 최방길 사장 나서나

 

이런 가운데 금융투자 업계는 최방길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를 주목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최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학과 선배이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고교 선배다. 얼마 전 거래소 이사장 선임 당시 후보로 등장해 정지원 현 이사장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MB맨들의 잇따른 출마에 정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경우 일약 강력한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금투협회장이 선거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지원한다 해도 당선 가능성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240여 곳의 회원사가 한 표씩 행사하는 금투협회장 자리는 ‘힘’으로만 밀어붙일 수 없다는 해석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 정권과 ‘연’이 닿은 CEO와 현 정부의 ‘힘’의 대결 양상으로 변화하면서 선거전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며 “후보자의 공식 지원 이후 최종 후보자를 3~4명으로 압축하면 더욱 선거전이 달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투자협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는 지난 12월20일부터 후보 공개모집에 들어갔다. 오는 1월4일 오후 6시에 공모가 마감되면 후추위는 입후보 여부 공개를 수락한 지원자에 한해 명단을 공개하고 1월말 회원사 총회를 개최해 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차기 회장은 2월4일부터 업무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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